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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주왕산, 대전사-주왕산-후리매기삼거리-제3,2,1폭포-대전사_2012.10.27.

by 여.울.목 2014. 9. 2.

주왕산 

           

주왕산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주산지, 물속에 잠긴 나무다. 사실 이번에 가 봐서 알았지만 거기하고 여긴 그리 멀지는 않지만 따로 짬을 내어 가야하는 곳이다.

아무튼, 그 주왕산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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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 알람이 울린다. 4시에 먼저 잠에서 깬 집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괜히 미안스럽네... 열심히 점심꺼리를 만들고 있다.

문제는 비다. 뭔 가을비가 이리도 힘차게 내리는지 녀석의 모습이 장맛비 같다. 모이는 장소가 천안인지라 빗길에 엑셀을 힘껏 밟는다.

06:20 온다던 버스는 20여 분을 더 기다려야 도착했다.

맨 뒷자리에 앉는다. 눈인사를 나눈 얼굴이 다섯 이상은 되니 묻지마 관광은 아니다. 이른 시간에다 비구름의 영향으로 실내등을 끄니 차 안은 취침모드다. 취침등 켜진 모양새가 정육점 같드만, 사진으로 보니 사람들 말로는 스타 뭐라는 극장 분위기라고 한다.

 


 

4시간 넘게 달려왔다. 아직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도 공원 내에 사람이 넘쳐난다. 비가 와서 다행(?)히도 사람이 이정도인가 보다. 오는 동안 빗줄기가 가늘어질 줄 알았는데, 맺힌 게 뭐 그리 많은지 쉴 줄 모르고 내린다.

 

시뻘건 판초우의를 뒤집어쓴다. 비 때문인지 주왕산으로 향하지 않고 다들 폭포 쪽으로 길을 잡는다.

어째 본격 산행을 시작하자 빗방울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감상에 젖어 빗방울 소리를 듣기엔 비가 너무 심하다. 게다가 오후 3시에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겠다. 손님이 남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곤란하겠지?

다행히 주왕산은 이 빗속에도 내 발길을 허락한다. 무엇보다 사람을 그리 힘들게 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 대부분 흙길이어서 관절에 큰 무리도 없고, 급경사가 있어도 길게 이어지지 않아 숨쉴 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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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능선인데, 장군봉과 금은광이와 출입이 통제되는 두수람과 먹구등가 한 폭의 수채화로 마주 서 있다. 너무나 예쁜 단풍으로 수려한 치마폭을 그려내고 있는데다 비 때문에 생긴 안개가 싱거울 거 같은 바위봉우리를 감싸 운치를 더해준다. 전망대에서 그림을 더 감상하고 싶은데, 여기까지 와서 부부싸움하시는 분들 땜시 후다닥 갈 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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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주왕산 정상은 조망이 그다지 좋지 않다.

주왕산이 둘레 산 중에 가장 높은 주봉은 아닌데, 마주하고 있는 두수람(928m)이나 금은광이(813m)에 비해 720m로 키가 그리 크지 않다만, 서려 있는 정기가 대단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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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관계상 주왕산을 지나 후리매기 삼거리 쪽으로 간다. 좁은 오솔길... 줄을 지어 가야 하는데,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사진을 찍는다면서 멈춰서는 몹쓸 행동을 한다. 여기저기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그 긴 행렬을 어렵사리 추월해서 가자니 대부분 완만한 능선과 내리막만 이어진다.

바람이 분다. 제법이다. 판초우의가 심란하게 녀석의 움직임에 따라 요동친다. 바람에 치맛자락 날리지 않게 조신하게 치마폭을 잡듯 우의를 다독인다. 치마 입은 여자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거 같다.

후리매기 삼거리를 지나 제1,2,3폭포 쪽에서 올라오고 있는 일행을 만났다. 마땅히 점심 먹기 어려운지라 내려가서 해결하려 했는데, 만난 김에 그 쏟아지는 빗속에서 끼니를 때우는데, “비야 비야 너무한다.” 밥 먹을 때만이라도 좀 참아주지.

점심을 해결하고 일행과 헤어져 내려오는 길...

판초우의를 다시 여미어 입느라 핸펀이니 뭐니 젖지 안게 다잡아 배낭에 집어넣었다. 핸펀이니 사진기니 다시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놈의 경치 아~ 정말 좋다. 어쩔 수 없이 나무다리 밑으로 내려가 배낭을 푼다. 남들은 기암절벽에 더 매력을 느끼는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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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숲 속에서 떨어지는 색색의 낙엽을 바라보고 있자니 황홀할 지경이다. 빗방울이 힘겨워하는 나무를 위해 노랗고 빨갛게 변한 나뭇잎을 떨어뜨려준다. 그래야 나무는 추운 겨울에 내려 앉은 눈송이의 무게를 잘 견뎌 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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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좋은 시간은 제3폭포부터 무참히 짓밟힌다. 그건 다름 아닌 나 같은 관광객들 때문이다. 딱 여기까지가 산책로이기 때문인지 수많은 인파가 몰린 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같다. 빗속을 뚫고 등산로를 오르는 것보다 수 많은 인파를 뚫고 주차장까지 가는 시간이 더 걸린다. 비가 오는데도 이리 많은데, 날 좋았으면 그 산책로에서 헤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루봉, 학소대 급수대 망월대... 사람들에 치어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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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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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에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보다. 내려올 때 조금씩 느껴지던 왼쪽 무릎의 통증이 차 안에서 조금 쉬고 나오니 오히려 더해져 편안한 주산지 관광은 포기해야 했다. 물이 많이 빠진데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저수지다. 그래도 물에 비친 산자락의 비단옷이 참 곱구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가 주춤하더니, 주산지를 둘러보고는 다시 차에 오르니 또 내리기 시작한다.

4시간...

그래도 원 풀이 했다.

 

이번 주 산행은 좀 접어야겠다. 왼쪽 무릎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