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논어
굽이치는 인생을 다잡아주는 공자의 말
2021/11/03
2022/05/27
최종엽
유노북스
‘오십’이라는 단어에 꽂혀 이 책을 선택했다.
지난해 7월 끌림에 손에 넣은 책이지만 책장을 쉬 넘기지 못했다.
근래 다 읽고 나서도 막상 뭔가 끄적거리기가 어려웠다.
모든 것이 ‘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2500년 전 공자님 말씀이나 - 나보다 10여 년 먼저 세상을 살아가며 - 그 글월을 다잡아 이 책을 엮어 낸 지은이가 걱정한 것처럼 먼지투성이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살고 있다.
먹고살려고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비교당하지 않으려고
진급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아프지만
뭐라도 아는척하며 생떼를 쓰며 살았다.
그러느라 책 한 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러느라 어렵게 넘긴 책 속 텍스트 하나라도 실천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감히 끄적거리기도 어려웠다.
책에 대한 순수한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현실은 나를 잡아 흔든다.
내 이성이 얼마나 힘든지 끈을 놓아 몸뚱이와 정신머리가 광탈하려고도 한다.
내 이기적 표현으로 ‘진흙탕’ 같다.
아직 내 맘은 이 일로 여기 있는데 세상은 저기에서 저런 일들로 시비를 건다.
그 시비에 난 또 이기적으로 그니들과 이 투전판 핑계 댄다.
나는 잘하는데 저들이 문제다 - 이렇게 악랄한 수다를 떨고 싶다.
전화 너머 친구는 나보다 더한 투쟁을 하고 있다며 쌍시옷을 판다. 명함 내밀기 힘들다. ㅎ
어찌 됐건 하나하나 맘속 본심을 알량한 겉치레로 찍어 누르다 보니 본성이 어딜 가냐? 엉뚱한 장소와 사람에게 화를 내고 만다.
모든 걸 받아주는 가족은 순한 양처럼 내 지랄을 수렴한다.
그럼 다시 반성한다.
결국,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사는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아니다.
잔머리를 부려 머리털만 빠지는 철저한 회색분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 책을 읽고 실행할 만한 그릇이 못 되는 것 같다.
이 가벼운 책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진다.
나이 삼십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에 울컥했던 나
다른 10년은 소속된 사회와 일, 가족을 바라보며 쏜 화살처럼 지나왔다.
그리고 오십
우연치 않게 많은 변화가 나에게 몰려왔다.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책 한 권 읽는다고 다잡아지질 않겠지.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나 말고도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고민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내가 골칫거리다.
아~ 이 책!
신세 한탄만 하게 만드누나.
人無遠麗 必有近憂
인무원려 필유근우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늘 가까이에 근심이 있다.
그러네, 지금 나에게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이다.
근심걱정 없는 시대는 없었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 曰
“하루하루의 삶은 비극에 더 가까웠다.”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류사를 통털어 모두 그랬다.
그 근심을 덜 수 있는 한 방법이다. 人無遠麗 必有近憂
年四十而見惡言 基終也已
연사십이견오언 기종야이
나이 사십에 미움을 보이면 이미 끝난 것이다.
공자 살아 계실 때 나이 곱하기 0.8을 하면 현재 나라란다.
공자 왈 40이 지금 딱 50이다.
사실 이런 말이 문제다. 내 솔직함 대신 겉치레에 참을 인만 세기고 살아야 하는 건가? ㅋ
저자는 수습하라고 한다. 그런 ‘나’를 바꾸라고 한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 보다 퍼스널브랜드를 장착하란다. 알 듯 모를 듯.
父母唯其疾之憂
부모유기질지우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지 않을까 그것만을 걱정한다.
효에 대해 맹무백이 공자에게 물어 얻은 답이다.
오십은 자신의 천명을 아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천명을 다하고 돌아가시는 어른들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때이기도 하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건강한 몸을 보존하는 게 부모에겐 첫 번째이다.
공자께선 효를 일상의 문제였고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마음의 문제라고 보았다네.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지은이도 말한다.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 매일매일의 삶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 무거움 때문인지 부모님 때문인지 눈물이 난다.
차마 43쪽의 글은 옮길수 없구나.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가여적도 미가여립 가여립 미가여권
함께 배울 수 있지만 모두 도를 행하는 데로 나아갈 수는 없으며...
어차피 똑같은 (성공한) 삶을 살 수 없다. 어떤 가치를 만드느냐.
참~ 어렵다. 받아들일 수밖에.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란다.
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불왈여지하여지하자 오말여지하야이의
어찌 할까, 어찌 할까 스스로 말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이미 어찌할 수 없다.
如之何여지하 어찌해야 할까?
힘들어도 내가 풀지 않으면 바로 주저않는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내 힘이 아니면 그 누구도 도와주질 못한다.
如之何 정신.
그나마 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다행?
朝聞道 夕死可矣
조문도 석사가의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열정”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내 열정은 어디로 갔나?
다 내 잘못이란 말이지... ㅎ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그것은 ‘서恕’이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성경》〈마태복음〉 7장 12절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성경》〈마태복음〉 7장 1~4절
동서양 현인들이 오래전부터 제시한 말. 절대 쉽지 않은 말.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자왈 미능사인 언능사귀, 왈 감문사 왈 미지생 언지사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물었을 때 공자께서 “아직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단 말인가?” 계로가 다시 묻기를 “감히 죽음에 관하여 묻겠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삶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 하셨습니다.
당장 긴급하지도 분명하지도 않는 귀신 유무보다 우리 삶에 더 집중하는 게 낫다는 말
性相近也 習相遠也
성상근야 습상원야
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익히는 것에 의해 서로 멀어진다.
반복하는 습관에만 기적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일시적이 아닌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로, 탁월함은 습관으로 만들어진다”
파스칼 “습관은 습관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지 합리적이라든가 올바르다는 데서서 따르는 게 아니다”
삶이 위대한 이유<288쪽>
강론 중이던 신부님이 신도들에게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지옥 가고 싶은 분 있으시면 손들어보세요”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그럼 천당 가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 지금 바로 천당 가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라고 하니,
-아무도 손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가 천당보다 낫습니다.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에서 사형집행 한 시간 전 사형수의 간절한 마음 묘사
... 어떤 식으로 살더라도 살고 싶다. 이보다 더한 진실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맘에 와닿은 몇 구절 옮겨 적다 보니 맘이 풀린다.
공자님 말고 저자가 - 조급한 나에게 - 말한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지금의 50대에겐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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