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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2011 새해 첫 산행, 신원사 - 자연선릉 - 동학사_2011.01.02.

by 여.울.목 2014. 9. 1.

* 2011.01.02 (일) 11:00~15:30

* 신원사주차장-보광암-등운암-연천봉-문필봉을 지나-관음봉-자연선릉-삼불봉-남매탑(상원사)-동학사-박정자 삼거리

* 움직임 약 13km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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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겨울 아침은 좀 우울하다. 다행히 하늘은 맑다.

휴일 하루를 산행에 투자하려는 나에게,

형식적으로나마 대항 하던 아이들이 이젠 제 할 일을 찾아 놀이에 빠져

문밖으로 나서는 내게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타이름에 순순히 응하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왠지 서럽기도 하다.

추운 날씨에 보이는 사람들마다 종종걸음을 치고 두 손은 주머니 속에 숨기고 있다.

 

한 달 만에 나서는 산행길...

왜 이리 어색한 걸까?

매주 나서던 때와는 달리 즐거움보다는 낯설음이 앞선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아무거나 계룡산을 향하는 것 중 먼저 오는 것을 잡아타기로 했다. 동학사5, 갑사2, 신원사10, 어디로 가든 자연선릉을 타고 반대편으로 넘으리라.

보통 휴일 같으면 버스 정류장에 나 같이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이 두엇은 보일 터인데 날이 추워서인지 나뿐이다.

한 20분을 서성이는데 춥더라.

양지쪽을 찾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려니 이것도 고역이다.

그래도 버스에 오르니 훈훈한데다

등산객이 두 명이나 미리 자리를 잡고 있으니 맘이 놓인다.

 

버스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살,

덥혀진 버스의 히터는 뜨거운 바람을 내뿜어 꾸벅꾸벅 졸면 딱 좋을 만하다.

그 햇살을 타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티끌이 왜 이리 평온하게 느껴지냐.

이 작은 버스 공간이 저 먼지에겐 우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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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저 곳이 향적산, 바라볼 때마다 안개에 쌓여 있구나 / 보광암을 지나 두번째 포인트에서>

 

생각보다 따스한 날씨다.

조금 걸었더니 땀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껴입었던 쟈켓을 벗어 배낭에 우겨 넣는다. 갈림길에서 갈팡질팡 이다.

눈덮힌 천황봉을 오르고 싶은 욕심에 금룡암 앞 갈림길에서는 한 1분은 서성였던 것 같다.

다행이다.

보광암을 옆을 지나 등운암을 오르는 옛 등산로를 택했는데

그 간의 공백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실하게 느끼게 한다.

스며 나오는 콧물에 코호흡까지 어려워지니 헥헥거림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땀.

그리 많이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장난이 아니다. 날이 추우니 이정도지 안 그랬으면 빗물처럼 많은 땀을 흘렸을 것이다. 많이 힘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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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봉과 쌀개봉이 잘보이는 곳이다 / 보광암을 지나 첫번째 포인트>

 

지나는 산행로에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등운암은 이제 개보수를 다 마쳤는지 돈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뽐내고 앉아 있다. 그 암자를 비켜 돌아 연천봉에 오르니 도저히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점심을 해결한다.

눈길을 보니 생각나는 친구,

미끄러운 덕유산길에서 유난히 많이 넘어졌던 녀석이 생각나 전화를 한다.

시골집이라 통화불량. 다음 주에 같이 부소산성이나 오르자고 한다.

친구야 내가 시간이 안 된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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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부터 연천봉과 문필봉이 보인다 / 관음봉에서>

 

몸 상태로는 이대로 내려가는 게 딱 맞을 것 같은데

이놈의 “욕심”이 수묵화처럼 펼쳐진 관음봉과 삼불봉을 보니 솔솔 기어오른다.

눈이 제법 왔나보다.

아이젠을 체인형태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발바닥 가운데만 걸치는 형식의 아이젠으로는 제대로 된 발걸음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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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릉에서 잠시 서서 '천황봉-치개봉' 주 능선을 바라봤다>

 

자연선릉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내 스스로 정해 놓은 시간에 쫓기고

줄지어 오가는 사람들에 떠밀려 앞으로만 간 것 같다.

눈이 처음 내려 새 하얀 그런 포근함 보다는

녹을 만큼 녹고 얼음 비슷하게 굳어버린 모양새라 그리 예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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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 온 자연선릉, 겹겹이 봉우리를 꽂아 높은 것 같다 / 삼불봉에서>

 

남매탑을 지나 내려오는 길은 미끄러짐에 대한 경계로 고생이 두 배였던 것 같았는데,

동학사부터 박정자 버스정류장까지의 길고 긴 도로는 맘만 바쁜 내게 짜증 덩어리였다.

이쯤 되면 끝나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남은 일거리처럼 지루하게 나에게 승부를 건다.

뛰어보기도 한다. 쓰는 근육이 달라 좀 시원하다만 금새 지친다. 또 걷는다.

그렇다고 어디 주저 앉을만한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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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원사 남매탑, 눈[雪]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것 같다>

 

휴~ 버스정류장이다. 따듯한 버스 안을 생각하니 좀 여유로워진다.

헌데 이놈의 버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이러다가 집에 가서는 그냥 고꾸라져 잠에 빠져들고는 모처럼의 휴일이 그냥 지나는 건가?

이건 뭔 쓸데없는 또 다른 두려움인가.

 

시간을 사야한다는 어떤 일본 사람 말처럼.

어느 정도의 돈을 들여 시간을 샀어야 했나보다.

딴에는 기름값 아껴보려고 이런 건데 몸과 맘이 다 피곤하다.

그렇다고 이제 꾸역꾸역 오는 버스에 올라 기사님보고 화풀이할 수도 없고,

그럴 용기조차 내 몸뚱아리 어디 숨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시내 버스정류장에서 가족과 상봉을 하다.

목욕탕이다. 잠시 둘째 아이가 아빠와 함께 남탕에 간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잠시 웃음을 머금는다. 아들 녀석과 근 한 시간을 따듯한 물속에서 첨벙거리니 몸살기운은 가시는 것 같다.

 

무거운 낮잠에서 깨어나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니,

그래도 뭔가 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