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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일욜 산행, 문정봉-갑하산_2010.10.03.

by 여.울.목 2014. 8. 29.

일요일 아침이다.

오랜 만에 찾은 하루의 휴일이다. 나름 못 가본 민주지산이나 다녀올까 하는 장밋빛 희망을 품고 사치스런 늦잠에 부담을 느껴 어김없이 눈을 떴건만,

이 녀석... 곰돌이 열차를 한 번 더 태워달란다. 대백제전서 타본 그 맛을 못 잊어, 지난 밤 흘러가듯 엄마와 나눈 군문화축제에 그게 또 운행한다는 걸 귀담아 두었다가 일어나자마자 태워 달라 외쳐댄다.

 

언제 산에 갈거냐는 친구의 문자...

어제 치악산 산행으로 피곤에 지쳤으니 오후에 어떠냐는 내 답문자에 다행히 화답을 하다.

 

좀 서둘렀으면 행사장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사람 참 많은데 그 넓은 비상활주로는 못 채운다. 넓긴 넓은가 보다.

그렇게 녀석의 기분을 맞춰주고, 부랴부랴 오전 스케쥴을 접고서는 길거리에서 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 산행 채비를 한다.

 

PA030003.jpg

산은 그대로 있었다.

오후 반나절을 오르내릴 수 있는 산을 찾았다. "갑하산-문정봉(신선봉) 왕복 코스"

길가엔 꽤 많은 등산객들의 차량이 서 있다.

거의 오후 3시가 다 되어 시작된 산행이라 요즘 무섭게 짧아지는 낮의 길이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을은 가을이다. 땀이 흘러도 굳이 손수건을 꺼낼 필요가 없다. 바람에 쓸려 어느덧 날아가 버린다. 처음 가파른 구간을 올라 삽재고개를 굽어보니 친구의 이 한 마디 "캬~ 좋다"

그렇게 갑하산을 오른 것 만으로도 한껏 초가을을 느꼈으리라.

거침없이 문정봉을 향해 걸어가며, 이 친구 이런 곳이 있었냐며 감탄사를 쏟아 낸다.

정말 반가웠다.

내가 처음 갑하산을 찾아 문정봉을 향할 적 갑하산 가파른 길을 내려 서자마자 만난 바위길에서의 계룡산의 모습에 반해 연신 카메라를 들고 생쇼를 피우던 때가 생각난다.

정말 산을 느낄 줄 아는 친구로구나. 아니 내가 느낀 감정을 같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반갑고 그게 더 반가웠다.

문정봉의 바위 위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캔과 사과 반쪽...은 굳은 날씨 때문에 접어야 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의 하늘만 검게 변하는 것이다. 바람도 차가와 지고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매일 보는 산하를 새로 보고는 아쉬운 맘을 접고 서둘러 문정봉을 내려 갑하산에 되돌아 오니 다시 하늘이 갠다. 이게 웬 심술이냐.

 

그렇게 내려오니 오후 5시 30분이다. 2:30~3시간 정도의 쌈박한 산행을 하고나니 친구가 삼겹살이 땡긴단다.

하지만 내겐 하나의 의무다 또 있지... 녀석이 원카드를 하자고 집에서 기다린다.

내게도 하루의 휴일이지만 아이들에게도 아빠와의 하루일 텐데... 이렇게 생각하니 삼겹살은 감내할 수 있지만, 소주-요 녀석은 내 휴일 저녁을 더 힘들게 할 것 같아 정중히 거절한다.

 

매일 앉아만 있다 우당탕 움직인 탓인지 집에 오니 몸이 놀랬나 한기가 느껴진다. 저녁상을 좀 늦추고 점퍼를 입고 한 30분 고단함을 잠으로 푸니 개운하다.

 

이 피곤함도 오랜만이다. 매일 느끼는 피곤함과 다른, 피곤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오로지 육체적 피곤함? 저녁을 먹고 꾸벅꾸벅 조는 사이에 아이와 집사람이 원카드를 몇 판 돌렸단다.

녀석과 몇 번 몸을 부딪치며 놀아주고는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