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천정골-큰배재-남매탑-문수암-원점회귀
새벽까지 비는 내렸지만 다행히 춥지 않아서 얼지는 않은 것 같다.
오전 10시 30분에 공주대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했기에, 10분 전에 시간 맞추어 나왔다. 일찍 가봤자 보통 20~30분은 사람들 기다리느라, 깨쳐지지 않는 관행에 추위에 고생할 것 같아서 그랬지.
그런데 공주대교 교량공사가 여전히 진행형이라 보통 걸리는 시간에 2~3배는 더 걸렸다. 다리 위에서 마지막 신호를 받는데 게스트킴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신호가 떨어졌기에 기어 변속하느라 전화 받기엔 좀 그렇고... 금새 도착하니까 그냥 덮어둔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이 인간들이 그렇지, 언제나 오려나. 종탁에게서 온 전화가 생각났다.
“30분 되자마자 출발했어. 지금 가는 중이야~”
전화를 끊고 나니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온다. 나쁜... 맨날 지들 기다리며 고생한 사람한테 전화 한 통 없이 30분 되자마자 출발하다니.
날도 꿀꿀하고 몸도 안 좋은데 그냥 가버릴까? 따듯한 아랫목에서 잠이나 잘까? 게스트킴의 적극성 있는 멘트가 없었다면, 두 생각의 결투 결과는 산행을 접는 것이었을 게다.
사실 늦게 오고서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뭔 ‘따’를 당한 것 같은 생각과 배신감 뭐 그런 찌꺼기들이 머리통을 두들긴다. 주차장에서 만난 누구 하나 뭐라 말을 않는다.
대전에서 온 친구들까지 합쳐 함께 산행을 시작하건만 11시 30분이 거의 다 되어서다. 앞에서 번 시간 뒤에서 잡아먹긴 마찬가지다.
핸펀의 GPS를 잡느라 탐방안내소 앞 대형 산행도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자니 이 인간들 지들끼리 무리를 지어 꼬리를 감춘다.
바야흐로, 내가 ‘산좋아’를 떠날 때가 된 건가? - 무지 심각함.
어쨌든, 무릎 걱정에 저들과 함께 행보를 맞출 생각은 내게도 없었기에, 깜냥깜냥 한 발씩 내딛어 보고 정 힘들면 되돌아서자.
비 때문에 산길은 샤베트로 발라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아이젠을 신자니 물컹거리는 이 길에 맞지 않는 것 같구. 그냥 가자니 군데군데 미끌거려 근육이 무리해야 한다. 땀으로 범벅된 내 몸을 식힐 겸 옷 한 꺼풀 벗겨낼 겸 배낭을 열어 아이젠을 찬다. 그 바람에 이 인간들하고 거리는 더 벌어진 것 같다.
아~ 그런데 이런 길에서...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예전 사람들이 일구었던 계단식 경작지가 있는데 그곳은 계곡 건너편이다. 내가 얼떨결에 그 곳으로 접어든 것이다. 길도 꽤 반듯하게 치워져 있어 의심치 않고 올랐건만, 웬 처사님이 “여긴 등산로가 아니랍니다. 되돌아가시죠.”한다.
우라질... 오늘 왜 이러냐? 얌전하게 오르려던 내 마음이 우지끈 한 번의 뜨거운 피가 돌자 돌변하고 만다. 좁은 보폭을 버리고 빨랑 따라 잡으려, 저 밑까지 되돌아가지 않고 중간에서 계단식 경작지 두렁길을 타고 산을 질겅질겅 씹어가면서 원래 등산로에 다다른다. 엔진은 이미 뎁혀져서 멈출 생각을 않는다.
평상선생이 보인다. 여전히 그 모양새로 쉬고 있다. 이 노마는 힘들면 길을 비켜주고 쉬어야 하는데 그 덩치 그대로 제 자리에서 정지하고는 용량 미달의 심장이 내 뿜는 매연을 뿜는 안 좋은 버릇 -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오자 쉴 만큼 쉬었는지 길을 내어주지 않고 냅다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린다. 그런다고 엔진이 하루 아침에 바뀌것냐. 씩씩거리면서 열심히 두 발 두 손 다 써가면서 오르니 일행이 작은 케언 주변에 모여서 임회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나마 케스트킴이 몸이 안 좋아서 그냥 내려간 줄 알았다며 따스한 염려의 말을 건낸다. 그래 올라가서 따듯한 차[茶] 한 잔 대접할게.
큰배재까지 0.7km남았다는 이정표가 들어온다. 산길에서 이 거리는 그리 가까운게 아니다. 게다가 처음 완만한 길과 달리 이 구간은 가파름이 꼭 누구 성격 같다.
땀방울이 여름철처럼 뚝뚝 떨어진다. 큰배재에서 임회장을 기다리느라 식어버린 몸뚱아리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음식을 주어먹느라 정신없는 산새를 바라보는 재미로 잠시 달래본다. 의상만 잘 갖추면 전을 깔고 점을 쳐도 될법한 할머님께서 우리 일행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신다. 우린 뒤에 올 임회장의 인상착의를 알려드리고, 이야기 보따리를 전달하고는 자리를 뜬다.
다들 삼불봉엔 맘이 없나보다. 남매탑은 점심 끼니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번개같이 장이 선 것 같다. 그건 좋은데 먹고 남은 음식찌꺼기를 그냥 바닥에 버리고 담배를 피워 과태료 부과를 받고...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임씨, 할머니와의 몇 마디 대화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얼굴 모양새가 좀 달라 보인다. 다들 내려가는 길에 배낭을 가벼이 하려고 가진 것 전부를 짜 낸다. 우짤라고 소주에 맥주를 타더만 우중충한 날씨에 입맛에 맞는지, 삼불봉은 그냥 외상 하듯 그어버리고 SM을 너덧 잔씩 마셔댄다. 안개가 동학사 계곡을 가득 메워 봉우리에 오르면 경치 또한 끝내주것구만. 나도 그렇거니와 누구하나 오를 생각은 이미 내다 버린 지 오래다. 허기를 채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니 남매탑 주변이 정말 춥게만 느껴진다. 우리도 빵과 소맥으로 대충 속을 채우고 자리를 뜬다. 내려가는 길은 문수암 쪽으로 동선을 짧게 가져간다.
술은 술이다. 술기운이 몸을 여기저기 쑤기고 다니면서 정신없게 만든다. 더군다나 섞은 것이라 골을 팬다.
아스팔트길이 보인다. 다 내려왔다. 이제 무릎이 애원을 하려고 폼을 잡으려는데, 다행이다. 동학사 암자 지붕위로 보이는 봉우리와 안개가 참 에로틱하게도 엉켜 있다.
이젠 술이다.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자리는 2013년 ‘산좋아’ 임원진을 뽑는 것으로 시작한다. 약 먹고 있다며 한사코 방울소주를 고집하는 아나운서 박씨와 1월은 무조건 한라산 산행 콜을 외쳐대는 박씨. 양박이 회장과 총무로 2013년을, 이끌지 내 몰지... 암튼 파이팅이다.
이른 저녁은 까치집 멸치국수로, 그냥 가기 아쉬워 빠체에서 병맥주 댓 병 마시면서 오랜만에 나온 회원님과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오다.
그나저나 나도 내 거취에 대해서 고민 좀 해봐야 하나? ㅎㅎ
오늘 산행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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