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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무성산(613m)-홍길동 이야기를 그려보며 걷자꾸나

by 여.울.목 2020. 11. 21.

2020.11.21.
한천마을회관-영천고개-무성산(
613.9m)-전망대-임도-한천마을회관 원점 회귀
12.86km (03:57)


2020.11.21.무성산_002.gpx
0.47MB

 

한천리(韓川里)

근교 산행이 일상이 된 지 한참이다.
코로나19가 만든 최근 산행 경향이다.
김장 준비에 한창인데 산행에 긍정적인 아내가 고맙구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선택한 무성산, 한자표기는 武盛山으로 아직까지 여기저기 남아있더만,
정상 표지석과 안내문에는 武城山으로 스티커를 붙여 수정했다.
공주에 살면서도 무성산을 찾아갈 때마다 찾아가는데 헷갈린다.
그만큼 위치가 애매하다는 것이지.
산 정상에 서면 우성-정안과 사곡, 조금 멀게는 유구지역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산줄기인데
찾아 들어갈 때면 우성면 내산리를 통해 꾸역꾸역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정감록에 전쟁 같은 큰 난리가 나도 평온하다는 십승지 중 한 곳에 해당한다고 허름한 한천마을회관 안내판에 소개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 유구지역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100여 세대를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한다.

내가 오늘 걸은 구간 중 영천고개가 있어 궁금함에 지명을 찾아보게 되었다.
산행을 시작하는 한천(韓川)이라는 명칭부터 찾아 들어갔지. 2014년, 그러니까 왜인들이 행정구역을 바꾸면서 韓山리와 永川리, 구화리 일부를 하나로 합치면서 한천(韓川)리라고 했다.
아직도 상영천, 중영천과 같은 마을 이름이 남아 있다. 그때 봉합된 지명의 흔적이었다.
아무튼 영천이라는 이름이 역사적으로 더 오래됐고 유명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충적평야라는 내산리 들을 지나 언덕에 올라서면, 그 들에 물 대는 한천저수지가 보인다.
주변에 공장이나 축사가 거의 없어 청정한 호수라고 하네.
저수지 뚝방 입구에 세워진 비석에 따르면, - 1956년에 가뭄을 이겨내고자 공사를 시작했는데부실공사로 말이 많았다. 여기저기 진정을 하다 결국 청와대까지 올라가서야 제대로 공사가 이루어졌다는… 좀 희한한 송덕비(?)였다. 1978년 9월에 비석이 세워진 걸 보니 그 때 완공 되었나보다. 그 후로 2014.12. 뚝의 높이를 높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개발시대의 이야기.

 

몇 년 만에 한천리로 들어서는데 그 사이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회관 앞 공터 구석에 자리를 잡아 주차를 한다.
웬만하면 조용한 마을인데 김장을 하는 집이 많아 사람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배낭을 메고 있는 내가 괜히 미안스럽다.

 

영천고개

영천고개까지는 요령 있게 로커스맵스를 켜고 거미줄 같은 동네길을 골라 들어간다.
1km
넘게 걷자 갑자기 숲과 마주한다. 갑자기 시작되는 짧은 오르막. 쎄다~
그 오르막을 올라서 만난 능선 고개가 영천고개다.

지도로 볼 때 느껴졌던 선형의 부드러움에 속고 말았다. 
거칠다. 
그래도 마티~수정봉에 비하면 한참 양반이다.
능선 반대쪽 소방방재청 연수원에서 산악자전거 대회를 여느라 무성지맥 내내 이정표를 걸어 놓았다.
등산로가 “V”자로 깊게 패여 있다. 퇴적층이 파여 딱딱하고 까만 맨땅이 보인다. 처음엔 비가 많이 와서 물길이 생겼나 싶었는데 산악자전거 대회 이정표를 따라 내내 그 모양이다. 자전거 때문이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능선이 만만치 않다. 
조금씩 예전에 비슷한 코스를 걸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10
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그땐 영천고개를 찾아가다 동네에서 길을 잘못들어 헤맸었지.

https://yyh911.tistory.com/9

 

공주 둘레산 - 무성산_2009.04.26.

