치악산
2016.11.12. 09:54부터 5:17 | 12.6km | 2.4km/h
구룡사-세렴폭포-사다리병창-비로봉-입석대-황골삼거리-황골
‘악’자가 들어간 산이라 일부러들 피하는 것인지, 어수선한 시국에 산행에 나서려니 발길이 안 떨어져서 그런지 참석률이 저조하다.
기사님은 톨비 좀 아끼시려는지 차가 한 동네를 뱅뱅 도는 듯한 느낌이다.
아침을 때우려 휴게소에 들러 김밥을 들고 내리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더군. 전날까지 촉촉하게 내린 비 때문에 걱정했는데, 다행히 하늘도 높고 춥지도 않고 산행하기 참 좋은 상태다.
구룡사-세렴폭포-사다리병창-비로봉-입석대-황골삼거리-황골
오늘 산행일정 소화를 위해 차량은 구룡사계곡 쪽으로 들어간다. 주차장 매표소 앞에서 우리를 내리고는 무심하게 휙 돌아선다. 볼일을 보러 간 사람들의 배낭이 걱정되어 앞서 간 일행을 등지고 잠시 기다리기로 한다. 볼일을 마치고 나온 1번무전기, 무전기를 놓고 내렸다고 하소연하고~ 3번무전기가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너나 나나 육구종주 때부터 정신줄이 왔다갔다 한다.
아무래도 절을 지나치는 것이라 문화재관람료를 받을 것 같다. 추임새도 넣어 주지 못하고 매표소로 돌진한다. 입구는 단체로 내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데다 돈 받는다고 줄 세워 머릿수를 센다고 사람들은 잡아 놓으니 북적북적할 수밖에 없다. 나를 보자 물주를 만난 것처럼 우리 일행이 신속하게 하나둘씩 구룡사 경내로 빨려 들어간다. 그런데 관리인 아저씨, 미래의 쌍수 아이까지 어른으로 쳐서 12명을 불러 제낀다. 초등학생이라고 버럭버럭 소리지리며 따져들자 아저씨~ “그럼 12명 분 입장료만 내세요~” 땡잡았다. 얼른 3만원 계산을 치르고 뒤쳐진 1번무전기를 기다림에도 오지 않네. ㅠㅠ 왜 안 오냐고 전화를 했더니 벌써 입구를 지났다고 지가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 툴툴거린다. ㅎ
그럼 나도 출발~.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공원안내 팜플릿을 얻어 돌아서려는데, 3번무전기 전화 왔다.
“선배님! 저희 것도 계산 하신 거 맞죠?” 엥? 다 입장했다고 통보하고 들어왔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래, 그냥 들어오면 돼” ㅋ
1번이 무전기는 잃었어도 선두는 안 빼앗기려 3번을 내팽기고 혼자 냅다 달려 들어온 것이다.
어찌 절 구경도 안 할 건데 2,500원이나 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혼자 투덜거리며 걷고 있는데... 구룡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다들 기다리고 있더군. 계산 치른 이야기를 하자니 더 가관인 것은 여기 주차장은 다른 산행지와 달리 시간 단위로 주차료를 정산한다고 한다.
헐~ 갑자기 언덕 위에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는 구룡사를 새삼 다시 쳐다본다. 저 정도 사찰을 유지 하려면 그럴 법도 하겠구나~
그래 그런 구룡사에 대한 이야기 좀 옮겨보자.
이 절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구룡사 뿐 아니라 우리나라 여기저기 고찰 창건에 관련된 이야기에 의상대사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정말로 직접 많이 세운 것인지, 아님 그만큼 그의 명성이 자자해서 세력이 여기저기에 뻗쳤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대웅전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연못 자리가 좋아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하여 용들을 물리치고 절을 지었고,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하여 九龍寺라고 하였다네.
