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15.(일)
대둔산(관광단지-마천대)
오랜만의 휴일이다. 어떻게 보내야할지 모르겠다.
왠지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어울리지 않는 값비싼 턱시도 같기도 하고...
언제나 무리가 따르는 일이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내 산행도 챙겨보고.
이미 진달래와 철쭉은 지나갔다. 그래도 날이 좋아서 사람들이 제법 바글거린다.
케이블카 타는 곳 앞에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힘차게 지나친다.
5분 남짓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길을 난 1시간여에 걸쳐 올라가야 하니 맘이 급하다.
선택한 코스가 케이블카가 있는 곳인 지라 경사가 제법 심한 곳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다리에 근육이 살아 움직인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걱정했는데, 그래도, 그래도 오른다. 대부분 등산로가 바위나 돌덩어리로 되어 있어 스틱은 아예 배낭 안에 모셔둔다.
어느새 땀방울이 저절로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숨은 가빠왔지만, 답답함으로 가득했던 심장이 신선한 공기로 채워져 그런지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
머릿속엔 아무리 지우려 해도 업무에 관한 생각이 맴돈다. 하지만 조금 더 오를수록 이 비탈진 길을 올라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것들은 차마 넘보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니 녀석들이 앉아 있을 자리를 잃고만 것 같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에 둘러 쌓여 오르다보니 나도 모르게 구름다리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구름다리에서 만나 멋지게 사진을 찍고... 어쩌구 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다. 다시 내려가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전화를 거니 아직 케이블카 도착장에서 간식을 먹고 이제 구름다리에 접어섰다고 한다. 내친김에 난 흔들거리는 철제 사다리를 올라 마천대에 오른다.
마천대를 향해 가는 동안 고소공포증에 그냥 멈춰서 앞사람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 속에 내 눈앞에 펼쳐진 멋진 신록의 향연에 흠뻑 젖는다.
바로 코앞 암벽을 기어오르는 사람들, 그 뒤로 신록이 온 통 이산을 힘차게 응원하고 있다.
봄 꽃 구경도 좋지만 새롭게 돋아난 연두빛 잎사귀가 산의 이러저러한 것들과 어우러져 역동감을 자아낸다. 내게 위로를 넘어 용기를 주는 것 같다.
정상, 마천대에는 아직도 산벗나무에 꽃이 매달려 있다. 분홍빛 꽃과 갓 얼굴을 내민 초록빛 나뭇잎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잠시 땀을 식히고, 냉큼 내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러 간다.
못 올라올 것 같았는데, 마천대 바로 밑 정자까지 아이들이 올라와 있다. 시원한 얼음물을 나눠 마시며 녀석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니 오름에 쌓인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아빠를 보자 이내 어린양을 피우는 딸아이를 안아주려, 땀에 젖은 배낭을 집사람에게 건낸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매일 자리를 비우는 남편을 대신해서 아이들과 함께 주말까지 자신을 잊어가며 아이들을 보살피는 아내가 대견스럽다.
그냥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었기에 좋았던 하루, 늦은 점심을 위해 식당에 들어서설 때 갑자기 찾아드는 불안감...
아이들의 말다툼에 내가 나를 잘 참다가, 나도 모르게 버럭 화가 치밀어 올라 터트리고 만다.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는 딸아이, 이젠 이 상항을 어떻게 하면 잘 모면할 수 있는지 아는 노련한 큰아이, 그래도 잘못한 아이들을 나무라는 집사람.
점심은 그렇게도 맑은 날씨에 비해 흐림이었다.
긴 낮잠을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누렸다. 작은 행복. 아직은 모자란 나.
2011.5.21.(토)
모악산(야영장-청룡암-배재-장근재-정상-금산사)
지난 두타산행 뒤풀이에서 나왔던 말, 모악산에 가보자는 제안.
표현이 좀 심할지 모르지만 귀 따갑게 언제 갈거냐고 물어온다.
대체 시간을 낼 수가 있어야지.
그래 언제 시간이 남아돌아서 산에 갔냐?
5.21.로 잡았다. 그런데 수요일부터 내내 기상청을 들락거려 날씨를 확인하는데 참 애매하다. 그래도 산행 당일 낮엔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 출발 전 확인한 일기예보였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 내린 비로 왠지 걱정이 되어 집에 있는 일회용 우비 3개를 배낭에 챙겨 넣는다.
성용, 재룡, 종탁, 그리고 나
정원은 업무가 휴일까지 연장된다고 한다.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차는 성용이 가져왔지만 녀석이 잔머리를 용서하기로 한다.
논산까지 국도를 타고 가 천안-논산 민자고속도를 타려다 보니 돈이 너무 아까워 호남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가기로 했다.
