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산행이야기
11.24km, 4:37(관광시간 포함), 평균 2.4km/h
주차장-선운사-마이재-수리봉-포갠바위-천상봉-낙조대-도솔암-선운사-주차장 <원점회귀>
새벽이다. 아니 아침이다. 알람은 06:00부터 울어댄다. 이부자리와 싸움을 한다.
잠들기 전 길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눈보다 염화칼슘을 더 많이 뿌렸는지 아침의 아스팔트는 멀쩡하다.
선운사 주차장에 들어선다.
넓은 주차장에 우리 차만 덩그러니, 더 춥게 느껴진다.
산사로 향하는 길은 아직 부지런함이 미치지 못해 하얀 눈으로 가득하다. 눈(雪)빛과 파란하늘이 겹치는 중간 중간 오렌지빛깔의 탐스런 감이 겨울이 주는 고독함을 상쇄시킨다.
그런데... 3,000원이라는 문화재관람료가 낭만이란 것을 깬다.
개이빨산까지 두루 돌아야하는데 산불예방 때문에 등산로를 군데군데 통제하는 바람에 궤적이 누더기 같아 보인다.
관람료를 냈건 말건, 계획했던 산행코스대로 선운사를 들리지 않고 돌담길을 따라 마이재로 향한다.
콘크리트 포장길이 끝나자 등산로에 발자국이 뜸하다. 우리 일행 선두의 발자국만 있는 것 같다. 그리 가파르거나 험한 길이 아닌데 선두가 길을 잃었다. 1번 무전기 말로는 우리보다 앞선 사람들이 길을 잘못 냈다나 뭐래나.
선운산
수 년 전에 1번 무전기와 함께 무진장 더운 여름날 찾았다 땀을 뻘뻘 흘린 기억 때문인지 내겐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득한 산이다. 기를 쓰고 개이빨산에 올랐는데 별 볼일 없는 것에 어찌나 실망을 했던지. 그래서 그런지 코스 욕심은 없다. 다들 무난하다는 코스를 잡아타고 이동하련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그런지 발걸음이 무겁다. 마이재에서 기다리는 선두가 지들은 숨을 다 돌렸다며 다시 출발을 한다. 어떨결에 잠시 숨만 고른고 뒤따른다.
마이재부터 도솔산까지의 500m는 정말 혹한 속을 뚫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인적이 뜸해서 눈이 거의 그대로 앉아 있다. 점성이 없는 눈밭에 헛발질이 계속된다. 아이젠을 차기에는 애매하다. 바람은 날카롭게 볼과 귀를 할퀸다. 손가락이 시리다못해 아프다.
이렇게 계속 산행을 해야 되는지 걱정스러울 쯤 수리봉 정상석이 보인다. 정산을 비껴 몇 미터를 더 가니 훨씬 좋은 조망이 펼쳐진다.
바다! 하얗게 눈 덮힌 산과 들을 지나 멀리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해가 반짝여서 그런 것인지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지형이라 그런 것인지 날도 따스해진다.
인증샷을 찍느라 호들갑스런 틈을 타 선두무리와 함께 포갠바위 쪽으로 향한다. 지나는 능선길에 마련된 작은 데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선운사, 웅장하다고만 느껴졌던 선운사가 이 거대한 자연 안에 작은 성냥갑 몇 개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
이제 평온한 능선길이다. 지나면서 어정쩡하게 두 개의 바위가 포개진 곳을 지난다. 그게 포갠바위란다. 좀 실망스럽다.
하지만 한 10여 미터를 더 지나니 전망 좋은 마당바위가 나온다. 양지바른 곳이라 눈도 다 녹아 있고 햇살이 따듯해서 점심 전을 펴기에는 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이른 시간 같지만 11시 20분에 점심상을 차리기로 한다.
배불리 먹고 나니 잔꾀가 난다. 그냥 선운사 쪽으로 내려가서 막걸리나 한 사발 마시고 말까? 일부 녀석들은 갈림길에서 하산을 한다. 108배를 해야겠단다. 나도 그런 정성을 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
다시 또다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잠깐 가로질러 구릉 보다는 약간 가파른 코스에 접어든다.
다시 시작된 오르막, 험하지 않지만 오르막은 오르막이다.
한 마디 하지 않고 오른다. 1번 무전기가 오늘 컨디션이 좋은가보다. 펄펄 난다. 기천문을 한다는 후배가 바로 내 뒤를 따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놈의 레이스에 가담을 하고 만다. 모자와 워머를 벗어던지고 기를 쓰며 쫓고 쫓긴다.
아~
이 맛에 산에 오른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땀구멍이 열렸다. 몸속의 노폐물이 액체와 기체로 쉼 없이 내뱉어진다.
잠시 숨을 고르는 능선길을 걷다보니 낙조대와 천마봉이 제대로 보이는 포인트에 다다른다. 아마 천상봉일 것이다. 멋지다. 아침 이부자리와 싸워 이기길 잘했다.
낙조대는 의외로 초라하더군. 조망도... 글쎄~
대신 도솔암이 보이는 천마봉은 여전히 멋지다.
천마봉에서 바라보니 멀리 선운산이라고 불리는 봉우리란 봉우리는 모두 거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천인암(千仞岩)이라는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 위에 초석만 세우고 만든 건물로 작은 고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때붙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년(1817년)까지 수차례 보수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같이 거대한 암석에 포근히 앉아 있는 도솔암 내원궁과 도솔암 마애불을 보자 1번 무전기가 기도를 하고 싶은가보다.
초 한 자루를 사들고서는 정성스레 합장을 한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보물 제1200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고려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불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상 중 하나로 미륵불로 추정된다. 지상 3.3m의 높이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불상의 높이 15.6m, 폭 8.48m가 디며, 연꽃무늬를 새긴 계단모양의 받침돌까지 갖추었다. 머리 위의 구멍은 동불암이라는 누각의 기둥을 세웠던 곳이다. 명치 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 있다. 조선 말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노성이 일어 그대로 당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안내판에 쓰여진 글이다.
자료를 찾아본 바에 따르면, 배꼽 안에 넣은 비결록은 동학도들이 넣어 농민들의 힘을 모으려했다는 것이다. 힘들 때마다 마애불을 미륵불로 만들어 세상을 바꾸려하는 민중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설화가 섞인 역사이야기다.
반송(盤松; 소나무의 한 품종. 소나무 종(種)과 비슷하지만 모양이 조금 다른 것으로 밑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특징)
약 600살 정도로 추정 높이 23m, 가슴높이의 둘레는 3.07m이며, 높이 3m 정도에서 줄기가 갈라져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 이 지역이 장사현이라 ‘장사송’,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 있어서 ‘진흥송’ 이라고도 한다.
<선운산 지역의 수직 암벽>
약 8,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지름 13km의 하산암체의 흔적이 선운산을 중심으로 남아 있다. 점성이 높아 쉽게 흐르지 않고 주변 암석보다 단단하고 치밀해서 가파른 수직 절벽을 이루어 수련한 자연 경관을 형성한다.
<선운산 진흥굴>신라 24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멀물렀다고 진흥굴이라네.
3,000원 본전 빼러 느릿느릿 선운사에 들린다.
추운 날씨 탓에 찾는 이가 드물어 선운산과 선운사가 고요하다.
덕분에 하얀 눈과 파란하늘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간다.
코스도 개이빨산 코스보다 더 좋은 것 같다는 착각아닌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