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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능강계곡-금수산 산행 이야기

by 여.울.목 2018. 8. 16.


얼음골 능강계곡 산행


 

계획: 능강교-능강계곡-얼음골-능강계곡(알탕)-능강교/ 왕복10.8km(4~5시간 예상)
실행: 능강교-능강계곡-얼음골-무명봉-금수산-망덕봉-돌탑(능강계곡)-능강교/ 14.83km
(5:26, 2.7km/h)

2018-08-11_09-28-20능강계곡_금수산.gpx


 

지도를 바라보며 한참을 갈등한다.
이런 폭염에 계획대로 계곡산행만 하는 게 나을지... 그래도 가는 김에 봉우리는 찍고 와야 하는 건 아닌지...
이 갈등은 대번 해소(?)된다. 산행 전날, 등반대장이 톡으로 불참을 통보한다.
아무래도 무전기는 내가 들고 앞장을 서야할 판이다. 그러니 어디 봉우리 타령을 하겠어.

 

새벽이다.
아니 여전히 끈적거리는 아침이다. 이놈의 폭염과 열대야는 어제나 끝이 나련지.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니 오히려 낫다.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산악회 버스가 능강계곡 입구에 다다른다.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등반대장이 경북 후포에서 여기까지 차를 끌고 찾아왔다.
우리 회장님 얼굴에 환한 미소
오전 9시인데 벌써 햇살이 따갑다.
이번에는 후미를 서라며 무전기에 건네진다. 봉우리를 올라야겠다며 친구에게 패스한다.

능강계곡 들머리에는 오가는 사람 수 세는 기계가 자리 잡고 있어 여기가 월악산 국립공원 구역이란 것을 짐작하게 한다.



바로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다. 모자를 쓸 필요까지 없다. 그늘 때문이기도 하지만 울창한 숲이라도 이놈의 폭염기운에다 아침나절에 찔끔 내린 비 때문에 습도가 높아서 온 몸이 금새 땀범벅이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하고 1.5km 정도는 거의 평지와 같은 느낌의 산책길이 이어진다.
능강의 능이 비단이던데, 얼마나 날이 가물었는지 사진으로 보던 맑은 물이 가득 찬 계곡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더군.
시원한 계곡물에 잠시 발이라도 담가볼 요량이었던 일행이 실망하는 기색이 역역하다.



다행히 
2km를 지나자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희한하게도 위쪽에 다다르니 물이 더 풍부하다. 시원한 계곡을 보니 다들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인가보다.
어쨌든 이 계곡에는 능강구곡(綾江九曲)이라 풍광이 빼어난 아홉 군데가 있다고 하는데, 물이 없어서 그런지 발을 멈춰 서게 하는 것은 없더군.


이제 숲길에서 햇빛을 거의 볼 수 없다. 나중에 능선에 올라 보고서는 안 것인데, 깎아지른 암벽이 계곡 양쪽으로 둘러 서 있어서 햇빛이 들어오기 힘든 것 같더군.
다시 물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길은 온통 끝이 뾰족하면서도 납작한 돌덩이로 가득하다. 그 모양의 돌이 나오더니 물길이 끊어진다.


길은 이제 건조한 오르막이다. 너덜지대를 한 500여 미터 오르자 낯선 방식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라 함은 좋은 전망, 그러니까 한 눈에 많은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주로 높은 곳의 포인트에 세워지는데 이 전망대는 떡 허니 돌로 가득한 구릉지대를 바라보게 설치되어 있다.

얼음골이다.


움푹 파인 돌덩이 사이에 한 아저씨가 느긋하게 앉아계신다. 나도 슬그머니 그 옆에 엉덩이를 들이 밀어본다. 정말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얼음고른 너덜이라는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풍화로 부서지면서 만들어진 돌밭이다.
얼음골 입구에 적힌 안내문을 옮겨본다.


