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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얼떨결에 공주대간을_2012.09.21.

by 여.울.목 2014. 9. 2.

산밤을 주우며 쉬엄쉬엄 정겨운 길을 걷다보니 서두르는 것보다 한결 나은 것 같다.

 

GS슈퍼마켓-월성산-능치-주미산-우금티-두리봉-공주경찰서

걸린시간 05:30 / 걸은 거리 12km / 최고높이 382m

 

 
  

건강검진을 위해 휴가를 냈다.

후다닥 검진 끝내고 산 한 바퀴 돌려는 속셈으로 일찍 찾은 병원. 내시경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시경... 사람들 이야기로는 다고지게 맘먹고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아님 올해 내로 다시 시간을 내야 한다고 한다.

나의 잔 머리는 여기서 끝나는 건가?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빼고, 내시경을 위한 엉덩이 주사 한 방에다 목마취용 액체를 10분 이상 입에 물고 고개를 쳐들고 있자니 첫 내시경에 대한 긴장보다 벌 서는 것 같은 이 과정이 더 힘든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내시경 받는 게 더 힘들지.

양치하려고 물을 악물지만 이것도 힘드네, 목과 기관지가 내 몸 일부가 아닌 것 같다.

아프지 말자. 고생이다.

 

마취가 덜 풀려 미적지근한 불쾌감은 계속되고, 엉덩이 주사 후유증으로 오른쪽 발을 내 디딜 땐 조금씩 멈칫거린다.

아침 일찍 산으로 도망치려는 계획이었지만, 위내시경이라는 새로운 경험 때문에 맞은 고도의 긴장감으로 하루 에너지 분출 정점을 이미 찍고 만 것 같다. 뭔지 모를 두려움과 긴장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피로하게 만든 것 같다.

그냥 이불 깔고 누워 자고 싶다. 어떻게 하지?

 

잠도 안 올 것 같고, 그냥 가자.

한 욕심을 버리고, 한 욕심을 갖자.

항상 처음 시작에 한 달음에 끝낼 것 같은 욕심에 무리하다 보니 쉬 지치는 것이 공주대간이다. 동네 뒷산이라고 얏잡아 보니 당할 수밖에...

컨디션도 영 아닌데 천천히 가자 대신, 오늘은 이런저런 핑계로 군데군데 끊어서 돌던 코스를 다 돌아보는 거다.

 

가을산.

산행 내내 과수원에서 보는 밤나무와는 달리 키가 커, 언뜻 보기엔 참나무인지 밤나무인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 산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은 게다. 게으른 내 산행길에도 주어지는 몇 톨의 밤을 줍는 맛에 오르막길의 호흡은 조금씩 조절이 된다. 밤톨로 부푼 오른쪽 주머니 덕에 마음까지 풍성해진 것 같다.

잦은 비로 산은 형형색색의 버섯공장이 되버린 것 같다. 가을이라지만 아직 산은 초록빛이 더 강해서 더운 느낌으로 긴바지가 답답했지만 풀숲을 헤쳐 나가기엔 더 나은 선택이었다.

 

1. GS슈퍼 뒷문~대웅아파트 놀이터~육각정~월성산(형제봉, 봉화대)

나야 집에서 가까운 산이고, 자주 다녀버릇하니까 안다지만 산행길 시작점을 찾는다는 것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리 쉬운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번엔 큰 길부터 궤적을 그려보기로 했다.

큰길에서 놀이터까지도 올라가는 길이 가파른 편이다. 놀이터에서 시작되는 산행코스는 산행욕심과 어울려 맥박수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짧은 구간이다. 그 구간을 지나면 완만한 능선 사이로 봉우리 같은 두 번째 고개 위에 육각정이 있다. 땀 식히기엔 안성맞춤이지만 주변 조망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흠이다.

육각정을 지나면 이제 월성산의 형제봉과 봉화대까지는 완만하거나 내리막이다. 월성산 형제봉 정상 근처에 다다라서야 조금씩 조망이 보이고, 형제봉에서는 금강을 낀 산맥 너머의 세종시까지 보이고, 봉화대에서는 공주시가지를 중심으로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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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성산~능치~공주생명과학고제2농장 뒷산

월성산 봉화대까지는 공주시내 사람들에게 익숙한 곳이다. 봉화대에서 서쪽으로 하산하면 시내로 향하는 길이고, 계속 남진을 하면 가파른 내리막이다. 효포초등학교로 가는 안내판도 보인다. 완만한 능선에서 근육이 쉴 틈을 주고는 다시 가파르게 조금 내려가다 보면 고갯길이 나온다. 지도에는 능치고개라고 나온다. 그냥 능치라고 하면, 능이 있는 고개라고 쉽게 이해할 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능치고개라는 고유명사가 되고 만 것이다. ()이라 하면, 왕이나 왕후가 묻힌 무덤이라고 한다. 아마 고개 어딘가에 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이 이야기다. 지금도 거기엔 한 민가의 묘가 있는데 내가 보기엔 그 묘가 능 위에 써진 것 같이 보인다. 대전 보문산 길에도 커다란 능 위에 산소 한 기가 안장되어진 것을 본 적이 있다. 어쨌든 이 길은 예전엔 무란주와 옥룡동과 효포 쪽 사람들이 쉬이 넘나들 수 있던 고갯길이었을 게다. 지도를 보면 남북으로 길게 난 산맥 동과 서쪽에서 지방도가 고개를 처든 뱀모양으로 산을 넘다 말고 고개 근처에서 멈춰 있다.

