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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공주 갑하산-문정봉_2008.07.06.

by 여.울.목 2014. 8. 29.

공주 갑하산-문정봉
2008.07.06.

비가 그쳤다. 산에 갈까 말까 고민된다. 오후 산행에다 내일은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약속도 있다.

이것저것 뒤로 하고 배낭을 챙겼다. 나를 위한 간만의 투자 아닌가?

매일 출퇴근 길에 눈독 들였던 갑하산-우산봉 코스를 욕심내보기로 했다.

1400 갑동

도착은 했지만 대체 어디인지 몰라 동네를 헤맸다. 이 동네가 이렇게 잘사는 동네인가? 고급 주택이 즐비한 동네다. 괜히 기웃거렸다가는 오해살만도 하겠다.

한참 만에 이정표를 찾았지만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휀스로 막혀있어 무작정 산길을 찾아 올라갔더니 웬 농장이 나왔다. 주인아저씨 빙그레 웃으면서 제대로 된 길을 알려 준다. 나 말고도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가보다.

1415 산행시작

막혀 있던 휀스 왼쪽으로 나무에 가려진 또 하나의 이정표가 나왔다. 처음 오는 사람 헤맬만하게 잘도 안내해 놓았더군...ㅈㅈ  아무튼 개울을 건너 GS가스 충전소 뒤편 길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그런지 편안한 산길이 나왔다.

1420 갈림길

한 5분을 올라왔나? 갈림길이다. 왼쪽은 빨간 리본이 달려 있었고, 오른 쪽은 길이 더 넓고 길도 탄탄해 보였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가다보니 산중에 웬 비닐하우스가 있더라. 도량이란 곳이란다. 다듬어지지 않은 뾰족한 돌덩이로 석축을 쌓고 마당과 조그만 단을 만들어 놓았다. 너무나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걸 보니 누군가 계속 도를 닦고 있나보다.

아! 그리고 계곡이다. 갑하산에서 유일한 계곡 같다. 시원한 물로 얼굴을 닦고 계속 전진했다.

1445 잘못 든 길

드디어 능선을 만났다. 너무 힘들었다.

계곡을 가로질러 계속 전진했더니, 가파른 길이 계속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길은 길인데 앞으로 나가기 거북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으로 아는데 왜 이러지? 가는 길마다 거미줄에 나뭇가지에 벌레들,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가파른 길이라 마땅히 숨을 돌릴 곳이라곤 묘를 이장하고 난 빈 터뿐이었다. 아! 이런 빈터가 3개 정도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묘 이장을 위해 낸 길 같더군.

드디어 만난 능선, 얼마나 반갑던지...

14:50 갑하산 정상

잘못 든 산행으로 고생해서 그런지 포기하고 싶었다. 미치것다. 그냥 갑하산까지만 가자!

갑하산 정상,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인가 보다. 지친 몸을 벤치에 얹고 물통의 물을 반쯤 해치우고 쉬고 나니 서편으로 보이는 산에 욕심이 간다.

그래 저기까지만 가자!

1545 문정봉

힘을 내서 다시 시작하길 잘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는 등산객들이 모두 웃음 지으며 인사를 한다. 모두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후다닥 올라온 사람들 같다. 다들 비슷한 처지라 그런지 쉽게 인사가 오고 간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반갑지만 정말 멋지다. 이런 맛에 산을 오르는 구나. 산줄기가 이렇게 흘러와서 저기까지 보이는 구나.

멀리 동학사 지구와 천왕봉, 삼불봉, 장군봉... 문정봉과 갑하산 정상 사이의 중간에서 먹뱅이 골로 내려가면 바로 동학사 지구까지 갈 수 있다.

시원한 캔맥주 한잔, 참고 참았다가 땄다. 이런 기분 아는 사람만 아는게 아닐까?

15:00 하산을 시작하다.

우산봉을 가고 싶었다. 다음에 도시락 싸서 오전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다. 오후부터 시작한 산행이라 아무리 해가 긴 여름철이라도 무리할 것 같다. 우산봉아 아쉽지만 다음에 보자.

16:25 갑하산을 다시 지나다

이번엔 제대로 된 등산로로 하산한다. 이런 좋은 길을 두고... 경치도 너무 좋다. 삽재고개를 베어든 저 국도 때문에 끊혀 버린 도덕봉으로 이어지는 산행로가 보인다.

16:50 집으로 출발

항상 느끼는 것이다. 아니 바라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복잡한 상념을 씻고 싶어 출발한다.

하지만 내 상념을 씻기 보다는 산에 오르는 것 자체에 집중하고 산에 오르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도 힘들다. 힘든데 그만 내려갈까? 잘못 든 길은 아닐까? 목표까지 다다르기까지 시간은 충분한지. 내가 오늘 너무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정말 멋진 풍경이다. 사람들이 이런 맛에 산을 오르나보다. 한달음에 건너편 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내려오면 정리 못한 생각 때문에 쓴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산은 아니 모든 자연이 그렇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 산행을 할 때 산행만 생각하고 열정적이고 느낄 줄 아는 나, 그래 내가 정리 못한 일들.., 내가 뛰어들어 해결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