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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덕수궁(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_이중섭 展)

by 여.울.목 2016. 7. 18.

전통과 근대가 만난

덕수궁


 

서울시립미술관을 나오니 바로 덕수궁돌담길이 이어진다.

교차로 한켠 남은 공간에 이런저런 꽃을 심어놓았는데, 돌담길과 잘 어우러진다.

 

 

돌담길을 걷다보니 단순한 돌담 수준이 아니라 성벽이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든다.

자객이라도 이 담을 넘으려면 내공을 많이 쌍아야 할 것이다.

이문세의 노래에도 '나오는 덕수궁돌담길' 자연과 근현대의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도심 한 복판 길을 느긋하게 걸어본다.

마침 점심식사를 위해 몰려나온 시청 직원들과 주변 금융기관의 회사원들이 뒤섞여 활기가 넘친다.

어떤 사람들은 금요일 오후를 맞이해서 공연을 준비하고

어떤 사람들은 법인택시의 불합리한 급여구조에 대하여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다 사람들 사는 모습이다.

 

배꼽시계에 민감한 아이가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을 호소한다.

집에서 나올 때 여기저기 맛집을 찾아보았는데 그게 아무 소용이 없다.

쏟아져나온 직장인들로 어디나 꽉꽉 차 있다.

와이셔츠와 블라우스 차림의 사람들 틈에서 반바지 차림의 부녀가 밥을 먹겠다고 같이 줄 서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녀석이 배고픔을 못참아 계속 배고픔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서울광장이 보이는 큰 길 건너 햄버거집이 보인다. 이래저래 가장 만만할 것 같아서... 그런데 2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길을 건너와 빵집에서 자리를 잡고 빵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운다.

20~30분만 다른 것 둘러보고 있으면 식당 자리를 여유있게 잡을 수 있을 터인데 녀석 못참는다.

 

 

드디어 덕수궁으로 들어간다.

 

대한문 - 수문장 교대식 행사

 

 

조선시대를 통해 크게 두 번 궁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원래 월산대군의 집이었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피난 후 머물곳이 없어 이 곳을 행궁으로 삼고,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갈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경운궁이라고 불렀다네.

 

조선 말기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다시 궁궐로 사용되었다.

대한제국이라고 국호를 짓고 황제자리에 올랐다지.

지금의 정동과 시청 앞 광장 일대까지 이르는 규모로 궁을 넓혔는데, 현재의 3배에 달하는 크기란다.

그런데 고종 스스로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생각과 권력 유지에 외세에만 의지하려했기에 밖으로는 일제에 의해 그의 의지와 시도는 좌절되고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순종이 창덕궁으로 물러나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빈다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려 덕수궁이 되었다.

 

고종 승하 후에 일제에 의해 빠른 속도로 해체, 축소되어 지금에 이르렀다네.

 

개하 이후 서구 열강의 외교관, 선교사들이 이 일대로 모여들면서 덕수궁도 근대 문불을 받아들었다.

궁 내에 근대식 건축물이 들어서고, 궁 주변과 정동에 교회와 학교, 외국 공관의 자취가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중화문을 지나 중화전

1902년 임시 정전으로 쓰던 즉조당 남쪽에 행각을 두르고 2층 규모의 중화전을 세워 궁궐의 중심 영역으로 삼았다는데,

큰 불이 나서 1906년에 단층으로 다시 지었다.

중화문과 행각도 이때 다시 지었다고 한다. 

 

 

 

 

중화전과 조정

국가 의례를 치르는 상징공간으로 2단으로 월대를 마련하고 바닥에 박석을 깔고 품계석, 삼도를 설치하는 전통 궁궐 격식을 따랐다고 한다.

 

중화전 오른 편 처마 아래로 보이는 새 서울시청 청사와 현대식 건물

 

중화전 왼쪽 뒤편으로 보이는 준명당과 즉조당

준명당은 고종이 업무를 보던 편전이며 즉조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아래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즉조당과 즉조당 오른 편에 숨어 있는 석어당까지 선조가 거처했던 전각들을 보전한 곳이란다. 즉조당은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이고, 석어당은 선조가 거처하다 승하한 건물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이 바로 석어당 건물

목조 2층 집으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 같다. 그래서 앞에서 뒤에서 유심히 찍어 보았다.

돈 많은 재벌집에서 별장으로 만든 건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에는 버거운 곳임에는 분명한 것 같으이.

 

석어당 뒷편

 

어릴적 기억에 외갓집 뒤곁에 가면 보이던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굴뚝이다.

경복궁에서 보았던 굴뚝도 아름다웠지만 여긴 더 자연스럽다.

건물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멋드러지게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자연과 함께 정원을 이루고 있다.

