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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사량도 지리산_2010.06012.~06.13.

by 여.울.목 2014. 8. 29.

6월 12일 가는데

 2010.6.12.~6.13.

07:05공주대 - 07:35유성 - 10:00가오치 선착장 - 10:40사량도(윗섬)

 

산좋아 타임을 30분 → 5분으로 줄이다!

아무래도 우리 안사람도 같이 가려나? 아침 일찍부터 그 많은 아침잠을 무참히 짓밟고는 왔다리 갔다리... 미리 챙겨둔 배낭을 메고 나가려는데 삼각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두 강지가 가지고 놀다가 어디다 잘 모셔다 둔 것 같다 . 삼각대를 찾느라 괜한 시간만 보냈다. 아침부터 괜히 살짝 열만 받았다. 어쩐 일이냐? 아예 나오지도 않을 것 같던 평상선생께서 먼저 웃음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피곤했을 총무님은 어렵지도 않은지 벌써 운전대를 잡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올라오는 길은 내가 방향타를 잡아야 할 것 같다. 처음 보는 반가운 얼굴을 보며 설익은 웃음과 인사도 잠시, 바로 출발하기로 한다. 지 닮은 기다란 막대를 들고 온 석인, 수염 기르고 도포자락만 입으면 딱 이다. 드디어 택시 안에서 커다란 머리가 보인다. 다들 좀 들떴는지 뜨거운 커피를 후루륵 들이킨다. 한 달만의 모임이지만 거르고 건너 나오는 회원도 많은지라 겉으로는 자연스럽지만 왠지 속으로는 겸연쩍어 그런지 이런저런 이야기로 탐색해가며 서로의 코드를 맞춰나간다. 소주 한 잔 마시고 나니 해야 할 야그 다 했나 조용해진다. 총무님의 능수능란한 운전 솜씨 덕에 휴게소를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통영이다. 한 시간이나 빨리 왔다.

 

설렘

난 11시 배 시간에 맞춰야 하니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가길 바랬는데, 가오치 선착장에 도착하니 사량도행 배가 출발하려고 준비 중이다. 분명히 사량도행 여객선 시간은 7, 9, 11시 인데... 주말이라고 부정기선을 띄운 모양이다. 어쨌거나 한 시간을 번 셈이다. 근 300km나 떨어진 타지에서 배를 타고 모르는 곳으로 간다니, 좋은 말로는 설레고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나보다. 차 안에서의 탐색전으로 준비된 이야기 감으로 맥주 몇 모금을 삼키면서 점점 다가오는 새로운 풍경에 기대를 걸어본다.

 

바다가까이 숙소 이름이 '바다가까이'다. 숙소를 찾아가지 전 잠시 항구 주차장 옆에 피어 있는 주홍빛 양귀비(개량했다고 한다)의 자태에 빠져 흔들리던 사람들이 숙소에 짐을 풀어 놓고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우라질 놈의 갈등에 괴로워한다. 저놈의 산을 올라가야 하나?

 

12일 산행에

12:00금북개 - 13:15주능선(이정표1) - 13:40사량도 지리산 - 14:40이정표3 - 15:45가마봉 - 17:00옥녀봉 - 17:30대항 근처 도로(산행종료)

총5:30 소요

 

금북개 -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실 사량도의 대표 산행 코스는 돈지에서 시작해서 금평항으로 가는 행로다. 그래야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다나? 하지만 숙소가 지리산 정상을 중심으로 정 반대인 내지 쪽이다. 그래서 기대가 무너졌다는 것은 아니다. 회원들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배를 채우고 갈 길을 재촉하는 내 목소리가 얼마나 싫었을까? 후덥지근한 날씨에 한 숨 때리고 저녁 먹고 나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대~한~민국"을 외쳐대고 싶었겠지.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산행을 시작한다.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무서운 스피드!

<정말 가기 싫은지 발걸음이 무겁다>

 

첫 번째 주능선 - 옥녀봉이 어디야?

무지막지한 오르막을 힘차게 오른 7인의 용사(?)들, 첫 번째 이정표까지 오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지 그저 발끝 아래로 펼쳐지는 바다를 품에 안느라 정신없다. 그런데... 드디어, 아니나 다를까, 역시, 척하면 삼천리 첫 번째 우회 산행로를 거부하고 거침없이 바위 능선길을 헤쳐 나오자마자 평상 선생께서 "옥녀봉이 어디야?"하며 묻는다. 나도 모른다. 나도 오늘 처음오거든. 이렇게 시작된 소리는 갈수록 이사람저사람들의 입에서 계속 반복된다. 고문이다.

 

<아래 보이는 마을이 ‘돈지’>

 

사량도 지리산 정상 - 산행도 정점?

돈지마을이 제대로 보이는 곳이다. 주황색, 초록색, 파랑색 같은 원색으로 칠해진 지붕과 바다와 산, 제각기인 사람들의 등산복 색깔이 잘 어울린다. 이제 이쯤 되니 다들 계속되는 바다 풍경에 질리나보다. 계속되는 바윗길 산행으로 발바닥에 불이 났는지 다들 철퍼덕 앉아 두 팔을 뒤로 몸을 지탱하고, 두 발을 쭉 뻗어 발바닥에게 쉴 시간을 주고 있다. 이때쯤 되면 우리 둘째 아이가 하는 말이 있다. "아빠 이제 엄마집에 가자!" 딸아이는 집을 꼭 엄마집이라고 한다. 아빠 서운하게시리... 암튼 조금씩 사람들이 이제 내려가는 길을 원하는지 산행 선두를 자꾸 나에게 내어주려고 한다. 그래도 우리 총무님은 사냥개 한 마리와 어울려 여전히 기운 센 천하장사마냥 씩씩거리며 앞질러 간다.

