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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장안산(1,237m)

by 여.울.목 2023. 6. 17.

장안산(1,237m)

무룡고개-억새능선-장안산
6.27km | 1:47 | 3.5km/h

 

여기저기 몸이 삐걱거린다.
심란한 마음에 전화했더니, 녀석은 입원할 상황이다.
100만큼 이야기하면 150이나 200은 더 힘든 녀석이다.

새벽부터 숙취가 찾아왔다.
깜냥껏 마시려 해도 으쌰으쌰 잔 들 때마다 눈속임하기엔 양심(?)이 꺼려진다.
게으른 뒷동산 산행이나 해보려다 얼결에 장안산을 찾기로 한다.
억새와 단풍이 유명한 곳이니 담에 올까 하는데, 아내까지 부추기니 멈춰 설 수 없는 상황이다.
산행 마치고 친구 얼굴 볼 겸 떠나보련다.

제법 먼 거리다.
유가인상 때 연비 높이려 여유 있게 다니던 게 버릇이 되어  과속을 하지 않는다.
그 여유에 크루즈 기능을 쓰니 몸이 훨씬 덜 경직된다.

무룡고개 가는 길은 등산객을 위해 닦은 것 같다.
고개 정점에 다다르니 산행에 나선 차량으로 왕복 차선 모두 심심하지는 않다.
주차장도 있는데, 억지로 들어갈 수 있어 보이지만 폐쇄된 것 같다.
나무 그늘을 찾아 길어깨 너머에 주차하니 바로 뒤따라 다른 차도 들어선다.

시작부터 오르막이던 길은 몇백 미터를 버티니 능선길로 이어진다.
그래, 버텨할 때가 있다. 삶은 연속이니까 새로운 것에 항상 최선이나 최고일 수 없다.
길은 널찍하고 완만한 경사다.
산이, 아니 길이 평온해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마다 인사 던지는 빈도가 높다.
첫인상은 마치 도심 약수터 길을 가는 것 같더라.

중등산화와 큰 배낭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 대부분 간편한 채비로 오간다.
오늘 무척이나 찌는 날씨에 나무 그늘이 최선의 방어선이다.
그래도... 어제 마신 술 탓인지 점점 발이 무거워진다.
산은 산이요 오르막이 시작되자 숨소리마저 거칠어진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지 않았다. 내 숨소리만 듣고 걷기로 한다.
오늘 많은 생각을 추려내고 싶었지만, 이내 생각에 앞서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이겨내려 본능에 충실해진다.

‘달그락’ 장비 부딪치는 소리다.
이 산중에?
나 혼자 있을 구간 - 내 뒤에 주차한 양반 어느덧 내 턱밑에 와 있다.
빠르다.
숲의 터널이 끝나고 억새능선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월을 내어준다.
나도 웬만하면 추월을 내주지 않는데, 숙취 때문이라고 위안삼고 그거 - 그 생각이란 거 다시 꺼내서 추려볼까.

하늘이 맑다. 너무 맑다.
맑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너무 덥다.
억새능선 중간중간 숲이 이런 날씨에 피신처다.
장안산 자체로는 그리 큰 산은 아닌 것 같다. 멀리 통신탑 서 있는 장안산 정상이 축지법을 쓰고 있는지 쑥쑥 다가온다.

마지막 데크 계단길에서 기를 쓰고 땀을 흠뻑 쏟아낸다.
정상… 그늘 하나 없다.
나를 추월한 그 사람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뭔가 목적 있는 사람이다.
서울 사는데 대구에 근무한다. 100대 명산 탐방 중이고, 방금 황석산 찍고 오는 거라네.
정말?  어제겠지. 아까 주차할 때 한 탕 뛰고 온 사람치고는 멀쩡하던데.
아무튼 대단하다. 100대 명산 때문에 산악회도 갔었는데 놀자판이라 결국 혼자 다닌다는데 돈이며 시간이며… 나와 의견 일치! ㅋ
인터넷 사전 조사 때도 느꼈는데 중봉과 하봉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큰 끌림이 없다.
지금 3.1km. 차를 가져왔으니 원점회귀인데 이 더운날 거리만 늘리는 것 같다.
택시를 불러 타고 다닐만큼 큰 매력 있는 구간은 아닌 듯.

뭔가 애매한 이 산.
이 산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백두대간에서 시작한다.
백두산에서부터 달리는 백두대간이 영취산을 지나 지리산까지 뻔어나간다.
영취산에서 오늘 산행 들머리 무룡고개로 정맥을 뻗친다. 그 호남정맥 최고봉 장안산.
참고로, 백두대간 큰 줄기 정간과 정맥은 큰 가지 1정간 13정맥이라고 한다.
산 명칭은 장안리 지명에서 따왔고, 여기서 난 물은 섬진강과 금강으로 나위어 흐른다.
강과 관련 있으면 정맥, 산맥만 있으면 정간으로 구분한다고.

내려서는 것만큼은 그 분을 앞선다.
간단히 인사하고 내려선다.
그래도 100대 명산인데 조금 더 걸어 볼걸 괜히 일찍 돌아섰나?
땀을 흠뻑 쏟아 주독이 빠져서 그런지 몸이 가뿐하다.
생각.
그 생각에 여유를 두기로 한다.

아프다는 친구 - 부산이란다.
미리 전화라도 하고 내려올 것을…
남는 시간 아주 천천히 집으로 온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글이 떠오른다.

좋은 여행

집으로 잘 돌아오다.

 

Climbing_2023-06-17_장안산.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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