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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대중교통] 관악산 산행이야기_2013.03.01.

by 여.울.목 2014. 9. 3.

대중교통으로 수도권에 있는 100대산 찾기, 그 두 번째 관악산

 

*아침밥

봄으로 가는 길목의 새벽녘인데도 밖은 깜깜하다. 비가 온다더니 그랬나보다.

잠들기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더니 새벽을 알리는 알람이 달갑지 않다. 코의 붓기가 눈까지 번지다보니 맑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몸은 오한기운에 머리까지 띵하다.

상태가 이렇다보니 산행을 포기해야 하는지, 겉옷을 하나 더 챙겨야하는지 잠시 혼란스런 와중, 집사람의 시간이 없다고 좀 서두르라는 말에 버럭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다. 휴일인데도 일찍 일어나 아침상까지 차려주니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다행히 예매를 했기에 편히 차에 올라 가래떡과 사과 한 알로 아침을 대신한다. 고속터미널에 내려서 점심끼니로 김밥을 살까하고 두리번거리니 천지가 분식집이다. 가볍게 나와서 여기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면 서로가 편했을 텐데 괜히 차려놓은 밥상도 받지 못하고 기분만 상하게 하고 나온 것 같다.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두 번째 역(이수)에서 4호선을 갈아타자마자 맞는 사당역에서 내린다. 딱히 길을 묻거나 지도를 볼 필요가 없다. 지상으로 나오니 배낭을 멘 사람들이 꾸역꾸역 일정한 방향으로 걸어간다. 나도 꾸역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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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맛

서울둘레산(관악산)’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500여 미터를 주택가 도로를 따라 오르니 등산로가 보인다. 산행 전에 일정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그룹을 지어 모여 있다.

몸이 정상이 아니다보니 발걸음이 무디다.

처음 얼마간은 보통 산의 초입 같더니 관음사를 지나면서부터 화끈하게 수직상승 운동을 시킨다. 급기야 감기기운에 질려 겹겹이 싸매었던 머프와 방풍, 폴라리스 자켓까지 벗어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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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63빌딩도 보이고, 한강 건너 북악산도 보인다>

기온 그리 낮지 않지만 바람이 매섭기에 옷을 잘 여며야 하는데, 공룡바위까지 이어지는 이 억척스런 암벽길을 오르느라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찬바람의 수지가 잘 맞아 셔츠바람으로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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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의 하나라고 하더니 이름값을 한다. 공룡바위에서 보이는 봉우리와 능선길이 뾰족뾰족한 것이 손대면 찔릴 것 같다.

 

*추운 서울 따듯한 과천

화끈하게 신고식을 치르게 하더니, 공룡능선 전망데크에서 보이는 서울시내 풍경으로 고단함을 달래준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거칠게 보이는 능선길, 하지만 연주대가 그리 멀게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 걸어보니 멀리서 보이는 것만큼 그리 거칠지 않다. 바위가 많은 산이라 능선길에 큰 나무가 없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등산로가 널찍한 것이 예전 내 어릴 적 동네사람들의 삶의 일부였던 뒷동산을 오르는 것 같은 친근함도 느껴진다. 단지 자꾸만 거세지는 바람이 너무 차 손이 꽁꽁 얼 것 같다. 집에 놓고 온 겨울장갑이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정상 근처라 그런지 얼음도 채 녹지 않아 두 번이나 미끄러져 바위에 손톱이 갈라지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연주대에 가까이 갈수록 산이 더 거칠어진다. 급기야 연주대 앞, 동절기에는 다녀서는 안 된다는 표지판까지 있다. 아이젠을 차기엔 애매한 상황이라 정상근처에서 스틱을 빼 들었는데, 이 절벽에서는 방해만 될 뿐이다.

 

 

거친 산행길만큼이나 거세게 휘몰아치는 찬바람은 연주대 근처에서 절정을 이루더니, 막상 연주대에 도착하니 바람은 고요하고 햇볕은 따사롭다. 그 이후로 능선길은 동으로 향하니 사당능선과 학바위능선이 병풍이 되어 내내 봄기운을 느끼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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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 모양은 기상청에서 설치한 관측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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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끝 공룡바위부터 지나온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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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보는 사람들마다 쓴 소리를 내뱉는다. 관악산은 멋진 바위가 참 많다. 생김새도 좋고 바위의 크기도 크고 재질도 미끄럽지 않아서 군데군데 그 멋진 광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가쁜 숨도 고르고 사진이라도 찍어 볼 양 가까이 다가가면, 바닥이며 벽이며 어김없이 붉은 페인트와 락커로 종교 관련 편향된 글이 써져 있다. 심하다. 쉴 맘도 사라진다. 그냥 발길을 돌린다. 오히려 반감만 일으키는 것 같다.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화시키는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몇몇의 경우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거나 에 대한 잘못된 방향 설정으로 사람을 위한 종교가 아닌 종교자체를 유지하려는 건 아닌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깍쟁이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할 때 연주사와 원각사(사당역 근처) 두 절을 지어 화환에 대비했다고 한다. 풍수야 잘 모르지만 한강과 그 넘어 희미하게 북한산까지 보이는 걸 보니 경치하나는 끝내준다. 뭐래도 하나 이야기가 엮어질 것 같다.

생각보다 빠른 산행일정이다. 버스 예매시간 15:05, 한참 남을 것 같다. 덕분에 관악사지 근처에서 일광욕도 하고, 기상청 관측시설도 기웃거려보고, 방송 송출시설물도 둘러보고, 점심도 여유 있게 먹는다. 내가 잡은 하산길은 케이블카 선로가 늘어선 능선길을 따라 가는 길이다. 이 길로 올라왔어도 한참을 고생했을 것 같다. 내 하산시간이 이 동네 사람들 등산시간인가보다.

지난 도봉산이어, 여기 관악산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좀 까탈스런 것 같다. 가벼운 눈인사는커녕, 내가 건네는 고생하십니다~”라는 인사에 별 이상한 사람이란 듯이 잠시 나를 훑어보다가는 시선을 획 바꾸어버린다. 요즘 세상이 하도 싱숭생숭해서 그런가? 내 생김새가 이상한가? 나도 존심이 있지 몇 번 건네는 인사에도 반응이 없자 삐침으로 소심한 복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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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산길로 잡은 길, 케이블카 선로와 함께 이어진다.>

  

암벽길이 지겨워질 때 쯤 쿠션감 좋은 흙길로 이어진다. ~ 좋다. 맑은 하늘과 따듯한 햇볕.

 

여유를 부렸건만 시간이 좀 남는다. 집에 연락해서 버스예매시간을 당겨본다.

연휴라 그런지 내려가고 올라가는 모든 길이 막힌다. 고속버스가 급기야 국도로 선회한다.

 

감기기운 때문인지 낮잠을 잤는데도 기분이 영 아니다. 그래도 산행만큼은 행복하게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