조선시대 들어 사찰이 퇴락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진 것이라 하여, 혈을 끊었는데 오히려 절이 더 쇠락해졌단다. 폐사할 정도가 되었을 때에 한 도승이 나타나 절이 더욱 쇠락해진 것은 혈맥을 끊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 때부터 절의 이름을 九龍寺 → 龜龍寺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번창에 번창을 거듭했나? 얼마나 돈을 들였는지 사찰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그마한 궁전이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거만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몇 년 전에도 들렀는데 그 때보다 더 많이 치장이 되었다. 구룡사를 한 번 들여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입구부터 비위 상한 마음에 그냥 현수교를 건너 세렴폭포로 향한다.
세렴폭포까지 3.3km의 길은 계곡과 함께 하는 거의 산책로 수준의 코스로 이어진다. 다만 폭포쪽으로 갈수록 바닥에 돌덩어리를 깔아서 울퉁불퉁한 것이 걷기에 좀 거슬린다.
지난 번 시외버스 타고 온 홀로 산행 때는 차 시간 때문에 세렴폭포를 그냥 지나쳤다. 70m만 더 가면 되니 같이 가보자는 선배님 말씀을 따라 부푼 가슴을 안고 찾아갔건만... 이거이 폭포인지 계곡인지 많이 많이 아쉽다.
안면몰수라는 말을 이런 때 쓰면 딱 맞을 것 같다.
세렴폭포가 시시하다고 투덜거리며 현수교로 계곡을 건너자마자 이 산이 오르막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오르막의 정도를 아시는지 선배님 몇 분은 싸 오신 간식을 꺼내 미리 칼로리를 보충하신다.
요놈의 바윗덩어리들이 쉴 틈을 안 주고 가파른 길을 이어가는데,
이것이 사다리병창(병창; 영서방언으로 벼랑, 절벽) 구간이다.
거대한 암벽무리가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모여 있고, 암벽사이에 자라난 나무들과 어우러져서 사계절 독특한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하여 사다리병창길이라 한다.
대표적으로 ‘사다리병창’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부근의 바위를 보면 얼마나 큰 힘을 받았는지 바위에 그려진 층층무늬가 하늘을 향해 세로로 세워져 있는 형상이다. 이런 날카로운 바위의 행렬이 비로봉 턱밑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험한 길이 이제는 대부분 데크 통로며 계단으로 이어져 네 발로 기어오를 필요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친 사다리병창길의 막바지에 서면 치악은 그 보답으로 탁 트인 조망을 선사한다. 멀리 산행을 시작한 구룡지구에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단풍이 마지막까지 악을 쓰고 있다.
조금씩 봉우리와 그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능선이 가까이 다가선다.
1.1km만 오르면 되는데 여기부터 조금씩 한기를 느낀다. 바닥에 오늘 새벽에 내린 것 같은 흰 눈이 보이 더니, 이제 산행 처음과 기온차가 확연하게 차이난다. 길게 늘어진 우리 일행을 기다리다가는 이 한기에 온 몸이 금새 식을 것 같아 물 한 모금 적시고는 다시 움직인다.
남은 1.1km가 최후의 발악을 한다. 반갑게만 보이던 눈이 이제는 지랄이다. 등산화와 스틱이 있었기 망정이지 자칫 앞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번들거리는 빙판이 사람 여럿 잡을 것 같다. 게다가 비로봉 코앞에서는 그 이제 지긋지긋한 데크 계단길을 참고 또 참으며 올라야 한다.
그래도 정상 부근의 데크 전망대 뷰포인트에서의 쾌감, 빈속에 캬~ 소주 한 잔 들이키는 알싸한 기분이다.
정상부의 그렇게 뾰족하게 보이던 봉우리는 비록 거친 바위로 된 것이지만 어느 정도 평평한 공간을 제공한다. 그 공간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제부터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를 세 개의 돌탑이다.