무성산(武城山) 613M 누군가 슬리퍼를 신고 올랐다는 산이다. 아마 홍길동 아닐까? 10년이 훨씬 지나 오랜 친구와 함께 산행을 계획했는데 단비를 핑계로 또 다음 주로 미루고 말았다. 그냥 올라도

yyh911.tistory.com

하늘 참 맑다. 날개짓 몇 번 않고 크게 원을 그리며 먹이를 찾는 솔개가 파란 하늘의 주인이다.
몇 년 전보다 숲이 우거져 풍경이 그다지 시원스럽지 않다.

 

홍길동산성

덜컥 문을 여니 보인다. 무성산성 성곽이다.

무성산 인근에서 만났던 여러 무리의 사람들.
미루어 짐작컨데 정상에 꾀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더니
너무나 조용하다.

자연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포곡식 산성인데, 포곡식 치고는 규모가 작다.
둘레가 530m정도인 석성이다. 
문 터 
2곳, 건물 터 4곳, 저수시설 1곳, 방어시설인 치성 흔적이 5곳. 
서쪽은 높고 동쪽은 낮은데, 서쪽 높은 곳 성벽이 3~4m정도라고 한다.
동쪽 성벽을 따라 한바퀴 돌아 보려는데 발목 다치기 십상이고 금세 성벽 흔적이 희미해진다. 
포기!

이 성을 홍길동 산성이라고 한다. 홍길동이 이 지역을 근거지로 의적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 이전에 성을 쌓는 것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홍길동은 쇠나막신을 신고 길들여지지 않은 송아지를 데리고 한양에 다녀오기로 하고, 
누이는 여기에 성을 쌓는 겨루기를 한다.
누이가 마지막 돌을 올려놓으면 될 무렵, 
아들의 패배를 걱정한 어머니가 팥죽을 끓여 누이게어 준다.
뜨거운 팥죽을 식혀먹는 사이 홀길동이 도착해서 누이는 내기에 진다.
자결 한다.
성 쌓은 건 홍길동이 아닌데 홍길동이 길이길이 사용했다.

"오누이 힘겨루기"

얼마전 예산 봉수산 임존산성에서도 보았던 이야기 유형이다. 
이런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많이 널려 있다고 한다.
주로 성을 만든 자(홍길동 누이)와 성을 차지한 자(홍길동)가 다른 경우라고 한다.
아마도 무성산성도 성을 쌓은 세력이 토착민(어머니)과 더 친숙한 세력에게 성을 빼앗겼을 것이다.

이 산성에 대한 역사 기록은 없나 보다. 
발굴과정에서 문자가 있는 토기나 기와 조각도 발굴되지 않았기에 축성 연대가 불분명하다.
예부터 지리적,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라고 한다. 그럼 왜?
이러 저런 글을 읽고 추측 가능한 것은,
숨어들어 활동하기 딱 좋은 여건이라는 점에서 
농성전을 펴야 하는 세력의 근거지로 사용하기에 적정한 곳이다는 의견을 내본다.

 

조금은 지루한 임도

무성산 정상을 이어 난 능선길을 어느정도 걷다가 내려서야 하는데,
무성산 포토존이 있다는 이정표의 유혹에 평정저수지 쪽으로 걷기로 한다.
봉화대 터를 지나 조금 굴곡이 있는 능선을 지나 포토존에 올라선다.
평정저수지를 너머 길다란 정안과 멀리 세종시가지까지 보인다.
기대를 많이 했나? 그냥 그렇네. 무성산 정상 근처 바위에서의 전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보니 감흥은 떨어진다.
자꾸 촐싹대는 바람이 차다. 때문에 김밥 한 줄 먹기에 적절하지 않은 장소다. 
능선 내내 그렇다.

거칠게 내려와 만난 임도가 오늘 걸은 거리의 절반 정도다.
지루한듯 크게 오르거나 내리는 길이 아니다.
산행으로 지친 근육을 천천히 풀어낼 수 있어 좋았다.

새봄이 오면 차를 몰고 한참을 천천히 달려보고 싶다.
한적한 숲길이다.

토요일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된다.
산행후기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눈이 자꾸 시리다. 그만하자.

봉화대 흔적, 봉화대하고 하기엔 조망이 그리 좋지 않다. 나무가 많이 자라서 그런가보다.
포토존... 전망대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보다. ㅋ
임도를 거다 만난 특이한 숲 - 느린목이 근처 골짜기 -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다.
한천리 마을회관으로 원점회귀하는 길, 계단식 과수원. 축성에 쓰이는 돌이 흔하다.
700년이나 된 솔밭이라고 한다. 걷다보니 새롭게 보인다. 봄이 오면 가족과 함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