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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전남 고흥 팔영산, 봄맞이 산행

by 여.울.목 2015. 3. 15.

모임 산행도 석 달 만이다.

한 주 전 공주대간길을 걸으면서도 걱정되는 것이 이번 모임의 산행에 악영향이 끼치지 않을까 무척 신경이 쓰였다.

수요일에는 근 10년여 동안 하지 않던 배구를 하면서 가로막기를 한답시고 수없이 깡충깡충 뛰었더니 허벅지에 알이 배겼다. 남들에게 피해나 주지 않고 산행을 마칠 수나 있을까?

금요일, ~ 이 모임은 술자리가 너무 길다. ㅠㅠ 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상 많이 자중을 했건만 칼처럼 딱 끊기기 어렵더만... 그래 사람이 살다보면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그래도 근접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거지.

살짝 도망을 나왔는데도 자정을 넘겼다. 그 시간에 대체 뭘 준비할 수 있겠어.

 

5시부터 아내가 도시락을 준비해준다고 불을 켜고 분주히 움직인다. 그런 느낌은 들었지만 도저히 몸을 일으킬 용기가 나지 않는다. 비몽사몽 대충 세수를 하고 장갑이니 손수건과 같은 잡다한 것 다 빠트리고 꾸역꾸역 순환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종종걸음을 친다.

~ 산악회 버스가 내 앞을 그냥 지나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구 어쩌구 내앞을 5백 미터나 지나서 멈춰 선다. 신새벽부터 달리기를 한다. 숨을 헐떡이며 석 달 만에 뵙는 선배님들께 꾸벅 인사를 하면서 자리를 찾아 간다.

 

3시간 반, 숙취까지 겹쳐서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바다가 보인다.

남포미술관, 고승우주선발사장 등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지나면서 계속 보인다. 다 왔나보다.

 

09:50~14:00 (4:10) 8km

능가사-흔들바위-1~8-깃대봉-탑재-편백나무숲-능가사 원점회귀





 

전남 고흥군 팔영산지구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중 유일한 산악지구란다.

팔영산은 608.6m로 그닥 높지는 않지만 바닷가에 있는 산이니까 그리 만만하게 봐서 안될 것 같지만, 여덟게의 봉우리를 지나치면서 느끼는 성취감 때문에 고단하게 오르기만했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고흥반도의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으로 이 郡의 진산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팔영산은 팔田산, 팔靈산, 팔占산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여덟개의 산 그림자가 한양까지 드리워졌다고 해서 八影山이라고 대표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보다는 여덟개의 봉우리 그림자가 떠오르는 태양의 힘을 받아 넓고 맑은 바다의 물결에 펼쳐진 모양이 인쇄판 모양과 같다고 해서 팔영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조금 더 현실적이지?



평촌마을

재킷을 벗기엔 조금 쌀쌀한 날씨지만 금새 땀이 날 것 같아서 배낭 안에 고이 접어 넣는다. 조그만 마을을 지나야 한다. 국립공원 안내소 자료를 보니 평촌마을이란다. 이 마을은 20124월에 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근데, 마을이 10가구에 1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하니 엄청 썰렁한 기운이 든다. 마을은 참 깨끗하다. 소박하게나마 이런저런 것들을 파는 좌판이 있지만 누구하나 멈춰 서질 않는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치면 능가사가 나온다. 능가사는 호남 4대 사출 중 하나로 40여 개의 암자까지 걸친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꽤 규모 있는 사찰 건물을 살펴보자니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최근에 지은 건물처럼 보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하다. 주차장이 대형과 소형으로 나누어져 있다. 소형주차장은 마을을 지나 오토캠핑장 부근에 따로 설치되어 있어서 대형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줄지어 산으로 가는데 지나는 차량 때문에 조금 위험스런 면이 있다.

 

15분정도 걷자 팔영산오토캠핑장을 지나 이제 산길로 접어든다. 우리 모임의 대열은 이제부터 조금씩 흩어진다. 선두-중간-후미로 모듬을 지어 무전기 한 대씩 배치되어 움직인다.

