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99/02/05
밀란 쿤데라
이재룡
㈜민음사
마지막 장에 적힌 ‘2001.1.15.’ 23년 전 처음 이 책을 읽었다.
뭔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질 않지만,
아마도 가벼운 내 존재에 대해 위안을 찾고 싶었을 거다.
그리고, 몇 페이지 읽고 지금과 같이 실망 아닌 실망이 들었으리라.
그땐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지금은 뭐가 그리 널 가볍게 하고 있니? ㅎㅎ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닐라나?
니체 이야기로 시작한다.
초반부터 무슨 말인지… 두어 번 읽어야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무겁게(?) 철학적으로 접근하지만,
이내 선정적인 묘사를 머뭇거리지 않고 꺼낸다. 소설 내내.
삶 자체에 대한 고뇌임은 분명한데 -나같이 보수적인 사람들에겐 – 자주 연출되는 선정적인 장면이 이야기 전개를 끊는 것 같은 느낌에다 외설인지 예술인지 헷갈리게 한다.
진솔함?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 낸 건데 내가 터부시 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과의 문화적 차이인가.
마음 쉴 곳을 찾아들었는데 뭔가 이질적인 것이 처음 감정을 흐린다.
뭔가 잃은 느낌이기도 하다.
책 표지 피카소의 그림만큼이나 난해하다.
적어도 내겐 - 존재에 대한 가벼움을 위로 받기 힘들었다.
뭐, 내 읽은 느낌이니 세계적인 문학작품을 잘못 이해했다고 거짓 소감을 적을 순 없다.
그렇다고 그것에만 집착한 3류 소설은 아님은 분명하다.
그들의 애환이 느껴진다.
삶이 그리 순탄치 않는 주인공들에게 소련군이 봄까지 빼앗아 간다.
작가의 작품 「농담」과 비슷한 소재가 소설 중반부터 전개된다.
그냥 그렇게 적나라하게 사생활을 즐기며 고뇌하며 살던 그 - 잘못된 것에 대한 부당함을 표현한 글 하나로 외과전문의에서 트럭운전 노동자로 계급 전락을 한다.
체제에 빌붙는 척을 하면 다시 계급으로 올라설 수 있는데 그는 스스로 무거움을 택한다.
작가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지 않는다.
독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상황이다.
전지적이지만 여전히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다 놓고 만다.
테레사를 빼곤 주인공 대분이 잘나가는 지위에 있다. 언듯 우리나라 흔한 아침 드라마의 소재 같기도 하다.
지식인들의 민낯인가, 그들도 같은 인간이라 그런 건가. 그런 그들을 멋지게 포장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스스로 위로 받기 위해 책을 다시 집었는데 개운치 않다.
자꾸 뭔가에 내 뇌가 쪼그라져 있나보다.
아무튼… 처음 보다 혼란스럽지 않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를 나이들면서 이해하기 쉬워진다.
노자의 말처럼 비워야 채울 수 있으리라.
다시 되뇌인다. 노자의 또 다른 말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사는게 다 그런가보다.
이야기 전개는 단순치 않고 입체적이다.
-토마스가 바라보는 테레사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음 장에서는 테레사의 시선으로 토마스를 바라본다.
-그리고 토마스의 애인의 시선으로…
-토마스와 테레사의 죽음을 일찍 알려 싱거울 것 같은데, 그들의 엔딩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며 시간의 흐름을 전지적으로 주무른다.
다른 시선으로의 이야기와 이야기를 보완한다.
똑 같은 장면이 다른 시선으로 보여진다. 다른 시선으로 관찰한다.
보완 과정 - 다른 시선에서 일상 속 나만의 잣대로 상대방에 대한 오해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다 그런가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이지만 읽다 보면 전지적인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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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모르겠지만 어렵겠지만 정리해보자.
내심 허영심과 허접한 자존심이 가벼움을 느끼게 했으리라.
혹 진정한 가벼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버겁게 읽었다. 20년 전 처럼.
그래도 책 제목만으로 위안을 받는다.
누구누구도 나와 비슷한 가벼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고민을 했다는 방증이다.
책 줄거리를 엮어보고, 소설의 구성을 풀어 헤치며, 작가나 잘난 주인공을 능욕하기도 하며,
이런 과정만으로도 나 스스로 위안을 가진거였다.
비오는 날 어쩔 수 없이 옷이 젖을 지언정 위안이 되는 우산처럼 - 우산을 얻었다.
사는게 다 그렇다.
