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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공주대간&시산제

by 여.울.목 2018. 2. 11.

공주대간

경일아파트 뒤편-두리봉-우금티-주미산-금학생태공원 주차장

11km  |  3:20  |  3.2km/h



2018-02-10_08-17-34공주대간.gpx


보통 때보다 2시간은 여유 있는 산행인데도
이부자리 속에서는 언제나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지배하고 있다.

잠이야 새벽녘부터 깨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으려한다.

08:00산행이지만 그래도 준비를 한다고 채비하느라 꽤 시간을 잡아먹는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부산해진다.

딱 0ºC ,이 정도면 지금까지의 냉동실 같던 날씨에 비하면 한참 따듯한 날인데,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잿빛 하늘 때문인지 춥게만 느껴진다.

패딩점퍼 하나 더 걸치고 길을 나선다.

가는 길에 1번 무전기를 픽업한다.
들머리와 날머리가 달라 녀석도 고민을 했나보다.
걸어서 가기엔... 좀 그렇지?

언젠가 등산 관련 카페에 '공주대간'이라는 말을 썼더니
어떨 결에 내가 개나 소가 되고 만, 기억이 있다.
우리지역에서 그렇게 통용되고 있어서 한 말인데,
'대간'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가져다 붙인다고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더군.

사실 나 같아도 잘 모르는 중소도시의 둘레산에 대해서 그런 표현이 쓰였다면
그런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당사자가 되고 보니 무척이나 기분이 안 좋더군.
그런 감정이 며칠은 갔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감정이 있긴 있나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잘한 일은, 내가 거기에 댓글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서로 맘에 상처만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고,
내게는 글을 남길 때 한 번 더 읽어보고 입력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아무튼,
우리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산악인들임에도...
일부 회원들의 준비태세를 보아하니 실망스러울 정도다.
그들 역시 동네 뒷산만으로 생각을 했는지,
아님 원래 저렇게 가볍게 타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겠다.

사람들 먹인다고 초코바 조금과 혹시 모르니 물 몇 개씩 더 챙겨 넣고
비상약품과 이런저런 물품을 채우고면 배낭은 언제나 묵직하다.
나도 저렇게 그냥 가볍게 다니고 싶다는... 속 좁은 생각 같지만
생각을 할 수 있는 동물이기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자책할 필요까지 없겠지. ㅋ


애터미라는 회사가 있다.
정확하게 무슨 회사인지는 모르지만 사세를 크게 확장했는지
공주경찰서 뒤편의 구릉지에 연수원을 크게 짓고 있다.
덕분(?)에 경찰서에서 올라가는 가장 오리지널한 공주대간 들머리-날머리를 잃고 말았다.
그들의 땅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만... 더군다나 공사중이라 안전상의 문제라니 따라야지.
올해 12월(2018.12.31.)까지 공사가 이어질 것이니 경일아파트 뒤편을 이용하라고 등산로까지 자세히 표시해서 커다랗게 세워놓았더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하는 산행인데
그래서 시간도 넉넉한데
어제까지에 비하면 춥지도 않은데
이런,
내가 아침 이부자리에서 느끼는만큼 사람들도 같은가 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다.
시산제가 너무 썰렁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3번 무전기가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17분이나 늦게 출발한다.
인간들 기다릴 생각도 않고 먼저 다름질쳐 도망간다.
3번 무전기,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않고 느리적느리적 ㅎ


그 사이 거리가 이리도 벌어졌나?
그래도 제법 가파른 길이라 ㅎ, 금방 후미를 따라잡는다.

두리봉까지는 국사봉처럼 좀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가 부복을 하고 있고 있는 형상이다.
첫번째 봉우리에서 아예 터를 잡으려는 일행을 다독여 두리봉으로 끌어 올린다.

예전같으면 따듯한 햇살 맞으며 내 태어나 살고 있는 동네를 흐믓하게 바라볼텐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안개 때문인지 사방이 뿌옇게 시야를 가린다.

