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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경주 남산 - 1박2일 따라~ _2012.11.28.

by 여.울.목 2014. 9. 2.

경주 남산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치면 내게 마흔 번째 산이다.

경주 남산은 형산강을 끼고 있는 경주 시내의 남쪽에 남과 북으로 길게 이어진 산으로 금오산과 고위봉이 합쳐져 남산으로 불린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495m이다. 그리 높지 않기에 예전 사람들의 뒷산으로서 그 삶과 함께 해온 산임이 분명하다. 삼릉입구에서 만난 이 지방 사람의 말로는 경주 남산이야말로 신라가 시작하고 끝을 맺은 곳이라고 설명을 하더만, 지도 한 장만을 바라봐도 여기저기에 옛 이야기를 머금은 많은 문화재를 껴안고 있는 산이다.

 

산행은 KBS 12일에서 방영된 내용을 그대로 본 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삼릉-상선암-바둑바위-금오산-용장사터-설잠교-산정호수-백운재-고위봉-백운재-칠불암-염불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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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km를 걷는데 5시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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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우리 일행이 12명이었나? 좀 가물거린다. 내겐 경주 남산을 탐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져 맘이 좀 설레기까지 하는데, 나를 비롯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시큰둥하다. 당초 내가 세운 하루 종일 산행일정을 수정하신 이 분들은 오전 내에 산행을 마치고 경주 인근에 널리 퍼져있는 역사유적에 마음이 가 있다. 그래도 이 사람들 꼬드겨 능선까지 몰고 가면 그리 험하지 않은 산이라 많은 분들이 따라 나설 것 같더라.

 


  

<교리김밥 사러 갔다가, 그 옆 최씨고택 앞 가로 등이 이쁘길레...>

TV에서 보았던 목 없는 불상부터 시작되는 산행길 문화유적. 사실 해설이 없다보니 다들 오르막이 주는 고통에 숨을 허덕거리며 그냥 지나치고 만다. 더군다나 상선암길을 다라 오르다보니 왼쪽 편으로 있는 소소한 유적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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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겪은 수모와 달리, 불상 주변은 신앙심 깊은 아주머니들께서 아주 정갈하게 주변을 관리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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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몸통을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 특징이란다>

 

바둑바위 위에서는 경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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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이 바위 위에 앉아 바둑을 두었던지, 아님 바위가 하도 판판하여 붙여진 이름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사람들이 제법 따라온다. 이제 능선이 이어진다. 계절을 잘 만났다면 능선을 타면서 많은 탄성을 질렀을 것 같은데,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것 같은 날에 바람이 차니 옷깃을 여밀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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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은 김시습이 요 아래에 지금은 터밖에 남지 않은 용장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곳이라고 한다. 봉우리는 꾀 넓은 터를 마련해 놓고 있지만 사방이 나무에 가려 경치를 바라보기엔 별로다. 우리나라 3대 김밥 중에 하나라는 이 지역의 교리김밥으로 좀 이른 점심을 삼는다. 다른 김밥과 달리 계란이 좀 더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맛이 부드럽다. 경주 와서 입맛에 맞는 음식은 이 김밥 하나 같다.

경주 생막걸리와 교리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일행과 헤어져 3명만이 산행길을 계속 나아간다. 잠시 길은 널직한 임도와 함께 한다. 그 임도도 잠시 오른 쪽길로 접어들자 내리막 길과 함께 삼층석탑과 삼륜대석불좌상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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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만난 삼층석탑은 널따란 바위 위에 탑을 쌓아 올려 자연미를 더한 문화재다. 사람들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묘한 매력에 빠져 각도를 바꿔가며 이리저리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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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조금 더 내려오니 삼륜대석불좌상이 기다리고 있다. 삼륜대석불좌상도 커다란 바위 위에 둥글게 깎아 만든 돌 3개를 얹고 그 위에 불상을 올려놓았는데 머리 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몸통만이 남아있다. 삼층석탑과 달리 기교를 맘껏 부린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아무래도 정감은 아까 것 보다는 덜한 것 같다.

이제 내리막이다. 좀 심한 내리막. 드디어 내 무릎도 신호를 보낸다. 일행의 행보에 지장을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 내색도 않고 열심히 움직인다.

설잠교를 지나자 다시 산행을 시작하는 셈이다. 산의 모양새를 보아하니, 능선을 타고 산새를 계속 느끼려면 고위봉을 지나치더라도 봉화대 능선길로 접어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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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 이승기가 의아했던 그 저수지다. 아무리 봐도 호수라기보다는 저수지 같다. 예전에 산 속에 살던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만든 저수지 같다. 위치가 산 위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큰 편이다.

조금씩 오름에도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에 땀이 나는 것인지 빠른 걸음에 땀방울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참을만하다. GPS를 봐서야 여기가 백운재라는 걸 알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GPS가 오작동을 해서 몇 십 미터 오차가 난 것 같다. 고위봉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같은 길인데도 올라가는 길에는 엉뚱한 궤적을 그려내고 있다. 어쩐지 녀석이 계속 비프음을 내더라.

그나마 고위봉 바위에 걸터앉으니 경주 남산의 남쪽 지역이 훤하게 들어온다. 아무래도 외부인의 눈엔 너른 벌판에 금오산과 고위봉이 고집을 부리고 자리를 비켜주지 않은 형상 같은데, 이 산 곳곳에 이런저런 전설과 유적이 산재해 있는 걸 보면 좋은 말로하면 함께 어우러져 잘 살아 온 것이요 내 느낌대로 말하자면 산을 숭배해온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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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재로 다시 내려오는 길부터는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스틱을 뽑아 들고는 어기적어기적... 이 고통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봉화대 코스에 대해서 아까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정말 12일 촬영 코스만 아니었으면 봉화대 코스를 택했어야 할 것이다. 칠불암 가는 길에 맞이한 암릉 능선으로 이어진 봉화대코스는 남산의 다른 멋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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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국보란다.>

 

그 멋을 실컷 즐기기엔 너무 아프다. 아프다. 그나마 칠불암은 들렀지만 칠불암 위에 있는 멋진 보살상은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다리가 멀쩡했다면 억지라도 올라갔다 왔을 텐데, 내려가는 길이 걱정이기만하니 원~. 칠불암을 지나 내려오는 길에 산죽이 이룬 아름다운 터널에서 내 무릎통증은 절정으로 치 닿는다. 화강암 계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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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난한 산행코스와 문화유적, 노천박물관이라는 말과 TV 1박2일의 편집력... 그런 것 모르고 왔거나, 해설가와 함께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준 편집된 선입견을 걷어내고, 곳곳의 문화재에 스며있는 땀내나는 조상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산행이었으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산행이었다. 언제 시간 나면 그 숨결이 묻어 있는 공주 공산성의 성곽이야기도 써 봐야겠다.

  

 

그나저나, 요 근래 산행은, 산행으로 인한 벅찬 감동보다는 통증으로 인한 벅찬 고통으로 뭘 보고 느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