<겨울에는 따듯한 바람이 나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이유>

겨울철 너덜 외부의 차가운 공기는 무거워 아래쪽부터 유입된다. 유입된 공기는 여름과 가을동안 데워진 돌로부터 열을 빼앗아 데워지면서 위쪽으로 올라간다. 열을 빼앗긴 돌은 점차 아래로부터 차가워지면서 겨울철의 냉기를 저장하게 된다. 그래서 겨울이 끝날 때가 되면 너덜의 온도는 외부와 같게 된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겨울과는 반대조건이 된다. 밀도가 높은 너덜 내부의 시원한 공기가 밖으로 나가고 너덜 상부에서는 외부의 따듯한 공기가 들어온다. 유입된 따듯한 공기는 겨울에 냉기를 저장한 돌과 열 교환을 하면서 시원한 공기로 바뀌어 얼음골로 나온다.
초가을이 되면 너덜은 온기로 채워져 더 이상 찬 공기를 만들 수 없게 된다.
너덜을 이루는 20~30cm 정도의 돌이 500m 정도의 길이로 퍼져 있어야 되며, 경사는 40도의를 유지해야 한다. 너덜 크기가 너무 작으면 너덜의 위 아래로 공기의 대류가 일어나기 어렵고 너무 커도 공기와 돌이 접하는 면적이 너무 커 열전달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길이도 500미터 정도 안 되면 뜨겁거나 차가운 공기가 단숨에 채워져 공기의 저장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경사가 40도 이하로 완만해지면 겨울에 찬 공기가 쌓이기 어렵고 더 크면 대류가 빨리 진행돼 얼음골의 냉기를 보존하기 힘들다. 또한 재질은 화산암으로 계절적 온도 변화에 따라 부피가 커졌다 작아졌다 할 때 쉽게 쪼개져야 한다.

그동안 사람들이 하도 얼음을 떼어간다고 들락날락해서 보존을 위해 등산로를 개방하지 않았다가 몇 년 전에 자드락길을 만들면서 개방했다고 한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얼음골 돌밭을 다닐 때 조심스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전망데크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일행 한 명, 두 명씩 올라온다. 11시 반도 안 되었는데 점심을 먹자고 한다. 냉큼 도시락을 꺼내 먹어치운다.
금수산으로 가련다.


이제부터 시간이 금이다. 후다닥 배낭을 여미고는 나 혼자 쓸쓸하지만 씩씩하게 봉우리를 향해 간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배낭 안에 넣고 다니는 작은 가방을 데크에 놓고 왔다. 아니 그런 것 같았는데 배낭을 열어 볼 여유가 없더군.
결정했으니 걍 가는 거다.

계곡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게다가 가파르다.
그 동안의 산행이 매번 이런 것이었는데 2시간 동안 계곡을 따라 움직였다고 지금이 주변상황이 이국적이라고 느껴진다. 사람이란 참~
간신히 식혔던 땀이 온몸에서 용솟음친다.

오르막길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소나무. 멋지다. 금강송인가?
그냥 경이롭게 바라보면 될 것을, 이정도면 어느 건축물의 기둥이나 대들보로 쓰일 수 있었을 거라는 이기적인 인간의 생각이 앞선다.
허겁지겁 집어삼킨 점심 때문인지 발걸음이 묵직해진 것 같다만 배낭은 한결 가볍다.
얼마가지 않아 파란하늘이 닿는 곳이 보인다. 망덕봉에서 내려오는 능선에 닿았다.
다행히 해는 구름에 가려 있고 숲을 통하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쩌다 내 앞에 있는 3인을 추월하고는 망덕봉에서 내려오는 어르신 세 분을 뒤에 달고 가는 형편이 되었다.
가파른 오르막의 고통에서 벗어나자 이제 머릿속은 시간계산으로 복잡해진다. 우리 산악회 전체 일정에 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땀을 식힐 여유도 없이 발걸음에 박차를 가한다.
나지막한 오르막은 오히려 가볍게 지나친다. 그렇게 나무로 둘러싸인 이름 모를 봉우리를 지났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봉우리 이름이 무명봉이더군.
오히려 무명봉을 지나 제법 내려서는 길에 내 몸뚱이가 쉬어가자고 호소를 한다. 아무래도 얼음골에서 올라와 쉼 없이 달려온 피로가 쌓인 모양이다. 더군다나 내 뒤에 있는 세 분의 어르신들 내리막에서의 발걸음이 어찌나 씩씩하신지 길을 비켜줘야만 할 것 같으이.


