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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세 번째 영동 천태산(714m)

by 여.울.목 2024. 4. 28.

2024.04.27.()
영동 천태산
주차장-영국사-천태산(714m)-남고개-영국사-망태봉-주차장(원점)
6.68km | 3:17 | 2.0km/H

오랜만에 가슴 터질듯하게 거친 숨을 내쉬며 산행했다.
오름에 거친 로프구간이 인상적이고 내림은 수월한 骨山이다.

 

2024-04-27_영동_천태산.gpx
0.17MB

 

 

하늘은 참 맑았다. 맑음 사이에 송화가루가 스멀스멀 뒤덮는다.

3번째 찾는 산이다.
처음, 황금빛 은행나무! 밧줄 타고 오르는~ 이런 산이 다 있었네.
두 번째, 첫 산행 감흥만 생각하고 가족을 이끌고 오다. 그래도 제법이었다. 행복한 산행.
세 번째, 7년 만에 찾아 밧줄 구간에서 비켜서지 않고 진검 승부하는 우리 아이 시간의 흐름에 서럽기보다 아이의 성장과 내 숙성되는 삶에서 흐뭇함을 맛본다.

다음엔 우리 마눌님과 단둘이 찾아볼까나.

 

생각보다 멀었다.
아니, 추억에 포장된 장면만 생각하다 현실에서 다시 이루려니 찾아가는 것조차도 버겁다.
대전에서 경부고속도로 타고 옥천으로 나와 영동으로 넘어간다.
계획보다 늦게 출발했어도 조급하지 않다. 맘이 평온하다.
넓은 주차장은 휴일인데도 한산한 편이라 앞서 온 산악회 사람들 소란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주차료 입장료 무료. 게다가 화장실도 깔끔하다.

들머리를 지나자 다 큰 아이가 어린아이처럼 멈춰서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본다.
양 볼 가득 먹이를 채우고도 더 가져가고픈 다람쥐 - 앞에 있는 인간들 때문에 동작그만 팽팽한 신경전이다. 헤치지 않을 걸 아는지 다람쥐가 인내심을 보인다.
7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는 아이. 이제 나보다 더 커버린 녀석인데 아이라고 한다.
집에 있는 가족을 끌어들이며 예쁜 추억을 끄집어 낸다.
삼신할멈바위와 삼단폭포를 지나 가파른 계단 두엇 지나 영국사 앞 은행나무를 만난다.
높이 31m 가슴 높이의 둘레 11m, 나이는 천 살 정도.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 내어 운다고 하니 과연 천연기념물답다.

-욕심 많은 다람쥐-
-삼신할멈바위-
-삼단폭포-
-영국사 은행나무-

 

이제 본격 A코스로 骨山 산행을 시작한다.
녀석 아직은 나무 데크 계단을 두어 개씩 성큼성큼 오른다. 제법 컸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그 기세에 아저씨 3명이 움찔하며 길을 비켜준다.
사실 이럴 때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하는데... 다시 추월을 내주더라도 깜냥껏 움직여야 한다.
아이 숨소리만큼 앞선 산악회 사람들의 왁자지껄도 점점 가까워진다.
첫 로프를 지나 산악회 일원과 맞닥뜨린다.
혼란스럽다~ 빨랑 시장바닥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두 번째 로프 구간은 조금 더 길다.
오름에 어려움 있는 다른 일행이 길을 내어준다.
밧줄 하나에 둘 이상이 잡으면 출렁이니 비켜준 만큼 부지런히 먼저 올라간다.
로프를 잡고 서둘러 추월한 사이 아이가 숨돌릴 틈 없었는지 좀 버거워한다.
아이 탓만이 아니다. 내 숨도 정신없다.
그늘을 찾아 나도 숨을 고른다. 물을 마시고 땀을 닦는다.
이제 제일 가파르고 긴 로프 구간만 남았다.
급기야... 아이가 추억의 포장지를 뜯어버린다.
우회로를 택하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커버렸다. ㅎㅎㅎ
내심 걱정되지만 선택에 맡긴다.
암릉 끝단에 다다르니 내 심장도 터질 것 같더라. 얼마 만이냐 이 벅참.
이 거친 날숨에 근심걱정 모두 내뱉으려나?
이제 아이 차례다. 나보다 큰 녀석을 업을 수도 없다. 녀석이 알아서 해야 한다.
잔뜩 상기된 얼굴에 허연 썬크림이 떠 있다.
구간을 벗어나 조망 좋은 봉우리에서 숨을 돌린다.
초코파이로 급 소모된 칼로리를 채우고 염화포도당으로 땀 만큼 염분을 보충한다.
스스로 오른 저 소란스런 구간을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의 울 아들.

-루프 구간 절정-

 

거칠긴 하다만 지나온 길에 비하면 힘들지도 쉽지도 않은 길을 따라 천태산 정상에 선다.
우린 D코스로 길게 돌아 남고개너머 영국사로 되돌아가련다.
얼마간 호젓한 능선길에서 여유라는 호강을 누려본다.
호강이란 게 따로 있냐? 아이와 나눈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가 호강이다.
간간이 로프가 나오지만 그리 심하지 않다. 암릉 사이로 펼쳐지는 주변 경치가 좋다.
흉물스럽던 채석장도 녹음으로 가득 상처를 치유한 것 같다.
남고개너머 하산길도 이제 빼곡히 나무로 가득하다.
사실 로프구간의 멋짐 빼고 하산길 마구잡이 개발로 어지럽던 곳이었다. 이젠 숲다운 면모를 갖췄다.

 

매번 다음에 가보자는 핑계로 지나치던 망탑을 들러보자.
아이가 더 적극적이다. 난 배고픔에 빨랑 내려가려고 했거든.
이정표엔 망탑을 경유해서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댄다. 1.4km
300m 정도 되는 작은 봉우리 望塔峰.
계속 내려서다 100여 미터라도 다시 오르려니 작은 봉우리라도 만만치 않더라.
자연 화강암을 기단으로 세워진 삼층석탑이 있어 망탑봉이라고 한다. 고려 중기 것으로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설명이 없다.
더군다나 옆에 상어흔들바위가 있어 전설이라도 있을 법한데 말이다.
안내판에는 고래가 헤엄치는 모양이라는데 최근 마련된 이정표엔 상어로 되어 있다.
좀 더 자극적이어야 사람들 관심을 끄나 보다.
울 아들 말대로 처음 볼 땐 오카리나 같은데 지나 보니 상어 같다.
망태봉을 내려오면 옥새봉으로 갈라지는 길과 만난다.
내려가는 길은 계곡과 함께 한다.
깊지 않아 수량이 많지 않지만 이어진 길이 인상적이다. 그늘 곳곳에 한적함을 즐기는 가족들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보면 '오카리나' 같다-
-이걸 보면 무시무시한 '상어' 같다, 상어흔들바위-
-望塔, 고려 중기 삼층석탑-

 

따가운 햇살 가득한 주차장.
화장실 세면대에서 대충 짠 기운을 씻어낸다.
도리뱅뱅에 칼칼한 어죽~
돌아오는 길 내내 숙면 취하는 울 아드님 ㅎ
덩치만큼 마음도 생각도 더불어 커지길 바란다.
그런 바람 속에서 지난 몇 달 동안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아이에게 그러길 바라면서 난 대체 무슨 실천을 했는지... 냉정하게 생각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어루만져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