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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대둔산(수락-낙조-마천)

by 여.울.목 2024. 12. 22.

대둔산(수락)
2024.12.22.(일)
수락주차장-석천암-낙조대-마천대-군지구름다리-주차장(원점)
8.35km | 3:55 | 2.1km/H

 


 

이 코스로 마천댈 다섯 번째다.
완주 쪽에서 오르던 패턴을 바꿔 몇 해전부턴 수락계곡 쪽으로 다가선다.
짧고 가파르게 올라 짜릿한 풍경 맛보기보다
접근성 좋고 여유롭게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침, 꽤 춥다.
그럼에도 전날부터 졸린 눈을 부벼가며 배낭을 챙기고 차를 우려내, 드뎌 다음 날 아침 문을 나선다.
가족들도 문밖으로 나서는 날 막아서지 않는다.
 
항상, 이럴 땐 뭔가 비워낼 요량으로 나서는 산행이지만 늘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비워내야 할 대상은 말 그대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기는 커녕 쿵쾅거리며 망치질로 무한 반복 재생되기 때문이다.
이게 현실이다. 어찌 말끔하게 지우개로 지울 수 있겠어.
그래도 그 쿵쾅거림은 물리적이고 육체적이고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기상현상 앞에서 생존 본능 발톱을 내세워야 하니 좋은 말로 다독거려지고 만다.
 
그래도 어제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았으리라 기대한다.
아이젠을 꿰차고 석천암 가는 너덜길을 오른다.
석천암 뒤편 바위에 올려진 석탑으로 전경을 찍어야 하는데 눈 때문에 참는다. 위험하다.
그래도 여길 오를 땐 언제나 철쭉철이면 꼭 찾으리라는 월성봉을 바라보며 맘을 달랜다.
다행히 기온은 시간이 흐를수록 순해진다.
눈이 살짝 녹아 자꾸 아이젠 이빨 사이로 끼어든다. 거추장스럽다.
그 무게를 달고 석천암 지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가파름에 질릴 무렵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보인다.
낙조대다. 하얀 가지마다 상고대가 가득 맺혀있다.
둥그스름 뒤엔 가파른 절벽을 품고 있다.
그 절벽은 금산 진산면 일대의 멋진 풍경으로 선물한다.
절경을 뒤로 아쉬워할 틈 없이 올라오매 보았던 상고대가 “와~!” 탄성을 지르게 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 자연이 만든 멋진 장면에 가던 길 멈추고 열심히 사진으로 남겨본다.
눈 때문에 칠성봉 언저리에 이어지는 암릉 구간의 조망은 포기한다. 살아야 한다. ㅎㅎ
거친 암릉 구간을 우회해서 그런지 싱겁게 마천대에 다다른다.
마천대에서 조망은... 햇살에 이미 녹아내려 회색빛과 섞여 매력이 떨어진다.
녹음 짙은 풍경이 더 어울린다.
아쉬움을 뒤로, 하산이다.
돌아선 순간 – 북편으로 – 오를 땐 왜 안 보였나? 햇살 방향이 달라서 그런가?
낙조대와 사뭇 다른 마천대 상고대!
 
아들과 함께 찾아 도시락 먹던 자리에서 간단히 끼니를 채우리라.
소나무도 멋지고 바위도 기품 있는데 생태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로 밥맛을 떨구던 그 자리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한 추억에 – 접이의자를 펴고 앉아 한숨 돌린다.
군지구름다리 지나 달갑지 않은 오르막에 맞닥드리면 내림에 익숙했던 근육이 놀랜다. ㅋ
그 작은 봉우리를 정점으로 수락의 깊은 응달 계곡으로 빨려 들어가면 산행은 무사해 마무리된다.
산행 장비 정리하고, 차 안에 앉아 남은 차를 보온병 뚜껑에 따라 마신다.
얼얼한 볼 따귀가 간질거린다. 따듯한 기운이 몸을 타고 흐른다.
추위를 뚫고 내달렸어도 달라진 건 없다. ㅎ
그래도 내가 바꿨다.
뭔가 변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는 주변 사람과 환경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 《주역》 “길흉회린은 행동으로부터 생겨난다. 吉凶悔吝者 生乎動者也”(「계사하전繫辭下傳」 1장)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흉한 결과를 피할 수 있고, 길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 잘 하면 되리라. 이 고통은 부리지 말아야 할 내 욕심 때문이었다.
사실 욕심 없이 뭐가 되겠어? 뭘 부리고 뭘 부리지 말아야 할지 지나고 나니 알고 만다.
그래도 다시 비우고 채우고…

2024-12-22_대둔산_수락_마천대.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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