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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나 홀로 연천봉

by 여.울.목 2017. 12. 25.

나 홀로 연천봉

2시간 반 동안 7km를 걸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선배님의 전화, 내게 저화를 하실 분이 아니신데.

- 내일 뭐하니? 함께 계룡산 등반 어떼?

- 지금 비오는데요?

- 정상은 하얗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번개 산행은 밴드에서 실현이 될듯하다... 연휴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사람들 반응이 썰렁하다.

나도 연천봉보다는 내 계획했던 주변 산을 거닐고 싶었기에 갈등이 생긴다.

어물쩡... 선배님이 다시 글을 내리셨다. 너무 참여가 적다는 것이다.

아~ 그러니 정기산행 추진하기 얼마나 힘드신줄 아시겠죠? ㅠ_ㅠ


2017-12-25_10-45-50신원사.gpx

아침이다.

아이들 덕에 늦잠을 잤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썰렁하다. 이부자리 속에서 머물고 싶을 따름이다.

늦은 아침을 시작하는데 시간은 벌써 8시다. 갈까말까?

10시에 둔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못간다고 할까?

뭉기적거리며 배낭을 챙기면서도 머리속은 yes or no 뒤죽박죽이다.


아무튼 10시 둔치 시간을 맞추어 집에서 나선다.


<경천지에서 바라본 계룡산 줄기>

운전도 뭉기적거리고 경천저수지에서 사진을 찍는다 어쩌다보니 30분이 다 되어간다.

오는 동안에도 다른 산을 갈까 말까... ㅋ ㅋ

전화를 걸어볼까?

30분이 다 되어가는데 오냐가냐 전화가 없는 걸 보니 산행을 포기하신 걸까?

아무래도 두 선배님들께서 부부동반으로 오르시는 것 같아서 내가 끼기엔 좀 그렇다.

오르다 만나면 반가운 것이고... 아님 말고.


크리스마스인데,

절에 사람들이 많다.

다들 신도증을 잊지않고 잘 챙겼는지 나 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권을 누리며 차로 나를 위협한다.

아이 C 내가 비켜둬야 하나 ㅎ


신원사는 동학사나 갑사와 달리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다.

사찰 구역에 들어선 식당들이 올 때마다 개점휴업상태다.


고왕암으로 올라가는 계곡길을 버린지 한참이 된것 같다.

예전엔 보광암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비법정이라 고왕암으로 자주 올랐는데,

언제부터인지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광암 코스를 잡는다.

이 코스로 말하자면 오르면서 좋은 전망이 펼쳐지는 포인트가 세 군데 정도 있기에 재미가 있지롱.


한 500~600미터를 헐떡이고 올라서면 그 보답을 준다.

멀리 내가 지나온 경천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설치한 난간을 따라 그냥 올라서면 조금 섭섭하지.

조금 여유를 가지고 휑한 나무사이로 2미터 정도만 들어서면 

쌀개봉-청황봉-머리봉 능선을 병풍처럼 감상할 수 있거든

무성한 숲사이로 수줍게 내민 암봉의 위상이 정말로 대단하다.

아~ 다시 가보고 싶다~만, 요놈의 무릎이 ㅠ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길을 올라간다.

그리 거칠지도 않고 가파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코스다.

힘들 정도면 떡-허니 멋지 풍경을 보여주니 숨도 돌리고 땀도 닦고 내 맘도 닦는다.

멀리 향적봉부터 멘재를 거쳐 머리봉까지 지치지도 않고 이어지는 산줄기

내 30대를 저 줄기를 따라 천황봉을 오른다고 얼마나 땀을 쏟았는지.

이 포인트에서 찍으면 항상 그라데이션이 멋지게 연출된다.

강원도나 지리산의 끝도 없는 산.산.산 겹겹히 포개진 그런 산줄기와 달리

노성의 평야지대에서 힘차게 시작한 산줄기도 매력적이다.

등비닐을 날카롭게 세우고 꿈틀거리는 용의 움직이 느껴지는 것 같다.

등운암 근처다. 지나는 사람들의 정성 하나하나가 쌓여 커다란 돌무지를 이루었다.

여기를 오르다보면 항상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연천봉 남쪽 어디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다.

정감록에 나오는 그 이가 바로 자기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일을 벌리면서 사는데,

결국 세월이 흘러 세상이 확 바뀌어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자각하던가 말던가?

암튼 그 덧없음을 독자는 알게 된다.

작가 이문열, 책이 참 재밌었는데,

2000년 초반 그의 남다른 보수적 성향을 보고는 그의 소설을 뚝 끊고 말았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나름 세상을 살아가는 그의 방식이었겠지... 그렇게 생각이 된다.

아마도 연천봉 남쪽이라고 했으니 이 등줄기 중간 어디가 이야기의 터전이 되었을 거란 생각에, 여기 올때마다 그 책 생각이 난다. 그리고 세월 속에서 세상에 대한 관점을 바꾼 작가도 생각하는데, 그런 그가 조금 이해도 되는 것이,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쌀개와 천황봉이 코 앞이다.

예전 등운암은 친숙한 여염집 같았는데,

이젠 전각처럼 팔작지붕을 한 대웅전을 세웠네요.

씁쓸한 미로가 지어집니다.


연천봉 바로 턱 밑에서 파노라마로 기념사진!


연천봉 정상이다.

항상 여기에 서면 더 나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오늘은 딱 여기까지다. 그래서 일부러 차를 끌고 왔지롱~

연천봉 석각, 정감록과 관련이 있는가보다.

아래 사진 제일 왼쪽이 문필봉이다.

여기서 보니 참 자애로와 보인다.

문필봉이 붓끝처럼 날카롭다고 해서 붙여진다는데,

올라올 때 나무 사이로 제대로 뾰족한 녀석의 모습을 보았다.

예서 보니 참 너그럽기만한 것 같다. ㅎ

내려서는 길은 내 무릎에게는 고행이다.

그래도 얼마간을 내려오니 평온한 오소길도 나온다.

산죽 사이에 살짝 숨어 있는 고왕암(古王庵)

신원사 부속 암자인데, 백제 의자왕 20년(660년)에 짓기 시작을 했는데 미처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완성하지 못한 이유가 당의 소정방과 김유신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왕자 융이 이곳에 피난했다 잡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암자 이름을 고왕암이라고 한 것도 왕자가 피신했던 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0여년 전에 여기 암자에 들렀을 때 하얀색 털이 복실복실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있었다. 크기와 달리 온순하게 생긴 녀석이 어찌나 우리 일행을 반갑게 반겨주던지... 그 때 일이 생각나서 일부러 들러봤다.

소나무 밑에 미륵상이 돋을세김되어 있다. 건물도 한 채 더 들어선 것 같구...

갑자기 10여 년 전 천황봉 가는 길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시간이 너무 아쉬워서 가급적 이 골짜기를 찾지 않는지 모르겠다.

너무 행복했고 자꾸 그립다는 생각이 엄습해오는 것이 무서웠나보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하지 않는 나만의 자유를


갑자기 무진장 뒤죽 박죽...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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