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내연산, 두 발로 올랐다 네 발로 내려오다 ㅠ _2012.11.10.

by 여.울.목 2014. 9. 2.

내연산

 

 

 

두 발로 올라갔다 네 발로 내려오다.

 

 

 

statistics.jpg

 

*기다림

 

공주대 인사대학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은 18:30이다. 시간에 맞춰 오려 소심한 조퇴를 했다. 사무실을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하는 날이건만 먼 길을 가야하기에 출발시간을 지켜줘야만 할 것 이기에... 산좋아 타임 30. 미리 알았다면 맘 졸이며 과속하지 않고 제 시간에 맞춰 왔을 텐데, 1910분이 넘어서야 출발한다.

 

금강휴게소에서 수원에서부터 내려오는 종탁이를 만났다. 출발시간이 더뎌서 그랬지 내려가는 길은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느즈막하게 시작한 숙소에서의 조촐한 술자리는 우리 회장님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곁들여지니 안주가 따로 필요 없다. 재미나게 잔을 들이키다 보니 새벽 1시다. 서로 뭐라 할 필요 없이 이불을 덮자마자 코를 골며 꿈나라로...

 

 

 

 

 

 

*해우

 

산채비빔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힘찬 보경사 스님의 육두문자를 들으며 우리 일행은 웃음을 지어본다. 보경사 입구에서는 9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불을 켜 놓고는 입장료를 받고 있다. 새벽까지 마신 술 덕에 산행초입부터 뱃속이 부글거린다. 도저히 참지 못할 것 같아 입장료를 치르기도 전에 화장지를 들고 해우소로 달려간다. 몇 사람이 나를 따라 해우를 하고서야 산행을 시작한다.

 

1.jpg

 

 

반시계방향으로 내연산을 낀 내연산주능선과 매봉주능선을 다름질쳐 내연산수목원을 지나치면 천령산주능선으로 이어져 보경사에서 만난다. 군립공원치고는 꾀 긴 능선이다. 보경사부터 문수봉을 거쳐 향로봉까지 편도만 10km나 된다. 다들 나름 어디서 내려올지 마음을 정한 것 같다.

 

 

 

*겨우살이 준비

 

보경사를 막 지나면서 시작되는 계곡. 전체 계곡으로만 치면 하류에 해당되는데 물은 다 말라 건천 같으니 이상타. 그런데 위로 더 올라가니 물이 맑은 물이 많이 흐르고 있다. 거대한 능선이 품고 있는 물을 걸러내 계곡으로 흘려보내 맑은 물이 모여 계곡을 이루는 것 같은데, 왜 아래쪽엔 물기가 드물까? 물 도둑이 있나? 계곡을 따라가는 처음 길은 그리 거칠지 않다. 평상선생도 산행 중 아직 님을 만나지 않고 계속 전진 중이다. 이제 폭포가 시작되는 시점인데, 문수사 쪽은 제대로 등산이 시작되는 코스다. 처음 계획대로 문수사를 지나 문수봉 쪽으로 망설임 없이 올라간다.

 

허걱~ 드디어 등산로가 시작된다. 다섯 명 모두 오랜만에 산을 찾아서 그런지 본격 산행이 시작되자 말문을 닫고는 오르는데 전념 한다. 노폐물로 메워져 있던 땀구멍을 뚫고 땀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도 한 여름에 흐르는 땀처럼 뚝뚝. 그 땀을 시원하게 씼겨 주는 건 수건이아니라 문수암 턱 밑에서 바라 보이는 계곡과 늦단풍의 어울림이다.

 

2.jpg

 

<실제로 보면 더 멋진데... 탈 게 더 남았는지 자꾸 타들어가는 단풍>

 

 

 

문수암 입구에서 땀을 식히며 감나무에 몇 개 안 남은 까치밥 바라보며 여유로운 가을 정취에 빠져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가파른이라는 말 앞에 정말로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능선이 가까워지는가 보다. 가파름도 막바지 본색을 드러낸다. 나란히 열을 지어오던 사람들의 점과 점으로 희미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단풍은 문수암을 지나 능선 코앞의 가파른 구간에서 마지막 절정을 뽐낸다. 날이 흐려 음산한 날씨였지만 여길 지날 땐 단풍이 주는 그 빛깔이 마치 커튼을 통해 몽롱한 빛을 내어주는 것 같아 어디 색색의 은은한 조명이라도 켜 놓은줄 알았다.

