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월악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월악이와 헤어진 것이 벌써 20년째다. 강산도 두 번이나 바뀌었다. 월악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라 그런지... 일요일 아침임에도 알람을 6시에 맞추어 눈을 뜬다.
아이들을 깨우며 잠시 전쟁을 치르고, 부모님을 모시러 본가로 향한다.
<막 잠에서 깨어난 둘째, 눈이 퉁퉁 부어 있다.>
이렇게 나와 월악이의 재회가 시작되었다.
*양심
그래도 내게 양심은 있는지 우리 가족을 모두 그 자리에 초대했다.
월악이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지라 가족들에게는 멀찌감치 떨어져 보라고 하고는 나 혼자 만나러 간다.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아 2시간 만에 도착을 했다. 평상선생과 함께한 구담봉 가는 길... 산행시간보다 길었던 차안에서의 시간을 생각해보니, 역시 안전운행은 평상선생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구나.
*재회
20년 전 숙취로 이 오르막에서 후퇴하고 말았다. 한창 젊은 나이인지라 “그래 다음에 오면 되잖아.” 하며, 발길을 돌린 것이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너무 오랜만이라 서로 낯설어 말 놓기가 어색했던 시간들... ㅋ
코스: 수산리-보덕암-하봉-중봉-영봉-지광사 8.6km
시간: 09:26~14:38 (5:12)
수산리에서 핸들을 집사람에게 넘긴다.
*중봉과 하봉의 반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덕주공원에서 영봉으로 올라오는 길이란다. 그리고 내가 하산로로 잡은 지광사 코스는 주로 시간이 없을 때 택하는 길이다. 시간이 없어 영봉에 점이라도 찍을 양이면 신륵사에서 오르는 것이 최단코스라고 한다.
내가 선택한 이 하봉~중봉 코스는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은 울퉁불퉁 능선 탐방로로 월악산 코스 중 가장 스릴을 느낄 수 있다고 공단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사실 말이 능선이지 뾰족한 봉우리를 오르랴 내려가랴... 체력단련장이다.
<보덕암 가는 길에 맞이한 단풍>
유명세를 덜 타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동네 사는 산꾼들은 헐떡거리는 나를 비웃듯이 차를 보덕암 턱 밑까지 몰고 와서 게서 산행을 시작을 한다.
보덕암까지는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다. 종교의 힘이다. 포장은 되어 있어도 가파름은 감추지 못해서 내내 근육에 긴장을 잃지 말아야 한다.
<보덕암>
보덕암과 하봉을 지나도록 탁 트이는 경치를 볼 수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가파름에 가만히 서 있으면 서늘한 날씨에 여름 못지않게 땀방울을 밀어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염화포도당 몇 알 가져올 것을. 하지만 빨갛게 타오른 단풍이 제법인지라 몸뚱이의 고통은 금새 희석된다.
하봉은 봉우리 3개 중 키가 제일 작지만 감히 누구에게도 감히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여기까지 기껏 올랐건만 하봉 앞에서 꼬리를 내린 탐방로를 따라 하염없이 내려갔다가 그 만큼 다시 기어올라야 한다. 그래서 하봉의 치맛단을 따라 힘겹게 돌면서도 그 귀한 얼굴을 내내 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헛디디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험한 길이지만, 붉게 물들여 놓은 고운 단풍의 치마폭이 이 고단함을 달래준다.
<내가 흘린 땀방울 보이는가?>
제법 등산 좀 하시는 분들은 이 코스를 이용하신다. 등산 실력 땜시가 아니다. 호젓한데다가 자연의 격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인 거다.
<관리공단 예산절감 현장, 저 바위가 떨어지면 다리를 또 놔야 할텐데...ㅋ>
사실 가파름은 이곳이나 저곳이나 비슷한데, 저쪽 대중적인 코스는 돌로 계단을 반듯하게 쌓아 산으로 곧장 쳐들어가듯 빚어 놓았기에, 월악이 사람들의 두 다리를 몹시 힘들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쪽 코스는 봉우리가 무서우면 이렇게 저렇게 빙 돌아가는 산길로, 산과 사람이 서로 양보하는 미덕을 느낄 수 있어 제 멋이 난다.
<단풍과 어우러진 '하봉'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않은 최고봉!>
그렇게 숲속에서 허우적대다 맞이한 중봉은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다. 영봉에 밀려 이름이 고작 중봉, 하봉으로 밀려났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봉보다 이 두 봉우리가 더 멋진 것 같다.
큰 봉우리와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있으면 임금에게 엎드린 신하 같다고 해서 국사봉이라고하고, 전망이 좋아 이것저것 잘 보이는 곳은 장군이 구석구석 살피어 병사들에게 깃발을 들어 명령을 내릴만하다 하여 장군봉이라 하듯, 봉우리마다 서려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든 꾸며내든 이름을 지어주면 될 터인데,
‘중봉’과 ‘하봉’이 뭐냐?
중봉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내가 사진을 찍고 점심 전을 펴서 젓가락을 드는데 충주서 온 나이 지긋한 산꾼 두 분이 자리를 파고든다.
동네 분들도 하시는 말씀이 진정 월악산은 이 쪽 코스로 올라야 제 맛을 안다는 것이다.
그냥 하산해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저기 남쪽 영봉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시끌벅적한 소리가 중봉까지 들린다.
맥주까지 한 캔 들이키고, 배낭을 고쳐 메고는 영엄한 봉우리로 향한다.
<영봉, 똑바로 갈 수 없어서 왼쪽으로 돌아서 계단길을 열심히 올라야 한다>
<영봉, 뭐냐~ 제 모습을 볼 수 없다.>
*역시, 월악은 ‘악’소리 나게 만든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오르막이... 그것도 계단으로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게 만든다.
팔도 사람들은 다 모였나보다.
<영봉에서 바라본 중봉과 하봉, 그 뒤로 충주호로 굽이쳐 흘러가는 '광천'>
‘영봉’이란 글자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 사진 찍으려 서있기 힘든 봉우리 위에서 무게중심을 잡으며 기를 써가며 줄을 선 사람들로, 영봉은 몸살을 앓고 있다. 어디 비빌 곳도 없어서 걍 내려온다.
월악이가 20년 만에 재회했건만, 그냥 섭하게 간다며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려나 보다.
올라올 땐 오른쪽 무릎이 좀 불편했건만, 지광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엔 왼쪽 무릎에 통증을 안겨준다. 뾰족하지도 않은 것으로 뼈를 살살 긁어내는 것처럼 고문을 가한다.
<영봉에서 덕주사 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안 내려갈 수도 없잖어. 여기서 살어? 담에 또 올게, 오늘은 쿨~하게 헤어지자.”
간신히 달래고 내려온 내리막길. 울 가족이 나를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땀으로 뒤범벅된 꾀죄죄한 나를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사랑하는 가족.
*오르는 내내 비지땀을 흘리고, 내려오는 내내 관절의 통증으로, 영원히 잊지 말라고 꽃이라도 뿌려 놓았는지 걸음걸음 사뿐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산행 후 느껴보는 뻐근함이다. 하지만 마음은 가볍다.
쿠~울하게 이별을 하고 와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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