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두려움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인지 산행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새벽녘 잠자리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그 편치 않음은 일방적으로 피곤함으로 쏠리는 것이 아닌... 뭐랄까? 초등학교 소풍 때의 그것?
지난 초가을부터 시작된 설악과 도봉에 대한 내 애정은 무릎통증 때문에 미뤄야만했다. 그렇다고 그 동안 산행을 아예 접은 것도 아닌데, 나와 밀당을 즐기려는 건가? 날을 잡을 때마다 다른 일이 생기거나 다른 곳 산행에 동참하고... 무엇보다 같이 가자고 아무리 연막을 피워도 꿈쩍 않는 내 주변사람들도 참 대견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통증이 제일 걱정이다. 주말이 다가올수록 왼쪽무릎이 자꾸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일상 속에서도 그 조금씩 느껴지기에 머릿속 한 구석엔 그놈의 ‘공포’가 지긋이 계속 나를 압박하고 있다.
사실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그러기에 적극적으로 누구보고 같이 산에 가자는 이야기를 못 꺼냈었다. 먼 곳까지 꼬드겨 산행을 하면서 폐를 끼칠 것 같다는 생각, 나 때문에 산행일정에 차질을 빗지는 않을까.
비록 ‘소풍’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했지만,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최근 연 2회의 산행에서는 그간 맨몸 스쿼트를 열심히 한 덕인지 내려오면서 느끼던 그 무시무시한 통증은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내 깜냥만큼 움직여야 한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차분히 기다리자.
<뉴욕타임즈에서 소개하는 무릎강화 프로그램 동영상>
http://www.nytimes.com/video/2009/08/11/magazine/1247463944384/increasing-knee-stability.html
*여정
며칠 늦잠으로 아침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서 그런지 집사람이 친히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왔다. 첫차06:00는 부담스러워 06:40차를 타려 했는데 매진이란다. 차 출발 전 예약을 거스른 빈자리를 물어 간신히 차에 올랐다. 가래떡과 사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고속버스 우등8,600원 일반7,700원│지하철1,350원*2회
주말이면 등산객으로 지하철이 가득 찬다는 친구의 말은 뻥~이요. 주말치고는 이른 시간이라서 그랬는지 오전8시부터 9시 구간의 지하철은 여유 있다.
그런데 역사로 나오니 여기저기 등산객이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버스와 자가용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간들이 엄청나다.
*측은지심
엄청난 인간들이 드러낸 도봉산을 향해 개미군단처럼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도봉산역에서 보이는 도봉산, 그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니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다. 산 정상부에 함께 있던 흙은 기나긴 세월에 싰겨 아래로 내려가고 그 속알머리만 남은 것 같다. 그 속알머리도 햇볕과 비와 바람에 모진 풍파를 겪어 여기저기 깎인 모습니다. 멋진 모습에 감탄스럽기도 하다만 왠지 측은한 맘이 든다.
*보는 방향마다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 많던 사람들 각기 자기가 정한 코스를 따라 다시 뿔뿔이 흩어진다. 북한산만큼이나 거미줄처럼 잘게 쪼개진 등산로. 갈림길마다 어디로 갈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들게 한다.
산은 얼마만큼은 견딜만한 경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얼마를 지나서부터는 그 속알머리의 가파름 그대로 온 몸으로 느끼며 올라야 한다.
다락능선을 맛보고자 만월암 쪽으로 오른다. 만월암을 가리키는 이정표 부근, 바로 위로 보이는 선인봉 때문에 이제 다 왔다는 안도와 자만심.
그도 잠시, 만월암으로 향하는 길은 계곡까지 내려가 다시 시작한다. 우이~ ㅆ
비가 많이 올 때는 도저히 가지도 못할 것 같은 45도 이상의 바윗길이다. 만월암 코스가 세 번이나 나를 우롱한다. 씩씩거리며 오른 만월암은 커다란 바위와 바위가 포개져 만들어진 공간에 암자를 지어 놓았다. 이제 선인봉이 코앞이다. 다시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계단.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도봉산이지. 이 계단 다 왔다 싶었는데, 온 만큼 또 있는 것이여. 얼마나 지겨웠는지 계단에다 누군가 매직펜으로 계단수를 써 놓았는데 능선과 닿는 마지막 계단수가 429다.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땀.
*지나고 보니 “Y”자 계곡
도봉산 이야기를 하니 친구가 일방통행 “Y”자 계곡에 대해 말해준다. 지도를 가만히 보아하니 산악구조대 건물이 있는 곳에서 탐방로가 가파르게 “Y”자를 하고 있어 그런가보다 했다. 다락능선을 맛보려고 만월암 쪽으로 계획을 잡았기에 그 말을 그냥 흘려버렸다.