안내문을 보니 미륵불탑이라고 한다.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일명 용진수)씨가 꿈에 비로봉 정상에 3년 안에 3기의 돌탑을 쌓으라는 신의계시로 혼자서 쌓았던 것이라고 한다. 1962년 9월 처음 쌓기 시작하여 1964년 5층으로 된 돌탑을 모두 쌓았으나 1967년과 1972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너졌던 것을 그 분이 다시 각각 그 해에 복원하였다. 1994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가 복원한 것이 현재의 것이란다. 미륵불탑 중 남쪽의 탑은 용왕탑, 중앙 산신탑, 북쪽을 칠성탑이라고 한다.
관리공단에서야 돌이며 시멘트 같은 것을 헬기로 날라 복원을 했겠지만, 처음 쌓은 분은 데크로 정비된 등산로도 없던 거친 길을 올라 거의 손으로 다 쌓았을 테니 이 얼마나 갸륵한 정성이냐.
정상이라 기온도 낮고 바람이 거세지만 남쪽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햇살이 비춰지니 그럭저럭 참을 만하더군. 선두그룹이 어찌나 허기졌던지 선배님들 기다릴 틈도 없이 다들 점심 전을 편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사람 맘이 달라지나보다. 올라올 때는 그리도 씩씩거리던 박 위원, 실제 와보니까 별거 아니지 않느냐는 등반대장님의 말에 절씨구~ 외친다.
이젠 자신감까지 붙었는지 이놈의 치악산 그다지 볼 것이 없다고 푸념까지 늘어놓는다.
식사를 에둘러 마치고나니 나도 이제 후미에 오고 있던 일행 걱정이 이제야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사뿐사뿐 내려가 데크 어귀에서 마지막 일가족을 맞이하며, 제수씨의 배낭을 대신 메어주는데 이거이 제법 무겁더군. 어라~ 근데 이 배낭을 후배님이 메질 않고 제수씨한테 떠밀었단 말이여? ㅋ
아무튼 험한 길을 같이 올라온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참 대견스럽다. 10km넘는 거리를 걷고도 투정 부리는 걸 한 번 보질 못했으니까.
먼저 식사를 마치고 길잡이로 나서라는 말에 오름길 선두그룹이 다시 배낭을 메고 나서다가 인증샷을 찍고 어쩌구 하느라 1번무전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 글쎄 난 지난 번 산행 때도 헤맸는데.., 오늘도 헤맨다.
이 산이 원래 단풍이 유명해서 적악산인데, 나그네와 꿩의 보은 전설 때문에 치악산으로 바뀌었댄다. 그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 상원사이고 그쪽 향로봉에서부터 이어지는 능선이 주능선이다 보니 이정표가 “상원사”로만 되어 있던 것이지.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곳이 중간에 내려서는 “황골”이라 황골 표지판만 찾아서 비로봉 정상을 빙빙 돌고만 다닌 것이여.
아~ 챙피... 그래도 존심은 쬐금 남아서 1번무전기에게 전화해서 짜증을 부려 갈 길을 찾아낸다.
그러고 보니 박 위원 향로봉~상원사로 이어지는 치악의 주능선을 타보지도 않았으면서 치악산을 하찮게 보네~ 육구종주 때 데리고 나섰어야 정신 바짝 들었을 터인데. ㅎ
비로봉에서 300m를 내려서면 비로봉 삼거리다. 사다리병창을 꺼리는 사람들이 계곡을 타고 올라올 수 있는 쉽지만은 않은 B코와 만나는 지점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1km의 능선길. 따스한 햇살 때문에 겹겹이 입었던 재킷과 모자를 벗어 다시 배낭에 집어넣어야만 했지.
그 1km구간 중 600m를 가면 쥐너머고개로 갈라지는 길에 전망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쥐너미(머)고개로의 길은 비법정 탐방로로 휀스가 쳐져 있더군. 우리는 – 나만 그리 생각했나? - 당시에 데크에 있는 안내문 때문에 거기 서 있던 언덕이 쥐너미고개로 알았다. 나중에 이 글을 쓰려고 공단 홈페이지도 가보고 정부발행 지도를 살펴보니 쥐너미고개는 아래 사진의 오른쪽 볼록 솟은 저 삼봉 봉우리가기 전 고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근처에 제법 그럴싸한 절이 있었나본데, 쥐들이 하도 식량을 갉아먹어서 스님들이 절을 버리고 떠나서 그 절이 폐사되자 엄청난 수의 쥐들이 그 고개를 넘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전설?