팔영산의 8개 봉우리는 대체 있기나 하나? 팔영산하면 멋진 암릉이 유명한데... 보통의 산처럼 육산이다. 그렇게 그런가보다 싶은 마음으로 몇 백 미터를 오르니 산 사이로 골산의 모습이 보인다. 참 신기하네. 산속에 산이 있는 격이다.

오랜 시간 침식으로 인해서 살 같은 흙은 다 내려앉고 정상부근의 암릉만이 남아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도봉산과 비슷한 보양인데 도봉보다 조금은 부드럽고 길에 능선을 따라 암석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인 것 같군.

 


흔들바위 2km

설악산에 있는 둥그스름한 바위하고는 다르다. 안정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안내문에는 어른 몇이 힘을 내어 밀면 흔들린다고 해서... 아무래도 마당바위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

 

8개 봉우리 능선 0.8km 50분 거리

 


1봉 유영봉 儒影 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네 491m

흔들바위를 지나 0.6km를 오르니 제1봉 유영봉 바로 밑에 다다른다. 유영봉부터 이어지는 봉우리 능선길은 험해서 우회로를 공식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처음엔 그냥 유영봉으로 향하는 쪽의 바위에 올라서서 풍경이나 바라볼 요량이었는데, 유영봉으로 향하는 원래 암릉길이 도전해보라고 손짓을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갑이 배낭의 벨트 부분 수납공간에 잘 보관 되어 있더라. 장갑도 없이 아직은 바닷바람이 여전히 쌀쌀한데 깍아지른 절벽을 기어오르려니 손시려 불편하더라. 벼랑길에 가슴을 쫄밋쫄밋 하면서도 오른 보람이 있다. 바위 위에서 시원하게 뻗은 산줄기와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동안 쌓였던 이런저런 안 좋은 것들이 시원한 바람에 씼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혼자 있었으면 눈물이라도 몇 방울 흘렸을지도 모른다. 이 좋은 산을 석 달 동안 만나봤다니...

한자로 그대로 받아 적자면 서비스럽다는 뜻인데, 오름길만은 그렇지 않더라.



<유영봉에서 바라 보이는 제2봉 성주봉>

 

2봉 성주봉 聖主 부처와 같은 성인을 닮은 주인 격인 봉우리란다. 538m

성주봉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더만, 철계단 사이로 보이는 예전에 사용했던 쇠사슬줄과 발받침이 보인다. 계단길이라고 해도 산행초보자들에게는 가파르고 맘을 다고지게 먹지 않으면 힘들 정도다.




  3笙簧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생황의 모양새처럼 564m




4獅子 기묘한 절경의 모양새가 사자와 같다 578m


5五老 다선 신선의 놀이터 579m


봉우리들이 바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편이다. 등산 어플에 포인트를 찍어 놓으니 촘촘해서 제대로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렇지만 봉우리마다 지나는 내내 펼쳐지는 풍경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춰 서지 않을 수 없다.

 




6봉 두류봉 頭流 하늘과 맞닿는 곳 596m

5봉 오로봉에서 제6봉인 두류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려섰다가 꽤 되는 거리를 다시 올라야 한다. 깊은 ‘V’형 능선의 내리막은 대부분 다들 넉넉하게 내려서는데, 오르막은 유영봉이나 성주봉 같은 가파름이 좀 더 길게 이어지니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힘들어하신다. 게다가 서너 군데 정도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두 팔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주의해서 올라야 할 구간도 있다.

6봉에 올라 일단 일행을 기다리며 점심을 먹기로 한다. 중간대장인 친구 녀석도 생각보다 빨리 오찬자리에 참석한다. 녀석이 싸온 4단 찬합은 김밥이나 빵으로 점심을 준비한 친구들에게 짙은 찬사를 받는다. 그래도 우리 집사람이 정성스레 준비한 두부김치와 계란말이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했다. 점심을 먹고 캔맥주 몇 개를 따서 나눠먹으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녀석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친구를 만나서 그런지 예전 그대로 고딩 수준이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디 이런 너스레를 맘껏 피우면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따듯한 햇살만큼이나 정겨웠던 식사시간이다.