숲길에서 언 듯 보았던 금수산 정상부 바로 아래에서 숨을 고른다.
이 폭염에 무슨 산행이냐고 걱정을 했더만, 금수산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망덕봉 가는 길이 맞냐고 물어보는 걸 보면 적상 쪽에서 넘어오는 사람들 같더군.
발짝을 옮길 때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암반 위에 얇게 흙이 얹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나무가 철쭉이나 소나무로 기억된다. 그 까만 흙길을 올라 봉우리에 다다르니 많은 사람들이 점심 전을 펴고 있더군.
정상부가 암반이라 그런지 공기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구름까지 걷혀서 직사광선이 나를 헤롱 거리게 만든다.


바로 코 앞 인데 금수산 정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철계단을 오르고 암반 사이를 비집고 땀이라는 노력을 들여야 했다. 지도로 보이는 길과는 전혀 다른 거칠음.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옥순봉도 보이고 충주호와 청풍호가 옥빛으로 반짝인다.
정상에 그늘이라고는... 더 오래 있고 싶어도 폭염을 그대로 받을 수 없기에 내려선다. 제대로 된 그늘에서 몸을 쉬게 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제 시간도 문제거니와 물의 양도 체크해야 한다.
북쪽 단백봉 쪽으로 능선을 타다 다시 능강계곡으로 내려오면 ρ모양의 경로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길을 찾을 수 없다. 아니 길은 있는데 반바지에 반팔로는 갈 수 없는 곳 같더군. 게다가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얼음골로 다시 내려가기로 한다.
잠시.... 좀 더 빨리 내려가자. 얼음골로 내려가는 시간까지 아껴보려고 지도를 바라본다.
망덕봉을 통해서 능선을 따라 가자. 능선을 따라 난 등산로가 매끄럽고 예쁘장하다.


망덕봉까지 조금의 오르막은 있었지만 이정도 쯤이야...
! 근데 망덕봉에서 바라본 하산 예정 능선길에 현수막이 걸쳐 있다. 비법정탐방로다.
미치것다.
지금 생각해보니 거기서 다시 얼음골로 되돌아왔으면 무난하게 산행을 마무리했을 터인데.


가파른 산행길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3~40분 동안 내달리는 가파른 길과 다리와 팔을 스치는 나뭇가지의 거친 참견은 견딜만했다.
땀을 닦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한 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얼마나 올라가야 하냐고 물어본다.
-조금 더 가면 망덕봉이다.
-나도 물어본다. 조금만 더 가면 하산길이 마무리되겠죠?
-아휴~ 밧줄 타고 가야되요.

그래 밧줄이 나오더라. 그리고 왁자지껄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이제 다 왔나보다.
~ 밧줄 하나를 가볍게 지나치자 맞은편에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50대 남녀 한 무리가 보인다. 여자 분이 50%라 더디게 내려오더만.
측은하게 바라보는 나를 오히려 더 측은하게 생각한다.
깎아지른 절벽의 거친 길은 말 그대로 수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도에 표시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비법정이니 암릉... 아니 암벽 정보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이러다 쓰러지기도 하는 구나.
한두 번 거치면 끝날 것 같던 암벽은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폭염의 열은 암벽과 암릉 구간이라 내 몸에 직격탄을 날린다.
물은 점점 줄어든다.
-얼마나 남았냐?
밑에 있는 일행들의 전화가 나를 쉴 수 없게 만든다.
거친 길을 사진으로 담을 여유? 기력조차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무릎이 잘 버텨주었다.
이제부터는 좀 살만한 길인지 이제 날벌레가 달려든다.
길은 돌탑이 있는 능강계곡에서 만난다. 오를 때 무심히 지나쳤던 등산로 폐쇄라는 푯말이 어찌나 얄밉게 보이던지.

막걸리 마시며 나를 기다리던 일행은 뒤풀이 장소로 떠나고,
차를 가지고 왔던 등반대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
마지막 남은 물을 사치스럽게 들이킨다.

뒤풀이 장소에서의 몇 잔의 숲은 열기가 안 빠진 내 몸에서 알코올 기운과 함께 나를 제대로 녹다운 시킨다.

무언가에 쫓긴다는 것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힘든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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