두리봉 정상 정자에 걸터 앉아 아예 두러 누을 태세 ㅋ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 선두그룹을 따라 잡아 보려한다.


팟캐스트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를 틀어 놓고
나 혼자 산행인듯 맘 편하게 길을 나선다.

감자기 들어온 그라데이션 풍경이 나를 잡아세운다.
그 깊이를 담아내지 못하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미울 따름이다.
멀리 남쪽으로 뻗은 공주대간길이 나를 유혹한다.



팟캐스트 음원을 들으며 평온함으로 길을 채워가는데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느낌

겨울이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숲의 색이 마치 살색 같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보이는 두리봉 일원은 육산다.
그래서 매끈한 알몸을 수줍지도 않은지 그대로 보준다.
그래서 (가끔) 겨울산행은 19금 산행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이 최소한 제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민낯도 아니고 속살 그대로다.


우금치

주변의 산이 그리 높지 않지만, 마치 토성을 쌓은듯 경사가 제법이다.
그래서 부여 쪽에서 웅진성으로 들어서려면 여기를 지나야 한다.
논산 쪽에서는 웅치를 거쳐야 멀리 돌아가지 않고 웅진성으로 시간을 아껴 갈 수 있다.
그래서 동학농민항쟁의 마지막 장이 된 것이다.
고갯길에 터널이 뚫렸지만 생태도로로 - 대간길이자 격전의 장은- 아직 이어져 있다.



우금치를 지나 또 부지런히 걸어 올라야 한다.
거의 쉼 없이 걷는다만 이 인간들이 보이지 않네 ㅎ
어지간히 속도를 내는가 보다.

생태공원 갈림길 그처 부근에 다다르자 조금씩 선두 그룹에서 내는 사람 소리가 들리 시작한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산불의 흔적은 있었다만,
이번 산행에서 만난 그으름의 현장은 그 전과 달리 고지쪽으로 더 올라가 광범위하게 나 있다.

하마터면 큰 불로 번질뻔 한 것 같다.
바닥의 상태로 봐서는 낙엽이 본격적으로 내려 앉기 전인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B팀과 갈라지는 코스 안내 표지를 붙이고 있는 1번 무전기를 만난다.
이 사진을 찍는 사이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휑~하니 도망간다. ㅋ 

녀석도 참

다시 팟캐스틀를 켜고 이젠 일부러 녀석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듣고 있는 파일을 다들어보기로 한다.


주미산휴양림이 들어서면서 못 보던 전망데크가 하나 들어섰다.
드디어 이 인간들을 여기서 따라 잡았다.
그저 산행은 '걷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 같다. 사진도 안 찍는다.

휴양단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잔가지를 조금만 쳐 내면 한 여름에도 시원한 풍경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오늘 코스의 최고봉! ㅋ 주미산이다.
전망데크에서 숨을 돌리려니 14년이나 앞선 선배님 일행을 뵙게 되었다.
수년 전에 내가 오전에 건강검진을 마치고 올라왔다 내려선 길인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한다.
그 땐 길이 있다 없다 해서 한참 해맸던 기억이 나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함께 와 봐야 겠다.


이제 철마산을 지나 대체로 내리막이다.
이 인간들이 내려가는데는 아주 선수다.
10km가 점점 다가와서 그런지 바깥쪽 무릎이 조금씩 칭얼대기 시작한다. ㅠㅠ

공주대간 구간 중 멋진 포인트 중 하나다.
지도에 봉우리 이름도 없지만, 육산 중에 유독 일부분 골산인지라 좋은 풍광을 준다.
멀리 봉화대가 보인다.
다른 쪽은 찍어도 별로다. 이 놈의 뿌연 박무 땜시.



가격으로 치자면 수억원 이상을 호가할 멋진 소나무
그 자리에 있기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것지.
소나무 뒤로 날이 좋았다면 계룡산 천황봉까지 몽땅 보이는데...



생태공원까지는 채 15분도 걸리지 않는다.
호수가 은반이 되었다.




공사가 완료되면 우리 막내가 좋아라 하겠다.



이젠 시산제와 뒤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