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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장성 축령산 - 불쾌한 코스 ㅠㅠ

by 여.울.목 2023. 8. 13.

추암주차장-축령산-금곡영화마을-모암주차장
2023.08.12.(토)
15km
4:38
3.2km/H

 

Climbing_2023-08-12_장성_축령산.gpx
1.44MB

 


오랜만이다. 산악회.
금요일 저녁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바람에 새벽부터 잠깬다.
편치 않은 맘으로 감정이 죽 끓듯 한데, 열대야로 몇 주째 고생이다.
오늘은 산행 일정까지 한몫한다.
각설하고, 어영부영 시간에 맞춰 비를 피해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타러 가는 길 내리던 비는 장성 축령산에 도착하니 개어 있다.

 

추암주차장이 들머리다.
생각보다 좁고 비탈진 곳이었다.
오늘 난 남들 말하는 ‘힐링’보다  ‘산행’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오르막 대부분 데크로 - 돈을 산자락마다 깔아 놓았군.
일행이 만든 소음을 뒤로하고 나름 산행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편백림 조림공적비 공터에서 망설임 없이 정상으로 튕겨 오른다.

 

초입, 데크 따라 수월하게 걷는다.
시원하게 뻗은 편백나무가 주는 구도에 무더위에도 흐뭇한 웃음이 피어난다.
평평한 테크길은 계단으로, 난간으로 바뀌더니 가파름이 더해지니 이내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정상 기준 7~8부까지는 오른쪽으로 촘촘하게 편백이 심겨 있다.
숲길은 며칠 전 태풍으로 부러진 자잘한 가지로 지저분하다.
나무 심기도 지칠 무렵 숲의 천이 과정을 거쳐 참나무가 잠식한 곳을 꾸역꾸역 지나니 정상에 다다른다.
온통 땀으로 범벅. 잠시 열 식히고 식염포도당으로 전해질 균형을 맞춘다.

 

이제부터는 평이한 능선을 타면 된다?
능선으로 접어드는 순간 무릎 넘는 풀숲에 뜨악 소리를 내게 하더니,
산행 내내 조망 포인트 하나 선사하지 않는다.
사람 냄새 맡아본적 없는지 세차게 달려드는 벌레와 나일론 같이 질긴 거미줄이 심기를 거스른다.
문수사 뒤편 천연기념물 단풍나무숲은 경고 표지판이 없었다면 근처에 있는지 눈치채지도 못했을 거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산행… 무래봉에서 끝내고 금곡안내소로 내려섰어야 했다.
무래봉을 지나자 불쾌함은 더하다.
거미줄은 더 질기고 널따랗다. 길은 멧돼지 놀이터다. 그 놀이터에 웬 변을 여기저기 질러대는지...
금곡 무렵엔  멧돼지 접근을 막으려 편백과의 경계를 따라 그물을 쳐 놓았다.
‘트레킹’이란 단어에 꽂혀 입은 반바지 차림에 무릎은 풀독으로 벌겋게 달아 오른다.
난생 처음 날 위협하는 야생에 나온 아이처럼 얼굴 찡그리고 신경질적이다.
이런 생태환경에 놓여지게 한 남 탓이 앞선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숲을 벗어났다.
진드기 경고 문구 보매 - 길가 나무에 매달린 해충기피제를 정신없이 뿌려댄다.

 

그 난리 때문인지 뙤약볕 내리는 길을 걸어 금곡으로 향하는 길이 평화롭더라.

금곡영화마을(?)이라기엔 좀 애매, 애매한 만큼 헤매고는 원점으로 가고자 임도를 찾아 걷는다.

임도
금곡마을에서 금곡안내소까지 잘 정비되지 않은 탓에 숲이 지저분한 편이다.
금곡안내소부터 원점까지 같은 숲인데 산듯하다.
사람도 많더라.

지친 걸음에 비까지 내려 비옷을 꺼내려는데 전화가 온다.
일행 – 산림욕을 마치고 일찍 귀가하자고 한다. 우이 C.
다들 내가 온 길을 따라온 게 아니다. 혼자 쇼를 한 셈이네.

 

금곡안내소 맞은편 평상에 걸터앉아 씩씩거리던 나를 달래고, 점심 끼니를 떼운다.

와구작와구작 달고 신 매실 짱아찌를 씹다보니…
이 상황이 근래 내 모습과 거의 닮은 것 같더라.
나름 원칙을 쫓아 열심히 왔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
물론 과정엔 내 존심이나 잘못된 판단도 가미되어 있다. 그래도 전반적으론…내가 맞다!?
뭔가 효율적이지 못하다. 내 마음 말이다.
뭔가 내려놓을 건 내려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며 쿵쾅거리던 심장도 잠잠해지고 땀구멍이 안정된다.
숲은 더 고요해진다.

짧은 반성 덕에 몸과 맘은 상큼한 편백숲길처럼 평온스럽다.
한동안 쇄석 자갈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아~ 좋다… 

일정 조정으로 이동한다는 산악회 문자.
발걸음을 동동거리기 시작한다.
여유 있었을 산보는 허둥지둥. 지나는 이정표마다 정신없이 바라보며 거리를 잰다.
았! 실수를 하고 말았다.
산행 기점인 기념비 공터까지 다름질쳐 잘 왔다만,
이정표의 “모암”주차장을 “추암”주차장으로 잘못 읽고는 계속 계곡으로 내려선다.
아예 추암을 모암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게다.
길을 잘못들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되돌아가지 힘든 상태였다. 

모암주차장으로 와 달라고 전화한다.
길을 잘못들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는데,
이 길로 내려오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고 우겨댄다.
팽계는 댈수 있지만 분명 이정표를 잘못 본 내 잘못이다.

고개숙여 사과도 하지 않고 말았다.
뭘까? 난.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는데,
내 기분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더위 탓에 합리적인 건 둘째치고 기본적으로 내 생각의 저울질조차 제대로 못하고 말았다.

생각은 많이 하는데 생각이 정리되어 들어 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