老子의 말처럼 빔(empty)이 있어야 뭔가 채울 수 있다. 30대 나를 바로 세웠던 '노자'의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젊은 날의 초상, 노자, 그때 장자를 만나고, 오십에 읽는 논어...
꼴갑떨며 삶의 변곡점마다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게 어디냐.
끝이 없다. ㅋㅋㅋ
사는게 그런거지.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회오리바람은 한 아침을 마칠 수 없고, 거센 소나기는 한나절을 마칠 수 없다.
어려운 한자 구절을 벌써 세 번째나 읊조린다.
이윤기 님의 그리스 로마신화가 떠오른다.
내용은 거의 까먹었지만, 이건 생각나 그때 리뷰를 리뷰한다.
신화 - 창조적 신화읽기는 간접경험, 예방주사와 같다.
흐트러기거나 쓰러지지 않게 감히 중용 취할 수 없지만 다가섬을 게을리 하지 않는 소중함을 되새기면서.
https://yyh911.tistory.com/208
그리스 로마신화 1,2,3,4,5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1 2000/06/26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2 2002/02/07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3 2004/08/13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4 2007/10/15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5 2010/10/15 초판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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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 - 노자와 21세기 [3]
2000/05/03 도올 김용옥 통나무 철학은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철학은 반드시 깨달음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철인들의 저작이 바로 그들의 삶에서 깨달은 것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 깨달음
mycall.pe.kr
1부. 토마스의 시선으로 테레사와 만나는 이야기
토마스, 이혼으로 가족과 부모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다 몇 번의 우연을 통해 테레사를 만난다.
여러 우연이 필연이 된다. 앓고 있던 테레사를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띄여 보내져온 아기(로물루스…아니 오이디푸스가 더 정확하다.)로 표현한다. 그 아기를 여느 여자친구처럼 버리지 못하고 함께 살게 된다.
같이 살면서도 토마스는 여전히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한다. 테레사는 소극적(꿈)이지만 적극적(꿈을 토로)으로 질투한다.
시대적 배경은 소련의 체코 침공, 그들은 스위스로 도피한다.
여전히 다른 여자를 만나는 그를 떠나 체코로 되돌아 가는 테레사.
자유를 만끽하는 토마스: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한다. 그러나 그 자유를 얼마 버티지 못하고 테레사를 따라 체코로 돌아간다.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데 근거한 세계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심각한 도덕적 변태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 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11> ↔ ***탐 크루즈 주연 「엣지 오브 투모로우」
테레사와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며...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인새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15>
단시일 내에 부인, 아들, 어머니, 아버지를 성공적으로 떼어리리고... 그에게 남은 유일한 상속 재산이란 여자들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 여자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했다.<19>
2부. 테레사의 시선, 그녀의 엄마와 토마스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
테레사와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 그녀 어머니 역시 아름다웠다. 본성에 이끌린 배우자 선택 때문?에 우여곡절을 거치며 리즈시절과 딴판이 되어버린 그녀 어머니. 그저 성격좋은 창피함을 모르는 동네 아낙이 되어 버린다.
테레사는 그녀 어머니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한다.
테레사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좋아하려는 그녀. 그런 소굴에서 어머니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연장선상’ 연민이란 감정을 불러온다. 내내 그 연장선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소설 처음 부분으로 돌아가 다른 시선으로 1부의 내용을 보완한다는 느낌.
테레사 뱃속에서 나는 꾸르륵 소리-1.그녀가 실제 존재했다, 2.영혼과 육체 간의 화해 불가능한 이원성, 3.영혼과 육체의 단일성, 과학 시대의 서정적 환상은 단번에 깨지고 만다.<49-51> ***작가는 미래에 출간될 이기적 유전자를 보았나?
삶의 연장선상<52,57>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소설을 위한 소재인가? 인생사 누구나 갖는 고통인가?
우연은 필연성과는 달리 이런 주술적 힘을 지닌다. 하나의 사랑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60>***옷깃만 스쳐도 인연....
독학자와 학교에 다닌 사람과의 다른 점은 지식의 폭이 아니라 생명력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의 정도 차이에 있다.<66>
3부. 사비나의 시선 이야기를
앞에서 토마스의 정부(情婦)로만 그려졌던 사비나, 그녀가 사귀고 싶은 남자를 만나더라.
유명한 학자이자 교수와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를 위해 가정을 버린 그남자 프란츠를 배신하고 떠난다. 소설 속 프란츠는 엄친아 같다.
배신당했던 사비나의 어린시절… 그녀는 잘난 그 남자를 배신을 하고 싶었나보다. 순결한 배신.
