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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다시 시작하는 산행(신원사-천단-쌀개봉-천왕봉-동학사)_2012.04.22.

by 여.울.목 2014. 9. 1.

다시 시작하는 산행(신원사-천단-쌀개봉-천왕봉-동학사)
2012.04.22.

 

 

 

 

1주일 이상 앓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비가 오는데도 배낭을 챙기는 나를 응원해주는 아내.

혹시 추울지 몰라 머프를 뒤집어쓰는 아빠가 이상하다며 힘내라는 뜨거운 뽀뽀를 해 주는 아이.

 

신원사 천황봉(천단) 쌀개봉 천왕봉 동학사

 

움직인 거리는 총 8.1 km

04:07이 소요되었다.

평균 속도는 2km/h이고, 움직이는데 속도는 2.9km/h

최고 높이는 835m

 

 

신원사

정류장엔 나 말고도 이 날씨에 등산 가려는 사람이 3명이나 있다. 9:20분 발 신원사로 향하는 버스가 들어온다. 다들 갑사나 동하사로 가는지 혼자 올라탄다.

신원사 주차장은 썰렁하다. 날씨가 정말 이러고 말건가?

기상청 홈피엔 괜찮은 걸로 나왔는데?

 

IMGP6092.JPG

  

 < 마냥 평온해 보이는 산... 비가 오지 않았는데, >

2000

2000원을 아끼려고? 신원사로 들어가지 않고, 나란히 나 있는 오른 쪽 옆길로 향한다. 제법 사람들의 발길에 길들여져 있다.

 

초반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의욕만 앞서다보면 항상 체력이 고갈되기 십상이다. 좀 차분하게 다그친다.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매던 곳이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다.

 

감기

심하게 감기를 앓고 나니 두 다리에 힘이 쪽 빠져 있다. 다시 두 다리 근육에 신선한 피가 돌기 위해서는 자꾸 움직여야 한다.

오른쪽 발목 인대가 두 번이나 늘어난 적이 있어, 깁스를 해야만 했다. 한 번은 군대에서 농구하다... 아버지 환갑 때문에 깁스를 일찍 풀어야 했고

두 번째는 배구를 하다가... 결혼식 때문에 깁스를 일찍 풀어야 했기에 내 오른쪽 발목은 인조인간의 그것 같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렇게 깁스를 풀고 걸음마를 배웠던 때가 생각나네. 오늘처럼 힘차게 치고 나가지는 못해도 감기로 풀려버린 내 두 다리에 다시 힘을 불어 넣는다.

 

오르막

대단한 오르막이다. 사실 빨랑 돌고 내려올 셈으로 가장 단거리를 찾다보니, 계속 오르막이되 가파름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숲이 주는 에너지에 한껏 기가 살아 머리봉이 보이는 중턱까지는 정말 몸도 맘도 평온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맞을만한 비였다.

하지만 조금씩 바람이 보탬을 시작하더니 금새 걷힐 것 같았던 안개는 점점 두꺼워지고, 이건 안개가 아니고 비구름 아닐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나마 좁은 오르막길은 양 옆으로 튼실한 철쭉이 길을 비키지 않아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다.

그래도 맞을만한 비였다.

 

IMGP6093.JPG

 < 숲이다. 기운이 다된 나무는 쓰러져 있고, 기운찬 나무는 다시 연두빛 새 잎을 티운다 >  

 

견디기 어려운 비였다.

하지만, 천황봉 천단에 오르려 봉우리를 올랐는데, 송신탑을 강타하는 세찬 바람소리가 마치 나보고 때도 아닌데 왜 여기에 올라왔냐는 계룡산신의 꾸지람 같기도 하고...

너무 그 바람과 비가 강하고 추워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빨리 사진을 찍고 쌀개봉 쪽으로 가는데, 이건 비가 아니라 눈 같다. 춥다.

IMGP6096.JPG

<천단, 여긴 아직도 겨울이다. 너무 추워~ >

 

  

쌀개봉 정상 위는 위험해서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을 지경이고, 서 있어도 보이는 건 안개 뿐이다.

 

다행히 통천문에서 비를 피해가면서 라면과 김밥에 조금 떠온 위스키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그런데 왜 이리 춥냐?

지금까지는 정상이라서 그렇겠지 느껴졌는데, 움직임이 없이 바위틈에서 밥을 먹다보니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더 껴 입을 옷도 없다.

빨리 내려가는 게 상책이다.

견디기 어려운 비다.

점점 비가 심해진다. 비바람이 산과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해서 마치 커다란 계곡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비와 바람이 심하니 점점 자켓을 파고들어 빗물이 스며드는 것 같다. 바지도 그 기능을 다해 무거워진다. 발수기능이 강한 등산화도 발목사이로 조금씩 파고드는 빗물에 점점 젖어간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능선에 가만히 서 있다가 날아갈 것 같다.

가도 가도 중간 하산길은 보이지 않네...

그래도 이 빗속에도 멋진 봄의 향연은 나를 미소짓게 한다.

날씨만 좋았어도 암벽마다 걸터 앉아 이 계절을 느겼을 터인데...

지금은 빨리 도망갈 생각 뿐이다.

 

IMGP6097.JPG

  

 < 통천문, 이곳을 지나 쌀개봉은 두 봉우리 중 다른 한 곳으로 오른다. 여기서 비를 피해서 점심끼니를 해결했다>

 

GPS

그래도 다행이다.

핸드폰과 블루트스로 연결된 GPS가 주는 정보로 그냥 지나칠 뻔한 하산길을 되짚어 와 찾을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하산길에 접어들자 바람이 잠잠해진다.

평온...

그냥 내리는 비는 맞을만 하다구.

 

드디어 아스팔트길이 보인다.

 

집에 가는 게 걱정이다. 차 안 내내 점점 잃어가는 체온 때문에 다시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낮잠을 자고 나니 간만의 산행 때문에 허벅지가 불편하다.

재활을 위한 산행 치고는 너무나,

많이 힘든 산행이었다. 빨리 그 능선의 비바람에서 도망치려 어지간히 다름질 치다보니 발목에 힘이 빠져 부상을 입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행이다 오른쪽 무릎을 바위에 부딪쳐 시퍼런거 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