이것이 첫 번째 실수 – 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논산 시내가 북적거린다. 게다가 네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조금 길을 헤맸다. 다들 그냥 민자고속도를 탈 것을... 하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럭저럭 모악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한다.
오늘따라 재룡이 어지간히 짜증을 부린다. 이건 이따 저녁까지 이어졌다.
산행 코스를 야영장 쪽으로 올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해서 모악산 정상까지 가고, 거기서 상황에 따라 능선을 더 타던지 하기로 했다.
청룡암까지의 길은 절가는 길이라 잘 닦아 놓았더라. 이제 절을 지나자마자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된다. 공기를 가득 채운 습기가 몸속 땀을 더 잘 내뱉게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다들 한 주간 쌓인 찌꺼기를 밖으로 배출시키고 어렵게 능선에 다다른다.
능선을 타고 한 10여분을 지나 점심을 해결할 적당한 위치를 찾아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운다.
언제나 맛있는 라면을 끓여주는 친구 종탁. 소주 몇 잔에 금새 피곤이 가시는 것 같다.
성용과 재룡은 지난 한 주 동안의 음주로 소주는 쳐다보기도 싫다고 한다.
이들의 의지는 대단해서 저녁 뒤풀이에도 절주 아닌 금주를 한다.
점심을 해결하고 이제 정상을 향해, 능선을 한창 돌아볼 양으로 산행을 재촉하는데, 한 10여분이 지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냥 산 속이라 스쳐가는 비라 생각하고 자연 그대로 몸뚱이로 다 받아들였건만, 내리는 양이 대단하다.
일기예보... 저녁 6시부터 시작된다더니 또 뻥을 쳤다. 뻥이요!
그렇게 장근재부터 정상까지 내내 많은 비를 맞으며 올랐다. 배낭커버를 챙겨오지 못했지만 다행히 1회용 우비와 기능성 모자가 있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비구름 때문에 정상에 올랐지만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재룡은 경치를 보지 못한 울분을 터트린다. 어쩌냐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는 한국방송 중계탑(원래 중계탑이 정상이라고 한다)을 지나, 능선돌기를 포기하고 가장 빠른 하산길에 접어들게 한 비는 하행길 1/3을 지나서야 수그러든다.
내림에 아~ 이 길로 올라왔으면 죽어났겠구나! 하며 다들 탄식을 한다. 짧은 길이지만 가파름에 대비 만든 계단길이 장난이 아니다.
내려오다 오히려 진을 다 뺀 것 같다. 아직도 비는 조금씩 내리는데, 이제 버린 몸에다 그나마 맞을 만 하다.
금산사, 규모가 대단하다. 아마 금산사 어귀에 있던 공터까지 절이나 절을 보조하는 건물이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은 이층 누각의 절 입구를 지나니 꽤 높은 금산사 대웅전 건물이 보인다.
다들 종교엔 관심이 없지만 입장료가 아까워 한 번씩 둘러봐야 한다고 한마디씩 한다.
이제 졸음이 몰려오는데, 내가 또 운전대를 잡는다.
집에 갈 때는 돈 조금 더 내더라도 민자고속도를 타기로 했다.
민자고속도 요금을 정산하고, 도로공사 고속도로 통행권을 받아야 하는데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성룡이 내려 다시 받아오는 촌극을 벌인다. 이게 두 번째.
이제 논산국도에서 공주로 가는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그냥 대전 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거기다 유턴하는 길에 유턴 경로를 이탈해 그만 역주행 행보를 했다.
이런 실수를 몇 번 하니 탑승객들 모두 운전에 고생했다는 말 대신, 은근히 거친 운전이라며 나무란다. 졸린 눈을 부릅뜨며 왔더니 이 인간들이...
그렇게 저녁뒤풀이는 삽겹살 이다.
비와 산행에 고단해진 몸에 알콜이 빠른 속도로 파고든다. 성룡과 재룡은 지난 한 주 음주를 핑계로 술을 거부한다. 종탁과 나, 열심히 술을 팔아주다.
뭔가 찝찝하기도 하도... 그래도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2011.5.26.(일)
덕유산(향적봉,중봉,설천봉)
친구
덕유산, 횟수로는 네 번째다.
첫 번째는 겨울, 사촌동생이 군대 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녀석을 위로해주고자 버스를 타고 가 1박을 했던 산행이 생각난다. 그때 구두를 신고 온 친구가 어지간히 많이 넘어져 우습기도하고 측은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첫 산행이라 그런지 덕유산 하면 자꾸 그 때가 떠오른다.
이제 그 친구... 배가 너무 많이 나와 동네 뒷산도 오르는데 너무 버거워하더라.
친구야 살 좀 빼고 다시 한 번 향적봉에 올라보자.