 

 

 

*육산(肉山)

 

문수암 근처의 가파름은 전체 산행길에 비해보면 깜짝할 사이에 지난다고나 할까?

 

그렇게 500고지에 이르니 잘 다듬어진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숲은 이미 겨울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가만히 탐방로를 바라보니 사람의 발로 자연스레 생긴 길이기 보다는 등산로를 정비하는 사업을 벌려 다듬어진 길 같다. 세바퀴 오토바이는 충분히 다닐만한 넓고 잘 닦여진 길이 이어진다. 문수산 정산 바로 전에는 널따란 마당이 반기는데, 학창시설 소풍 때 도시락 먹던 공산성과 곰나루 솔밭이 생각난다. 문수봉은 비껴갈 수도 있고 봉우리를 밟고 지나갈 수도 있다. 봉우리 정상에는 깎아 놓은 조그만 돌덩이 하나만 썰렁하게 세워져 있다. 그나마 먼저오신 아저씨가 내려놓은 짐 꾸러미로 점령당한 상태다. 정상이지만 사위를 바라봐도 나무로 둘러 쌓여 있어 풍경을 볼 수는 없다. 다시 길을 나선지 얼마 안 되어 비껴가던 등산로를 만나는데 등산로 뿐 아니라 거기서 헤어졌던 일행까지 만난다.

 

내연산 등산로의 특징: ‘육산(肉山)’이란 말처럼 처음 오를 때 말고는 편안한 흙이 있는 능선이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거칠 것 같은 봉우리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비껴가는 탐방로가 단정하게 나 있다. 편하기는 한데, 그러다보면 지도를 보며 산줄기를 가늠해보는 즐거움은 포기해 한다.

 

길이 좋기에 쾌속으로 걷다보니 몇 안 되는 일행도 따로따로 그룹지어지게 되고, 아까 우리를 추월했던 부부를 만나 눈인사를 나눈다.

내연산의 주봉은 삼지봉 인데 높이로는 710m로 옆에 선 향로봉 930m에 비하면 키 차이가 꽤 난다. 향로봉과 문수봉, 북쪽 동대산 이 세 곳으로 나누어지는 곳이라 삼지봉이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삼지봉이 주봉인 이유는 삼지봉 자락에 품어져 있는 멋진 계곡과 폭포 그리고 기암절벽 때문인 것 같다. 그 장엄한 광경은 계곡 트레킹 때 볼 수 있는 것인데, 난 이번 산행에서 그 길을 걸었지만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삼지봉 정상. 바람이 꽤 차다. 높이 때문인지 동해바다의 해풍이 거세게 불어친다. 향로봉 쪽으로 살짝 내려가니 바람이 덜하다.

 

 

 

*점심 전을 펴다

 

삼지봉 정상 막바지 오르막부터 왼쪽 무릎에 신호가 왔다만 그리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통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묵직하게 짖누르는 것 같다. 점심 식사를 위해 배낭을 열어 무게가 나갈 만한 것들을 최대한 꺼낸다. 라면과 2리터 들이 생수와 간식, 맥주까지 뱉어내니 무게가 한결 수월하다. 하산 길의 혹시 모를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 볼 양으로...

 

김치 얻어 보려고 내 뱉은 말끝에 얼떨결에 “~you”사투리로 마무리. 동해바닷가 경상도 사람들에게 얼마나 생소하게 들렸을까? 평상선생, 미안하다만 혼자 킥킥대며 웃느라 정신없었다.

 

3.jpg

 

 

<'내연산 삼지봉' 표지석 앞의 숫자는 뭘까?>

 

 

 

*양치기 소년

 

내연산주능선은 향로봉까지 편도 10km이고, 봉우리를 거치는 길과 비껴가는 길로 거미줄같이 여러 길이 나 있다. 내리막 길은 물길을 따라 이어지기 보다는 계곡까지 이어진 산줄기를 따라 있어, 길마다 이름 끝에 자가 붙어난다. 칠성등, 조피등, 미결등, 밤나무등, 고메이등...