아마 그 쥐들이 도적 떼는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 도적들이 절밥을 탐내니 스님들이 견디기 어려워 떠난 것을 그리 빗댄 건 아닌지 모르지.
아무튼 그리 남은 거리를 비스듬히 내려와 주능선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접고서는 황골삼거리에서 입석대로 향한다.
입석사 부근의 상수원보호구역 표지가 있는 계곡까지 엄청 가파른 내리막이 1.2km나 이어진다. 무릎 생각을 해서 좀 쉬어가고 싶은데도 이 인간들이 얼떨결에 찾은 자신감으로 거침없이 내달린다. 무릎 걱정하는 나와 대겸이는 어쩔 수없이 조금씩 뒤쳐져 컨디션 조절을 한다.
알싸하게 내려선 하산길.
입석사에서 시원한 약수를 한 사발씩 들이킨 일행이 절 이름의 유래인 입석대는 보지도 않고 휑하니 내려선다.
그래도 입석대는 보고 가야잖아? 1번무전기가 어쩐 일인지 나를 따라 나선다.
기운을 받아 가고 싶다고 입석대를 돌면서 중얼중얼 기원을 한다. 아무래도 회사 일이 잘 안 풀리나보다. 그리고는 몇 십 미터 떨어진 마애불도 보러가자고 한다. 분명 많이 심란한 모양일쎄~
서산의 마애불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그래도 고려 전기의 불상이라고 한다.
마애불이란 바위에 새긴 불상을 말하는데, 마애불좌상이니 부처님이 앉은 모습을 바위에 새긴 것이겠다.
암벽에 돋을새김을 한 것인데, 부처님이 앉은 자리 대좌의 오른쪽 밑에 “원우 5년”의 문구가 새겨져 있어 1090년(선종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네. 그래서 고려전기의 불교미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나는 종교가 없다.
아마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시절일 것이다. 녀석이 같이 계룡산 모 암자에 같이 가자고 해서 들른 적이 있다. 그날 하루 동안 노동으로 시주를 했다. 검소한 저녁을 얻어먹고 해질녘 내려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고 마음이 편하던지. 아마 그 언저리에 합격통지를 받았을 것이다. 종교는 없지만 내심 도량에서 참된 봉사를 한 덕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나서서 좋은 일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쁜 일은 하지 말고 살자는 생각을 되뇌었던 기억이 떠오르네.
오늘 녀석도 입석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 어지러운 맘이 편안해지기를 기원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다수의 사람들처럼 잠재적인 불교신자인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고 보니 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입석도 없으면서 거기서는 입장료를 2,500원씩이나 받다니...
명색이 총무나부랭이라고 한 달에 한번은 돈에 민감한 직업병을 앓는다.
황골탐방지원센터부터는 아스팔트길이 이어진다.
이제 다 온 것이다. 티맵을 찍어보니 거리도 얼마 안 되고 10여분 좀 넘게 걸으면 버스가 있는 곳까지 도착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오르막과 다리 후들거리는 내리막을 내려와 놓고서는 남은 거리를 걷기가 너무나 지루한가 보다. ㅋ 하긴 아스팔트길을 많이 걸으면 발바닥이 아프더군.
해가 이제 뉘엿뉘엿 서산으로 모습을 감출 준비를 할 즈음, 뒤풀이 터인 치악산송어횟집이 큰길에서 좀 들어가서 있기에 큰길가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일행을 기다렸다. 몇 분 동안 지나는 사람도 차도 없이 적막감만이 맴돈 적이 있었다. 사위가 고요하고 낙엽도 떨어지는 것을 멈추고... 그대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잠시나마 秋男이 되었다.
아쉬움으로 다음 산행을 기대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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