공주생명과고 제2농장이 보이는 봉우리. 그 앞엔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과 반듯하게 동서로 경계선이라도 긋고 있는 23번 국도가 논산 쪽으로 이어진다. 월성산을 지나 두 번째 뷰포인트다. 이 봉우리의 키 작은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계룡산 줄기가 정겹게 어깨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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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명과학고 2농장 뒷산~주미산~지막곡산~우금티

이제부터 주미산까지는 좀 지루할 것 같다. 조금씩 체력이 바닥날 시점에다 왜 우금티에서 전투를 벌였는지 이해가 갈만큼 이어진 능선길은 무뎌진 칼날 위에 길을 낸 것 같다. 이런 산을 넘기 힘드니 움금티로 모였을 것이다.

운동장 트랙을 돈다면 곡선진 부분에 해당된다. 턴을 하면서도 그 속도에 넘어지지 않으려 긴장을 해야 하듯이,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이름 모를 봉우리 몇 개를 지나다 보면 두 다리의 근육은 천근만근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라 시간을 잡아먹지 않으려면 서두루지 않되 몸가짐을 바지런히 해야 한다.

내 바지럼함 앞에 부스럭 소리가 난다. 땅 바닥에 댄 부분은 짙은 회색인데 등 부분은 초록색인 1m 남짓한 뱀 한 마리가 내 발자국소리를 듣고는 자리를 비켜준다.

얼마전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한 말처럼 뱀은 몸을 땅에 대고 기어다녀 대지로부터 자연의 이치를 몸으로 느낀다고 하더만 그 말이 맞는지 길을 내어주고는 멀리 도망가지도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멈춰 선다. 내가 지나가면 다시 되돌아 오려는가보다.

뱀만 생각하면 뒷덜미가 서늘해진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앉아 끼니를 때우던 곳에 화강암을 조각한 정산표지석이 세워져 있더라. ‘주미산 해발381.0m 공주시장’. 늦은 점심, 나만큼 여기 사는 까만 개미들이 내 점심거리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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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티까지 몇 고개?

지막곡산을 지나 봉우리 두 개와 고개 하나, 그러니까 봉우리 3개와 고개 1개다.

왜 이걸 굳이..? 같이 데리고 온 사람마다 주미산을 지나면 꼭 물어본다. “얼마나 더 가요?” 그럼 내가 말하지 조금만 더 가면 되요 힘내요!”, “윤구라!”

내가 항상 거짓말쟁이가 된다. 선의의 거짓말.

이쯤 되면 다들 체력이 고갈되가는 시점이다. 게다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자니 두 다리는 물론이고 허리와 양 어깨까지 헐떡거리는 게다.

그래서 내가 정확하게 말한다. 주미산 지나서는 봉우리 3개와 고개 하나 넘으면 우금티다. 이젠 묻지 말고 윤구라라고 씹지도 맙시다.

우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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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태풍 때문에 연두빛 땅 위에 엎어지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서있는 모양의 대나무 조형물이 이 가을 따사로운 햇살 아래 내 살에 소름을 돋게 한다. 마치 그 마지막 전투에서 쓰러지고도 모자라 빼앗길 들에서 30년 내내 짓밟힌 우리들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

감상에 사로잡혀 두리봉을 향한 마무리 걸음을 내 딛을까 말까 잠시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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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금티~두리봉~청실아파트

공주대간. 두리봉을 향하기 위해 가파른 길을 따른다. 그런데 가파름이 무척이나 심하다. 일부 구간은 움직여야지 가만히 서 있기는 힘든 곳도 있다. 하지만 가파른 만큼 비교적 짧은 코스를 지나 FRP로 된 산불감시초소에 다다라 땀을 식히고 나면 두리봉까지는 무난한 능선 코스다.

일락산과 봉황산으로 갈라지는 지점을 지나 잰걸음을 내딛다보면 어느새 두리봉이다.

천안에서 공주로 들어오다 보면 유난히 우뚝 서 있는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게 두리봉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과 남쪽으로는 공주 도심이 모두 잘 보이고 서쪽으로는 곰나루를 지나가는 금강과 때구정물까지 보이는 공주보가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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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을 찌푸리고 초점을 맞추면 내가 태어난 집도, 내가 다니던 학교도, 내가 놀던 골목길도 보인다. 정겨움이 내 발걸음을 한참동안 묶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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