 

향로봉까지 가자는 꼬임에도 흔들리지 않는 3명의 용사들은 처음엔 밤나무 등을 타고 내려온다더니 삼지봉을 지나 내려가는 길이 나오자마자 냉정하게 이따 봐~” 그들이 택한 길은 미결등 이었다. 아마 은폭포부터 계곡 트레킹을 시작했으리라. 내가 양치기소년이라도 된 것 같다. 이 용사들 내 말은 안 믿는다.

 

향로봉까지의 길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그냥 와도 괜찮았을 그런 길을 비풍초똥팔삼순서도 생각지 않고 던져버리는 화투패 같이 너무 쉽게 버린다. 그래도 700고지에서 900고지로 향하는 길이라고 오르막은 계속되지만 그 길이가 있어 완만하게 이어진다. 조금씩 왼쪽 무릎이 신호를 보낸다. 살려달라고.

 

4.jpg

 

 <능선부터는 나무가 바닷바람 때문인지 겨우살이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다>

 

 

 

아랫녘과 달리 윗녘 숲은 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겨울 채비를 모두 마쳤다. 그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포말이 보인다. 바다다! 향로봉 정상은 바다를 온전하게 보여준다. 날이 흐려 수평선이 희미하니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애매하다. 여기까지 10km넘게 걸어오길 잘했다. 하지만 이제 내려가는 건 어떻게 한다냐?

 

5.jpg

 

<날이 흐려 수평선이 희미하다. >

 

 

 

*고통

 

하산하는 길. 내겐 통증과 싸운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

 

6.jpg

 

<서 있는 폼도 왼쪽 다리가 불편한 모양이다. ㅋ>

 

 

 

본격적으로 가파른 내리막이다. 이런! 무릎을 굽힐 수가 없다. 통증이 어마어마하다. 친구말로는 관절이 문제가 아니라 근육의 문제라고 하는데, 그러길 바란다. 굽히는 동작을 할 수 없지 다른 동작은 큰 이상이 없다. 스틱이 없었다면 어떻게 내려왔을지...

 

왼쪽이 그 모양이니 양 팔과 특히 오른쪽 다리에 힘이 몰린다. 최악의 산행이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오자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진다. 12개의 폭포가 있는 계곡이다. 그 절경이 내연산의 명성을 유지해온 것 같은데, 내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주차장까지 남은 8km를 무사히 내려가는 것이 목적이다.

 

처음 두 개의 폭포는 등산로에선 접할 수 없었다. 표지판과 물소리로 그쯤에 폭포가 있을 것 같다고 예상할 정도다. 예전엔 계곡을 따라 난 등산가 나 있었나보다. 최근에 탐방로를 정비하면서 계곡과 떨어져 닦은 것 같다. 바람소리인지 계곡물소리인지... 처량한 내 몸뚱이를 위로한답시고 노래를 해대지만 전혀 반갑지 않다.

 

7.jpg

 

두 폭포를 지나자 너널지대가 나타난다. 경치 감상보다는 걸을 때마다 그대로 전해지는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이러다 진짜 내 다리 너덜거리는 건 아닌지.

 

8.jpg

 

계곡과 어우러진 은폭포와 과음폭포, 상생폭포... 조금만 움직여 보면 더 멋진 풍경이 보일 것 같은데 그러질 못하겠다. 내 목적은 오로지 귀향이다.

 

9.jpg

 

일행에게 피해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좀 괜찮은 길이 나오면 힘차게 스틱질을 해가며 속도를 낸다. 이놈의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절경이라는 표현을 몇 번 썼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다. 어떤 이들은 바위에 걸터앉아 계곡물에 발 담그고 과일을 먹으며 신선놀음을 하건만... 목적지 보경사를 400여 미터 남겨 놓고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으로 잠시 주저앉았다.

 

힘들게 움직이다보니 산행에 서투른 사람들 심정도 이해 간다.

 

10-1.jpg

 

10.jpg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일행은 공주에 있는 까치집이라는 도착했다. 소주 몇 잔을 먹고 나니 다들 잠이 고픈가보다.

 

 

 

장시간 운전한 총무님과 친구 종탁 무지무지 고생 많았다.

 

 

 

무릎 통증은 하룻밤 자고 나니 가셨지만 오른 쪽 다리와 양 팔이 그 뻐근한 후유증은 며칠 간 반갑지 않은 동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