<사량도 지리산 정상... 앉은 자리서 움직이지 않네 그려~>

 

두 번째 갈림길 - 비를 만나다 문득 다른 산을 걷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오락부장님의 말처럼 지리산 정상 다음의 내리막을 지나면서는 편안한 흙길이다. 오늘 처음 나온 미영님의 지칠 줄 모르는 산행 체력에 다들 감탄한다. 싸온 계란을 먹자니 하늘에 한두 방울씩 내린다. 앞으로 이어질 바위길이 빗물로 미끄럽지 않을지 걱정이다. 세 번째 갈림길, 산에서 음료와 술을 파는 장사꾼들이 하루 장사를 접는다. 사람들이 크게 동요한다.

 

<나란히 어깨동무한 봉우리 ‘가마봉-연지봉-옥녀봉’>

 

가마봉 - 유격훈련

동요할만하다. 그렇게 편안한 흙길을 지나자 기다란 밧줄이 나타날 줄 미리 예견했기 때문인가? 밧줄 잡고 기어오를 바위 봉우리, 바라보기엔 가파르지만 사실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다. 세 번째 갈림길 이후 자꾸 일행과의 거리가 난다. 잘 가던 사람들이 억지로 가려니 그러는 건지 힘이 정말 다한 건지...

<유격장>

가마봉 정상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들에게 산진을 찍어 주고 가방 속의 오이 한개를 다 먹어 치워도 오지 않는 그들... 나름 거리를 두고 같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나보다. 계속 이어지는 산행길에는 밧줄이 아니면 오르기 힘든 코스다. 우회로가 있어 다행이지만 어쩔 수 없이 줄에 매달려야 하는 곳도 몇 곳이나 되었다.

<저기도 줄 타고 올랐다>

미리 알아본 바와 같이 사량도 지리산은 이렇게 험한 산이었다. 생명의 위협의 느꼈다는 회원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내가 왜 미안함을 가져야 하는지 반감도 생겨나자 불편함 마음이 평상심을 찌르고 올라왔다.

 

옥녀봉 - 그렇게 찾던 옥녀봉인데...

그렇게 연지봉을 지나 그리 노다지 찾던 옥녀봉에 올라 다들 사진 한 컷 찍을 여유가 없는지 하산길만을 재촉한다. 물끄러미 미려한 곡선으로 쌓여진 돌무더기 너머 고기잡이 배가 하얀 물길을 만드는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집에 안부 전화를 건다. 내려오는 길, 정말 많이 힘든지 나보다 한껏 먼저 출발했건만 점점 떨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뒤에서 계속 뒤에서만 따라가려 했건만 그리되지 않았다. 사실 의식적으로 뒤에서 따른다는 건 앞에서 가는 것보다 더 많은 힘이 드는 것 같다. 제일 뒤는 아니지만 앞과 뒤를 같이 보려고 노력했는데, 이 가파른 하산 길에서 내 페이스를 놓치고 계속 서 있는 것이 더 힘들다. 그렇게 막바지는 가파랐다.

17:20 산행 종료 - 고마움

솔직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틈만 나면 살인적인 산행코스에 대해서 날카로운 칼을 들이 밀줄 알았는데 꾹~ 참아 주니 고맙고, 그렇게 거친 산에서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다녀와서 정말 고마웠다.

 

爲而不恃 長而不宰

 

 대~한민국

산좋아의 아나운서님께서 부재중이라, 다행히 초반에 취하지 않아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참고로 이날 빠지신 속알찬님의 초반 건배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도 술이 어지간히 들어갔는지 다음날 집에서 축구 녹화방송을 보는데 골 장면 빼고는 왜 그리 생소한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대~한민국의 함성 속에서도 꿋꿋하게 잠을 청한 몇 분들도 대단했지만, 그날의 우리 축구 대표팀이야 말로 정말 대단했다.

 

13일 오는데

10:00금평항 - 10:40가오치 선착장 - 13:30유성(점심 해결) - 14:30공주대(해산)

 

권식, 마눌님과의 통화에서 운전에 대한 야그를 나눈다. 괜히 내가 미안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질타 속에서 방향타를 잡았다. 거칠고 모자란 운전에 쉬지 않고 떠들고 잘 자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권식아 앞으로 잘거면 뒤로 가서 자거라, 숙취로 메스껍고 머리 아픈 것 보다 졸린 게 더 힘들었다.

 

어느덧 자리를 파하는 자리,

 

그래도 나름대로 서로의 덕담 - 그래도 어찌했다는 강평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얼마나 기가 찼는지 아무런 말이 없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은 얼굴이다. 노래방 가볼까? 하는 농담에도 부장님 묵묵부답.

산행 전반의 수케듈 조정하고 이끌고, 차까지 모느라 고생했던 권식 총무님을 위해 박수!

얕은 뒤지를 박박 긁어 먹여주고 재워주느라 몸과 맘을 아끼지 않은 은영 총무님, 박수!

철마다 119로 실려가는 사람들 많다던데 무사히 군말 없이 받아준 회원님들께 박수!

 

아쉬움

이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예전에 팬이었던 이문열 작가의 소설에서 본 것 같다. "추억" 모든 것이 추억으로 미화된다고. 그 쪽으론 소변두 안 눈다는 군대도, 매일 혼만나던 학교도 "추억"이라는 단어에 아름다움을 입힌다. 우리 이번 사량도산행도 그 옷을 입을 날이 조만간 오겠지?

아쉬움이 남는다.

<하얀 물거품 뒤로 멀어져가는 사량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