 

개화 이후 빠른 속도로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흔적을 굳이 눈을 씯고 찾아볼 필요까지 없다.

중화전에서 잠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축물인 석조전(1910년 완공)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함께 한 눈에 들어온다.

 

지하층, 1,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황제의 접견실과 식당이 있는 공적인 장소

2층에는 황제를 비롯한 황실가족의 공간

지하층은 주방, 창고 등이 있는 공간이었다.

 

석조전은 무료관람인데,

1,2층은 외국이 아니라면 미리 인터넷을 통해서 예약을 받아

해설사를 동반해서 제한된 관람을 한다고 문을 굳게 닫아 놓아더만.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게도 창밖에서 내부를 물끄러미 바라다 보기만 한다.

 

덕수궁을 나서려는데,

멀리서 풍악이 울린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위해 수문장과 수비대원들이 열을 지어 궁밖으로 나가고 있다.

 

 

 

 

 

 

 

이중섭 展


 

 

석조전 관람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향한다.

 

 

어른은 6,000원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는 4,000원... 이면 이중섭의 "흰소"를 직접 볼 수 있다.

 

 

이중섭 특별전에 대한 사진을 찍고 싶지만 여기도 구석구석 감시하는 직원들이 많아서...

더군다나 "흰소"가 있는 제2갤러리는 아예 두 명이 쌍심지를 켜고 무시무시하게 지켜보고 있더라.

 

사람들 모두 진지하게 그림을 감상하는데,

대충대충 지나치는 건 우리 부녀 뿐인 것 같다. ㅎㅎ

 

 

이중섭,

태생에서는 부르주아 냄새가 난다. ㅋ

식민지, 전쟁, 분단 등으로 얼룩진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간통하면서 끈질기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고집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의 상징인 '소'를 그렸고, 소를 통해서 그를 표현하려고 한 것 같기도 했다.

암울한 현실을 자조하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고, 가난한 파란시절 가족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며 순진무구한 미를 표현하고, 전쟁 후에는 강렬한 의지와 자신감으로 힘찬 황소 작품을 쏟아 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표현에 충실한 '정직한 화공'이 되고자 했고,  전통미감이 발현된 '민족 화가'가 되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후 사기로 빚에 시달리고, 경제적 생할고 속에서 거식증과 함께 정신 질환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결국 쓸쓸한 애잔한 작품들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났다.

 

- 이중섭 1916-1956/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백년의 신화/ 리플렛 중에서... -

 

올해 이중섭 탄생 100주년, 작고 60주년

국립현대미술과 역사상 처음으로 이중섭 개인전 개최

 

시대에 따라 그려낸 다양한 그림과 다불어

편지글과 그림, 엽서글과 함께 그려진 작은 그림과 잡지에 실린 삽화는 한 사람의 소소한 삶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1만원으로 누릴 수 있는 무한한 문화적 욕구충족의 시간(?)이었구나.

 

냉방기가 어찌나 거세게 돌아갔던지

밖으로 나오니 아이가 "아~ 따듯하다~"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


 

 

덕수궁을 빠져나오면서 수문장 교대식도 구경하고,

아이가 그리도 애타게 먹고싶다는 뜨끈뜨끈한 메이플맛와플도 하나 집어들고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으로 향한다.

재무/회계, 건설/건축 쪽의 업무부서가 있는 청사다.

 

13층에 가면 전망좋은 까페가 있다고 아이 손을 잡고 들어섰는데,

나도 공무원이지만, 반바지를 입고 등학교 아이 손을 잡고 들어선 분위기가... 참~

내가 미안할 정도다.

너무 엄숙한걸 ㅋ

 

방문객마다 안내데스크에서 신분을 확인하고 지하철 자동매표 게이트 같은 곳을 지나야 한다.

분위기가 그러니 와이셔츠 입은 공무원에게 대뜸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기가 미안스럽기도 하고, 심각한 민원인들의 얼굴을 보니 어색한 상황이다.

와이셔츠 입은 공무원에게 13층 전망대 어떻게 가냐고 참 어렵게 물음을 던진다.

"저쪽 엘리베이터 타는 쪽으로 가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13층 전망대 가려고 하는데요"

"들어오세요~"

 

간발의 차이로 자리가 꽉 차 앉을 자리가 없다.

그래도 우선 시원한 아이스 음료 하나씩 입에 물고는 냉방기 목재 케이스 위에 아이를 걸터 앉히고 자리 나기를 기다린다.

시원한 음료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 것처럼,

시원하게 지금껏 우리가 돌아다녔던 도심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북악산(백악산)도 보이고 덕수궁 근처의 근대식 건물 몇 채가 더 눈에 들어온다.

 

 

새로지은 서울시청 본관과 옛 청사(현 서울도서관), 서울광장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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