욕심
이번 산행은 덕유산의 철쭉을 보고 싶은 욕심에 계획을 잡았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맘이 들어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에 동참하셨다.
우선 나는 삼공지구에서 시작해서 덕유산까지 오름에 3시간 코스를 택하고,
식구들은 설천지구의 무주리조트서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을 지나 향적봉으로 오르기로 했다.
짐은 될 수 있는 한 줄이고, 향적봉에서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오버페이스
무주구천동 계곡 입구까지는 가족이 함께 했다. 내 올라갈 시간을 생각해서 나는 먼저 산행로를 잡고, 식구들은 계곡구경을 하기로 했다.
휴~ 조금 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짐도 최소화해서 꾸렸다. 아무래도 길이 비교적 수월한 삼공지구~백련사까지 열심히 걸어 시간을 벌어야 할 것 같았다.
계곡도 나무도 쳐다볼 새도 없이 열심히 걸었다. 점심시간에 맞추려고 말이다.
이렇게 오버페이스가 시작됐다.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다
백련사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곤도라가 고장나서 3시간 이후에도 정상운행이 될지 미지수란다.
이크~. 어쩌란 말이냐. 되돌아가?
할 수 없다. 난 왔던 길이니까 그냥 올라가기로 한다. 대신 가족들에게 주변 관광을 권한다.
그나저나 아침에 집사람이 김밥 챙긴다는 것을 못 챙겨와, 현지에서 조달해서 정상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 가방엔 초코바 3개와 맥주 한 캔, 방울토마토밖에 없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백련사까지 오니 힘이 달린다. 칼로리가 높은 초콜릿 간식을 대부분 먹어치우고 말았다.
발걸음을 더 재촉할 수밖에 없다. 내려갈 때는 함께 곤도라를 타려고 했는데 그도 못하니 꼬박 다시 내려오려면 오름에 3시간외에 2시간 남짓 더 걸릴 것이다.
갈 길이 멀구나
자꾸만 발걸음을 재촉하니,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이제 산행로를 덮은 나무숲이 사라질 즈음, 멀리 경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상 근처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마음의 끈을 한 번 놓기 시작하니 지루하기만 하다. 아니 가도 가도 안 나오는 정상.
역시 오버 한 결과가 나타나다 보다.
이미 근육은 지칠 대로 지쳤다. 먹을게 없다보니 자꾸 먹을 것만 생각이 난다. 허기가 또 하나의 핑계가 되어 버리다.
쓸쓸함... 아니 씁쓸함
정상에 올라 땀을 훔치고 벌레들을 휘휘 손으로 몰아가며 남은 과일 몇 조각을 먹는다. 쓸쓸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산 정상에 그나마 철쭉이라도 만발했으면 보람이라도, 힘이라도 났을 텐데...
저쪽 설천봉을 보니 곤도라가 움직인다.
이제 운행을 시작했나보다.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이쪽으로 곤도라를 타고 올라온다는 말이 들려온다.
대충 방울토마토를 입 안에 밀어 넣고, 하염없이 기다리기 뭐해 남쪽 중봉으로 향한다.
중간 잠시 대피소에 들러 초코바 몇 개를 사 걸으며 입안에 우겨 넣는다. 그래도 고프다. 오늘 웬일이냐.
반가운 우리 가족
중봉을 향해 가는 길... 제 시기에 맞춰 왔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 봉우리와 주목이 만들어낸 능선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그나마 내 심정을 달래 준다.
갑자기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벌레들이 극성이다.
남덕유산까지 근 12km다. 그냥 달음질쳐 볼까? 하지만 먹을 게 없다. 고프다.
그렇게 중봉을 찍고 되돌아 올 쯤 설천봉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헐레벌떡 향적봉으로 되돌아갔지만 아직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터덜터덜 설천봉으로 향해 반 조금 못 갔을 때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그 바로 뒤로 경식이가 힘차게 올라온다. 아는 체를 하려고 우두커니 서서 바라는데 내가 누군지 대뜸 알아보지 못한다. 아무래도 선글라스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내 가족뿐이다. 반가와 하는 내 아버지와 아들, 뒤 이어 땀을 뻘뻘 흘리며 오는 아내와 딸아이. 딸아이는 잘 오다가 나를 보자마자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향적봉을 올라 기념 촬영을 한다.
어느새 곤도라가 실어 놓은 사람들로 봉우리는 몸살을 앓는다.
어느새 내 지친 몸은 곤도라 안에서 경치를 감상한다.
그래도 나 빼고는 다들 즐거웠나 보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를 쫓아다니다 보니 기진맥진이다.
결국 휴게소에서 라면 한 사발을 먹고 출발한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앞으론 욕심부리지 말자, 내 페이스를 오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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