하지만 우연히 프란츠에게 전혀 다른 싱그러운 다른 사랑을 가져다준다.
문득 사비나에게 토마스의 아들로부터 편지가 온다. 트럭 운전사 토마스와 양치기 테레사가 죽었다고.
행렬: 그녀의 행렬-노동절 행진, 그의 행렬-시위<116>
공동묘지: 요람-추악한 하치장<123>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144>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모표일까?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망 소식<145>
사비나의 배신, 그녀는 순결한 배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안성맞춤 배신.<149>
4부. 프라하에서의 하층민 생활과 비밀경찰의 농락
다시 웨이트리스가 된 테레사 - 프라하에서 지친 삶을 산다.
그런 그녀에게 일어나는 사건들 속 토마스는 관찰되어지는 조연 중 하나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실제 비밀경찰이었는지 모르는지만 그녀에게 접근하는 남자들과
그녀의 소심한 외도. 토마스에 대한 복수인지 배신인지…비밀경찰에게 농락당한 건지 술집 손님과의 유희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작가 - 유독 테레사에 대한 시선이 구슬프다. 요즘으로 치면 여성차별?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다. ㅎ
그녀를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 내내 답답한 안개속에 갇힌듯한 느낌이다.
사우나로 가는 동안, 사우나에서 그녀의 행동과 생각에서 그런 그림이 그려진다 - 안개, 답답함.
작가는 테레사를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우매하게 설정한 것 같다.
이세상이 집단수용소로 바뀌었다고.
5부. 외과 전문의 토마스의 추락한 이야기를 시간 역순으로
여기부터 작가의 다른 소설「농담」과 비슷한 소재로 소설의 한축으로 끝까지 끌고 같다.
4부의 테레사의 시간과 교차한다.
체코 프라하로 돌아온 토마스, 다시 실력 있는 의사 생활을 한다. 그런 그가 글을 한 편 잡지에 기고한다.
오이디푸스의 깨달음과 자책감을 비유하며, 몰랐기 때문에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에 분노한다.
짧은 글을 철회하기 싫고 타협하기 싫어 프라하 병원 외과전문 자리를 떠나 시골 병원으로 도망한다.
내무부 경찰이 찾아온다. 철회 서명을 강요한다. 더이상 그를 찾을 가치가 없도록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로 스스로를 던진다.
외과전문의에서 노동자로,
의사선생 노동자로 묘한 해방감을 느낀 토마스. 휴가? 프라하 여기저기 유리창을 닦으며 여전히 여성 편력을 즐긴다.
내무부 경찰의 서명 요구를 거부한 그 : 대척점에서 저항하는 기자와 친아들이 요구하는 탄원서에도 서명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그들의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힘을 가하자 저항한다.
프라하를 떠나고 싶은 테레사 뜻을 따라 토마스는 또 도망을 한다.
중앙 유럽 공산주의 체제를 철저하게 범죄자들의 창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복적 진리를 어둠 속에 은폐하고 있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며 이 길을 용감하게 지켜왔다. 훗날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광신자들은 살인자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밝혀졌다. <202>
범죄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 몰랐다고 해서 과연 그들이 결백한가에 있다.권자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였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03>
이런 취지의 글을 오이디푸스의 신화에 빗대어 쓴 토마스,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지 않는다.
테레사에게 떠밀려간 것은 단지 7년 전 발생했던 하찮은 우연의 연속 - 그 우연은 더 이상 빠져나갈 길 없는 새장 속으로 그를 몰고 갔다. <221>
토마스에게서 필연성은 의사의 길이었다. 재능보다 훨씬 심오한 … 근본적 동의를 바탕으로한 직업.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사회적 위치 때문은 아닐까? ㅎ
그런 직업을 버린다. 잃는다. 그래서 보다 심오한 무엇, 이성적 사고로 포착되지 않는 그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물음을 던진다.
베토벤의 농담으로 탄생한 “그래야만한다!”. 농담을 형이상학적 진리로 환골탈태. 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으로의 전이. 토마스에게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반항.<224-225>
토마스는 한 여자를 다른 여자와 구분짓는 이 백만분의 일의 상이성에 사로잡힌 것이다. 여자 사냥에 내모는 것은 관능의 욕구가 아니라 세계를 정복하려는 욕망이었다. <229, 230>
인류가 매번 성숙도를 높이면서 다시 태어나는 다른 행성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영원회귀에 대한 토마스의 생각… 낙관주의자라 5번 행성에서는 인간의 역사가 덜 피투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관주의자란 그런 것을 맏지 않는 자이다. <258-259>
2년간의 휴가 - 15소년 표류기
수술대 없는 휴가는 텔사 없는 휴가이기도 했다 … 그는 그녀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존재가 참을 수 없는 우연성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 누가 그녀를 바구니에 넣어 물에 띄워 보낸 것일까? … <261>
6부.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이제 잠시 한걸음 떨어져 바라본다.
