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고요한 아침이다.
기온은 따듯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온 세상을 덮은 짙은 안개가 태양을 가리고 있어 몸이 좀 움츠려 든다.
건강검진이 있는 날이다.
아침을 굶고는 오랜만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었다. 레몬빛깔의 커다란 버스를 좋아하는 아이인데, 오늘만큼은 버스를 버리고 아빠와 유치원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이다.
절대 형식적이지 않다는 국가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역설하신 건강센터장님 마지막엔 결국 건강검진 상품을 추천하신다. 격년제로 제로베이스다. 그러니 건강검진은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다음 검진부터는 내시경을 해야 한다고 한다. 생의 전환기?
오전에 남은 2시간 좀 넘는 시간, 무얼 할까?
공주둘레산 잇기 (수원지)
수원지 공원
수원지공원으로 이름을 바꾸다. 어릴 적 수원지 뚝방길에서 스스슥 지나가던 뱀을 보았던 생각이 난다. 그 수원지가 어느덧 보통사람들은 출입할 수 없게 철조망으로 가려져 있더니 최근에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되돌려졌다.
수원지는 크고, 그 보다 좀 작은 두 개의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 호수를 따라 산책로를 닦아 놓았다.
가을은 이 호숫가에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명산에만 단풍이 든 것만은 아니다.
길 찾기(10:10)
둘레산을 돌다 우연히 저리로 가면 수원지가 나온다는 등산객의 말에 무작정 오른다. 큰 호수를 지나 더 올라 작은 호숫길을 무작정 따라 올라가니 계곡의 물줄기가 부채꼴처럼 모아지는 그곳으로 작은 길이 나 있다.
그 길은 계곡을 따라 한참이나 나 있다. 깊은 계곡이라 그런지 꽤 올라왔는데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안개가 가득한날, 습기가 가득한 계곡길... 계곡은 그리 가파르지 않게 깊게 깊게 북으로 향한다.
아마도 화전민이 살었던 것 같은 집터엔 커다란 느티나무만 홀로 서 있다. 이상하게 주변엔 다른 잡목이 자라지 않는다. 아마도 집터 곳곳에 돌무더기가 가득 깔려 있나보다.
이제부터 길은 아리송이다.
길을 찾으려 멈춰서면 사삭사삭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와 물흐르는 소리만 난다. 정말 이 숲 속엔 두발달린 짐승은 나 하나다. 어느덧 평온했던 길은 갑자기 내게 본대를 보여주려는 듯 가파름을 선사한다.
둘레산을 돌며 느낀 것. 정말 우금치에서 전투를 버릴만했다는 사실, 이 가파른 곳을 대군을 이끌고 어찌 오랴~ 더군다나 계곡이 깊어 한데 몰리면 매복했다가 한꺼번에 해치우기 쉬운 곳이다. 아무튼 나는 자연스럽게 길을 잃었다. 자꾸만 떨어지는 낙엽을 향해 욕을 할 수도 없고, 이젠 저기 보이는 하늘을 향해 걸어간다. 항상 저 하늘이 희망이다. 저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능선이다. 능선만이 하늘과 맞다 있다.
물이 계곡으로 모이듯 나도 거꾸로 오르고 있지만 자연스레 걷다보니 다시 등산로로 들어 선다. 정말 신이 흙을 빗어 토성이라도 쌓은 것 같다.
누군가 막걸리 통으로 군데군데 나뭇가지에 씌여놓았다. 다른 때 같으면 욕을 했을 터인데 어찌나 반가운지, 그 사람들도 쓰레기를 버렸다기 보다는 길을 표시해 놓은 것이다. 나무의 두 갈레 사이에 말걸리병, 부러진 가지 위에 생수통, 바지춤 헝겊을 찢어 묶어 놓고, 포장지 비닐로 리본처럼 표시를 해 놓은 이 처절함...
10:45 능선! 내 구세주
드디어 능선 위다. 누군가 막걸리 말통을 나무사이에 올려놓았다. “바로 이곳으로 내려가면 수원지다.”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내가 이 길을 두 번이나 지나면서 지금 올라온 길이 여기 있다는 걸 몰랐다. 정말 이런 가파른 물길 같은 곳이 등산로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11:00 지막곡
짧지만 정말 힘든 산행이었다. 지막곡 봉우리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산행길이라면 신나게 내겨갔건만 중간에 또 길이 낙엽에 숨었다. 하지만 결국 아까 그 계곡에서, 화전민 터에서 만난다.
내가 지나온 길이 맞는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시간까지 합쳐 딱 두 시간이다. 내려오는데 꼬박 1시간은 허비한 것 같다. 대충 산행로를 그려 볼 수 잇을 것 같다.
12:00 원점
회귀
힘들다!
아래 하늘색 실선이 이번 산행로다. 산행거리에 비해 무척이나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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