포대능선과 다락능선이 만나는 포대정상. 남쪽으로는 선인봉-자운봉-신선대, 북쪽으로 포대능선을 타고 사패산이 보인다. 저건 뭐다냐? 남서쪽으로는 북한산까지 보인다.
내 뒤를 따라 오른 한 아저씨가 잠시 숨을 고르고 바로 자운봉 쪽으로 다름질 친다. 바로 그 뒤를 따르는데, 이곳을 한두 번 오른 솜씨가 아니다. 굵은 원형철재에 고리를 만들어 바위에 심고 고리 사이로 로프를 팽팽하게 연결해서 이어 놓은 무척이나 가파른 곳을 거침없이 내려간다. 아이젠이 바위에 걸려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열심히 뒤 쫓는데, 바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잠시 쉴 공간이 나자 아저씨가 내게 길을 내어준다. 아~ 근데 이 로프를 놓치거나 발을 잘못 놀렸다가는 ‘속알머리’라고 놀려대던 가파른 봉우리에서 떨어지고 만다. 거친 등산로 덕에 로프가 친절하지만은 않다. 온 몸의 근육이 힘을 모아 탄력 있게 움직여야 지날 수 있는 곳이 대분이다. 어떤 바위틈은 좁아 몸이 뚱뚱하거나 배낭이 크면 절대 못 지나갈 것 같다. 잠시 멈춰 그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기엔 상황이 급박하기만 하다.
그 거친 코스를 지나 자운봉이 보이는 너른 바위로 나오니, 현수막에 ‘주말에는 Y자 계곡 일방통행으로 통제한다’는 문구와 함께 그 옆에 우회등산 안내 표지가 보인다. 얼떨결에 그럴리 없을 거라는 Y자 계곡을 지나고 말았다.
*산행 예절
자운봉은 허락하지 않으니, 한쪽면이 만만한 신선대를 오를 수 있게 로프를 만들어 놓았다. 정말 따듯한 날 가만히 앉아 차 한 잔 마시면 내가 신선이 될 것 같어. 서울시내 공기만 맑다면 한강 이북은 다 보일 것 같다. 이 멋진 경치를 보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 여기로 모인다.
자운봉을 내려와 도봉주능선을 탄다. 지도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등산로는 신선대 북쪽 아래를 끼고 돌아 내려가기 때문에 전혀 다른 코스로 향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 30여분을 오르락 내리락 주로 등산로가 북쪽으로 산허리이기에 눈도 녹지 않고 그대로다. 오봉갈림길을 지나면서 보이는 다섯 개의 봉우리는 지남에 따라 겹쳐지도록 보여지는 모양이 꼭 다섯 손가락을 닮았다. 다시 또 30여분은 우이암 앞까지 계속되는 내리막이다. 12:00언저리가 되자 여유 있는 시간에 산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내리막길은 내내 산줄기 등뼈를 타고 내려가는지라 바람이 무척이나 세다. 귀마개를 꺼낸다.
계속될 것 같은 내리막은 우이암에서 잠시 배반을 한다. 우이암에서 보이는 북한산이 강렬하게 유혹한다. 아무튼 산은 참 좋군요. 그러니 사람들도 이렇게 많고.
서울 분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셔서 그런 건지... 산에서도 경쟁.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다른 산에서는 가끔씩 느끼는 사람과의 그 불편함이 빈번하게 느껴진다. 좁은 등산길에서 한 발자국도 후진하지 않고 서 있는 바람에 길게 줄이 늘어서고, 앞에서 사람이 오면 어깨를 틀어주는 센스도 없이 – 싸우자는 건가? 다들 뭔지 모르게 여기까지 와서 저래야 하나? 하는 기분이 든다.
하산을 해야 하는 시간 같은데도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는데 아이젠도 없이 위태롭게 오르시는 분, 운동화에 구두까지. 도봉산 탐방지원센터 앞은 등산객으로 활기가 넘친다. 주말 동학사만큼이나 북적댄다.
*내려가는 차도 매진
지하철. 50여분. 공주행이 경부선인지 호남선인지 헷갈려 신장개업한 호남선 터미널로 잘못 갔다가 몇 십 분을 허비한다. 보온병에 남은 따듯한 차 한 잔과 지친 근육을 위해 탄수화물을 보급해주려 산 빵 한 덩이, 거기다 시원한 맥주까지... 환상.
공주행 고속버스 전부 매진이다. 다 다음 버스도 딱 한 자리 남았다기에 얼른. 1시간하고도 35분을 여기저기 헤매다 오른 버스는 ‘우등’이 아니라 배낭을 풀어 이것저것하기 좀 미안터라... 더군다나 오랜만에 많이 흘린 땀으로 냄새는 나지 않을까 미안스럽고.
앞으로는 마눌님 말씀대로 예매 좀 하고 다니자...
다행이다 무릎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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