육봉을 지나 칠성봉에 다다를 즈음 통천문을 지난다. 그래서 이 문을 지나 도착하니 하늘과 교류를 한다하여 두류라고 했나본데... 칠성봉에 붙여주는 게 더 이해가 쉽겠지만 제7봉에는 칠자에 맞는 칠성을 붙여야 했겠지.

 




7七星 일곱 개 별자리를 돌고 도는 칠성바위 598m

1봉부터 6봉까지 서로 가까기 붙어 있던 봉우리들이 칠성봉부터는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만큼 오가는 길도 넉넉한 능선으로 이어져 산행을 마무리할 시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유를 준다. 점심을 먹더라도 널찍한 이쪽에서 먹을 것을.

<칠봉으로 가다보면 자연 바위 동굴도 있구>


<통천문, 지나서 얼마만 가면 칠성봉이 나온다>


<오똑한 제6봉 두류봉>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마지막 8봉 적취봉이고 왼쪽의 민밋한 봉우리가 최고봉 깃대봉>


8봉 적취 積翠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초록의 푸름이 겹겹이 쌓여... 591m

적취봉~깃대봉 0.4km


<왼쪽 봉우리가 제8봉 적취봉, 오른 쪽으로 널직한 전망대>



  <표지석 뒤로 지나온 칠성봉과 그 능선>


깃대봉 608m

이제 골산 산행을 마무리하고 왠지 어울리지 않는 육산으로 이어진 이 산의 최고봉 깃대봉으로 향한다. 깃대봉에는 통신시설이 위치하고 있어 길이 널찍하게 잘 나 있는 편이다. 가는 길에 지나온 여덟 봉우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8개 봉우리 한 번 세어보자구요>


<깃대봉 정상!>



 


편백나무숲

내려오는 길은 적취봉에서 바로 능가사로 향하는 길로 간다. 적취봉을 지나자 한 2~3미터 가량의 가파른 바위길 앞에 수십 명의 여자 분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정체아닌 정체구간을 형성하고 있더군. 이분들 아까 능선길은 어찌 지나오셨는지 모르겠다. 잠시 샛길로 비켜 구간을 빠져나와 1km 채 못 미쳤을 때 편백나무 숲을 만난다.

이 숲은 전주제지(현 한솔제지)가 전라남도와 50년간 *분수림 계약을 맺고 집중적으로 편백나무를 심어 약 150ha에 달하는 조림지로 30년생 15만 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편백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 특히 장성의 축령산보다도 편백에 대한 상업적 활용은 적은 것 같다.

*분수림

산림으로부터 얻는 수익의 분수(分收)를 목적으로 산림소유자(국가 또는 개인)와 시업자(施業者) 간의 계약을 체결하고 조림을 실시한 국유림 또는 민유림. 국유림의 분수림이든 대집행에 의한 분수림이든 간에 수익분수율은 산림사업자가 90%를 차지하고 산림소유자(국가 또는 개인)10%를 차지한다(산림법시행령 제87, 21)

[네이버 지식백과] 분수림 [profit sharing forest, 分收林] (두산백과)



편백나무숲을 빠져나와 임도를 만나 몇 번을 가로질러 비교적 평온한 내리막길을 걸어 다시 능가사 쪽으로 내려와 산행을 마무리 한다.

<대단한... 정성이 모여있다> 



<내려오는 길, 계곡에서 1급수에 사는 물고기를 찍으려했는데 내 모습만 찍힌 것 같네 ㅋ>


오랜만의 즐거운 산행이었다.

한 달 후면 빼곡하게 들어서있는 철쭉에 꽃이 피면 더 매력적이고 환상적일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12일에 나왔던 벌교 꼬막과 함께 즐겁게 흥을 채우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