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후니의 책가방

'백제의 요서 경략' 진실은

by 여.울.목 2021. 8. 22.

'백제의 요서 경략' 진실은

중국 정사에 나오는 '백제의 대륙 호령'... 국내에서는 '사이비', '국뽕'치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영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한단고기' 이야기를 해주신다.
대학 때 머릿속에 남아 있던 그 책 제목을 끄집어 내
한자 가득한 책을 무작정 읽었던 기억이난다. 
가슴 뭉클거리고 주먹을 쥐게 되고, 잃어버린 왕국을(?) 아니 잃어버린 기상을 찾아야만 한다는 호기가 일어났었지. ㅎ
그 때 처음으로 백제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강국이었다는 이야기도 접하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적 증거가 부족한 그런 이야기는 자존심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바라봐야한다는... 오늘날 한국사의 정설에 치우쳐 다시 기억 속 어딘가에 쳐박혀 있었다.

2021.8.10. 아침!
경향신문 한 페이지가 빼곡히 '백제의 요서경략*'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이기환이라는 선임기자가 쓴 기획 기사다.  ☜ 클릭!

*경략: 공략하여 점령한 나라나 지방을 다스림

전문 방송인이 아니라 조금은 촌스러웠지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라는 팟캐스트에서 흥미롭게 믿음직하게 접했던 기자의 이야기들이었기에 일단 바쁜 시간을 생각해 한쪽을 통째로 찢어내었다.
여유가 되면 읽겠다고 들고다니다 여유가 없는 오늘에서야 들여다 봤다.
기사를 쓴 기자님도 기획기사를 쓰는 것이 자신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해치우는 것 같았나보다.
물론, 기자님은 '긍정론'에 힘을 싣고 있다. 그래서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읽었던 것이고.


백제의 대륙 진출 기사(여기서 기사는 역사사에 기록된...)
ㅇ 488년 편찬된<송서> '이만열전'에 처음 소개
"백제국은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000리 밖에 있었다. 그 후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해 차지했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ㅇ 523~536년 사이 <양직공도>, 당나라 때 <양서>와 <남사>, 북송의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 <구당서> '동이열전', 최치원의 편지글에 나옴


부정론
부정론의 3가지 주장 ①정사 <삼국사기>에 보이지 않는다. ②중국 남북조시대(420~589) 남조(송.제.양.진)의 역사서에 주로 보이나 <위사>와 <북사> 등 북조 역사서에는 없다. ③입증할 고고학 자료가 나타나지 않는다.
ㅇ 안정복과 정약용: 중국인들이 부여와 백제를 혼동
ㅇ 일본(나카미치요): 잘못 전해진 것이며 기괴하고 황당무괴한 설


긍정론
ㅇ 신경준, 신채호, 정인보, 안재홍, 손진태, 최남선, 김상기, 홍이섭, 김철준 등
ㅇ <삼국사기>에는 왜 안 보이나?
- 우리나라의 사학계 풍토: <삼국사기> 초기의 기록 불신으로 <삼국지>'위서.동이전'을 숭상하던 학계 주류가 요서경략 등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기록만 들먹임-기록에 없다고
- <삼국사기>는 날짜별 역사서가 아니라 우리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소략- 해서 잃어버림(신경준 왈), 광개토대왕 비문에 있는 전쟁기사(400년)도 없고 구체적이지 못한 해상왕 장보고 활약은 오히려 중국과 일본 문헌을 통해 알려짐(최남선 왈), 양만춘의 안시성 방어 등 누락
- 김부식의 중국을 섬기고 따라하고 픈 사상 때문일 것이라 함
ㅇ 중국 남조와 북조 역사서 차이
-북위 역사서의 특징: <위서(551~559)>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성을 잃었고 누락과 개수가 잦음
-북조 입장에서 백제와의 전쟁 패배 수치로 누락(안재홍 왈)
-반면, <송서>와 <남제서>는 멸망 후 9년과 35년만인 당대의 기술(記述)로 신빙성이 높음
ㅇ 남조만 아니라 당나라 때 <통전>, 송나라 때 <자치통감>, <구당서> 등 엄연한 중국 정사에 남아 있음
ㅇ 요서와 진평의 위치상 고고학 조사와 공개, 연구등에 한계는 있음


결론
ㅇ 중국 정사에도 수차례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기록"되고 있음에도,
교과서 서술로 본 학계의 움직임은 후퇴하고 있음
70년대 '요서점령' → 80년대 '진출' → 2015년 '경략설' → 2020년 '사실여부에 논란이 있다'
ㅇ 일본 와다 하카토코
-일본은 한반도에 진출해서 백제와 신라를 보호, 고구려 남하를 막음
-5세기 형세는 북의 고구려와 남의 일본의 한반도 패권 쟁탈사로 볼수 있다는 주장 
  ☞ "백제의 요서경략은 기괴하고 황당무계한 날조"라는 주장과 이어질 수 밖에 없음

기자는 "백제의 요서경락 등의 기사를 두고 터무니 없는 거짓이라는, 멋대로 딱지를 붙이고 비난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건전한 논쟁이라면 모르지만 '사이비'나 '국뽕'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고고학 조사와 연구 등의 한계로 유물로서 입증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를 폄하하는 중국 정사를 비롯한 역사서에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면,
최소한 역사를 날조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수작에 동조하지 않고 중립적인 자세라도 가져야 한는 것 아닌가?

다시, 30년 전 뜨거웠던 내 심장을 되살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