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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의 책가방

5,6학년 역사/지리> 10년 만에 꺼내든 지도책 "종이 한 장의 마법 지도"

by 여.울.목 2022. 1. 30.

 

종이 한 장의 마법, 지도
지도에 담긴 모든 이야기
류재명 글 | 신명환 그림
2006/05/25
2010/01/08
길벗어린이()


 

아이가 어릴 적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산 책이다.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내가 몇 쪽씩 뒤적거리기를 반복하다 그만 긴 시간 동안 책꽂이에 묵히고 만 책이다.

 

내가-어른이-읽기에는 뭔가 전문성이 떨어질 것 같다는 선입견,
아이가 쉽게 읽어 가기에 난해한 느낌.
오늘,
한 쪽씩 책장을 넘기며 재미라는 것을 느낀다.
이런 재미로 읽어내려면 만만치 않은 지적 호기심이 있는 아이이거나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책을 사 놓고도 더 늙어서 읽기 시작한 이 책. 재밌더라.

 

지리학자는 여행 다니는 게 노는일이 아니라 공부하는일입니다.”
저자의 머리말에 나온다. ~ 저렇게 놀고 싶다.
직업을 잘못 선택했나?

 

책 처음 즈음,
세계지도를 인구수 비율에 따라 그려 놓은 지도,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 같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팟캐스트나 유튜브에서 인문지리학을 소개할 때 나온 이야기꺼리.
~ 근데 이런 소재를 가지고 쓴 책이 예전부터 존재했다니.
추상화 같은 인구분포 지도를 보며 그간 내외하던 책에 관심갖고 달라붙기 시작했다.
지리학에 대한 나의 관점이 분명 더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책은 지도라는 녀석을 친구로 소개한다.
지도의 개념, 지도를 만들 때 우선해야 하는 필수 상대방을 생각한 친절함.
지도에 그려 넣는 약속된 기호, 방위와 축척, 등고선...

 

이제 지도의 역사로 안내한다.
이 부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이야기.
나 어릴 적 백과사전에서, 그리고 학교? TV에서도 나온 것 같다. 난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 평생 잘못 알고 살아갔을 수도 있다.
김정호가 제작한 지도를 가져갔을 때 대원군이 군사기밀이라며 옥에 가두고 어찌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일제가 조작한 것이란다.
너희는 훌륭한 학자를 천대하는 우매한 집단이었어. 그러니 좋은 정보나 자료가 있으면 우리(일본)에게 협력해라~’ 이런 의도였다는 것.
김정호의 생의 흔적이 뚜렷히 남아 있지 않은데 아마 낮은 신분이었기에 기록에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일 거란다. 하지만 그가 만든 지도는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또 그를 처벌했다면 조선의 체제상으로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역사에 기록이 되었을 거란다.
오히려 신헌(당시 병조공조판서)이라는 관리의 문집에는 김정호에게 지도를 만들게 했다는 내용의 기록도 남아 있다.
그리고, 김정호가 지도 모두를 돌아다니면서 그린 것이 아니란 말씀.
기존의 좋은 자료를 모아 참조(현재도 400여 종이나 박물관에 있음)해서 더 훌륭하게 탄생시킨 것이란다. <60>
예나 지금이나 정밀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인력과 비용, 기술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산자 김정호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국토에 대한 기초 연구의 중요성을 깨닫고 평생을 바쳐 집대성한 지도! 그의 위대함이 왜곡되지 않고 올바르게 조명되어야 한다는 점. 피해의식을 심으려던 식민사관을 씼어내려는 저자의 뜻이 대견하다.

 

일제의 비열한 이야기가 나오니 잠시 지루할 뻔했던 시간이 팽팽해진다.

 

서울대학교 교수님 딴에는 기초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고난도 상식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1,800여 년 전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안 아리스토텔레스,
그 후 약 100년 후 지구의 크기를 알아낸 에라토스테네스의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신기하다. 변변한 기계장치도 없던 시절에 과학적으로 업적을 이뤄낸 천재들...

삼각측량에 대한 개념과 그걸 이용해 4대에 걸쳐 완성한 최초의 정밀지도 이야기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이지 않는 위도와 경도를 측정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

지도에 숨겨진 타임머신 날짜변경선,
팟캐스트에서 들은 나라, 새천년을 연 나라 <키리바시> 이야기.
키리바시라는 나라는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 안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날짜변경선을 오른쪽으로 바꾸어 가장 가까이 있는 섬 이름을 밀레니엄 섬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며 세계에 그 존재를 알린 나라 이야기.

지도 속의 거짓말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바둑판처럼 지도를 펼쳤을 때 그린란드(실제 1/8)나 남극이 훨씬 크게 보인다는 점. 하지만 항해할 땐 정확한 각도가 필요해 쓸모 있다는 말씀.
비행기의 경우 최 단거리 비행을 위해 심사 도법 지도를 쓴다는...

 

어찌어찌하여 이야기는 항공지도와 GPS로 이어진다.
지형뿐 아니라 바닷물의 온도나 광물을 품고 있는 지질지도를 이야기하면서 지도가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꿈의 세상을 그리면서 마무리한다.


부스터샷을 맞고,
쉽게 넘길만한 책을 찾다 10년 넘게 책꽂이에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언젠가도 만만하게 생각했다. 생각만큼 만만치 않아 접었던 책.

역사 팟캐스트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진행자 허진모의 말처럼
관점, 어릴 적과 나이 들어서의 차이를 새삼 느낀다.

 

10년,
그 새 나는 무얼 하며 지냈을까?

물론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
그저 뭔지 모르지만 열심히.

 

이제 10년 남은 – 모든 걸 다 쏟아 부은 것 같은 - 이 직장과 내 삶에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지도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생각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