스탈린의 아들-신으로 추앙받던 스탈린의 아들-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독일 수용소에서 죽는다. 그 가치 없는 똥… 치우기 싫다고 반항하다 전기철책에 감전된다.
똥으로 키치를 불러온다.
키치란 본질적으로…: 미학(美學)에서 보기에 기이하고 저속한 나쁜 예술의 미적가치, 하찮은 모조품, 저급한 것, 나쁜 취미등으로로 간주하는 싸구려 문화라고 한다.
공산주의에 빗대어 키치를 비판한다. 참을성 있게 읽어 보면 사전적 의미와 다른 이면도 있다. 우리 삶과 세상 여기저기에도 키치가 있다고 한다. 그런 키치와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게 학문의 예술의 한 기조이기도 하다. 그 기조가 주류가 되는 경우도 있고.
키치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에서 어쩌다 대장정이란 주제로 넘어갔는지 모른다.
사비나에게서 배신당했지만 어린 제자와 행복했던 프란츠의 대장정. 그럼에도 여전히 사비나를 그리워하고 있다..
사비나와 다른 행렬에 선 프란츠는 세계 평화와 인권, 뭐 그런 거창한 것을 위해 캄보디아 국경까지 시위의 행렬에 참여한다. 가식으로 가득 찬 시위를 마무리 하고 어이 없게 - 가볍게라고 해야 하나? 태국에서 개죽음을 당한다. 유도선수 몸을 가진 프란츠, 허망하게 강도 살인을 당한다. 이게 키치인가?
작가 왈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인 셈이라 한다.
이걸 뭐 신, 인류, 투쟁, 사랑, 남자, 여자… 길게 설명하고 있다냐.
공산주의에 대한 사비나의 첫번째 내면적 저항은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미학적인 성격을 지녔다. 공산주의 행렬에 대한.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인 셈이다. 왜냐하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94>
키치의 정체는 정치적 전략이 아니라 이미지, 메타포, 용어로 결정된다. <299>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다.<308>
1.익명의 무수한 대중의 시선을 추구 - 대장정 속 독일 가수와 미국 여배우, 소련에 저항하는 신문기자
2.다수의 친숙한 사람들 시선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 - 언제나 어떤 시선을 획득 한다. 칵테일 파티나 만찬을 즐기는 마리클로드와 그녀의 딸
3.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 토마스와 테레사
4.아주 드문,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 - 몽상가, 프란츠, 토마스의 아들
1번과 3번은 무대의 불이 꺼졌을 때 절망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무거움의 상징 아래에서 죽었다. 그녀(사비나)는 가벼움의 상징 속에서 죽고 싶었다. <311>
7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
트럭운전사 토마스와 양치기 테레사의 애완견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죽음을 대신 설명하려는 듯 하다.
내 눈엔, 그나마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게 한 애완견 카네린과 달리 소유자 이자 주인인 인간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무거움이 가변게 느껴지더라.
난잡한 꿈을 그린 것 같다.
3부에서 이미 카네린의 소유자 인간 토마스와 테레사의 죽음을 알렸지만,
이야기 마지막을 그들의 마지막으로 맺지 않는다.
끝까지 머릿속을 난잡하게 한다. 군데군데 난잡한 꿈을 그린 것 같은 부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느낌적 느낌으로 퉁~ 치고자 한다.
창세기에서 인간의 권한. 인간은 이 행성의 주인이 아니라 경영인에 불과, 어느 날엔가 결산을 해야 할 것이다. ↔ 인간은 소유자이자 주인인 반면, 동물은 자동인형, 움직이는 기계, 마키나 아니마타(Machina Ani-mata)에 불과하다고 데카르트 <327>
니체는 말[馬]에게 다가가 테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인류와의 결별)는 말을 위해 울었던 순간 시작되었다. <330>
낙원.아직 인간의 노정에 던져지지 않았던 때/곳. 낙원에 대한 향수,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고 싶지 않은 욕망이다. <337>
테레사의 사랑: 계략, 얼마나 교활했던가! 그녀는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따라오게 했다. 늙고 지치고 트럭운전사가 되어버린 토마스. 하느님 맙소사,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정말 여기까지 와야만 했을까! <354>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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