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후니의 책가방

농담

by 여.울.목 2023. 12. 23.

농담
1쇄 1999/06/25
70쇄 2023/07/20
밀란 쿤데라
방미경
㈜민음사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농담이다.

전지적인지 관찰자인지 모르겠지만, 1인칭 시점이다.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코스트카 - 등장인물이다. 등장인물로 메겨진(소제목) 파트는 그 인물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독특한 구성이다.
파트 별 이야기는 (현재→)과거→현재로 흘러 루드비크에게서 접점을 이룬다.
각각의 시각은 동일 대상에 대한 다른 생각으로 풀어낸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보통 소설을 각색해 시나리오를 만들면 이 소설의 구조처럼 입체적으로 만들텐데,
소설 구조 자체가 평이하지 않다. 상황이나 관점, 생각의 반전 또한 감칠맛 난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하고 끝을 맺는다.
 
루드비크
농담이다. 주인공 루드비크가 여자 친구 마르케타의 마음을 얻으려 주의 끌고파 농담으로 엽서에 실어 보낸다.
이야기는 체코, ‘1948년 2월’ 이후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언뜻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이다. 이념 갈등을 겪었던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농담으로 한 말이 국가보안법에 어긋난 것이라면 괜찮은 비유일까?
당시 주인공의 나라 체코는 우리나라와 상반되게 사회주의 체제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트로츠키”는 민주적 방식으로의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편에서 레닌과 볼세비키에 반대하는 쪽이었다. ‘트로츠키즘’이란 유사 검색어가 뜬다.
아무튼, 그냥 농담이라고 한다. 전반적 맥락에서 농담인데 조각내 그 부분만 보면 당시 권력층 결집을 해칠만한 내용이었나보다.
그가 쓴 엽서, 아니 사생활은 그가 속한 체제에 의해 까발려진다.
그 말에 대한 자아비판을 강요받는다. 그냥 농담인데. 다들 알면서... 같이 웃어주던 – 공산당원들. 주류였던 루드비크는 당 조직에서 대학에서 철저하게 쫓겨난다. 그가 믿은 세상이 배신했다.
반체제 인사 루비드크는 군입대를 미룰 수 없다. 군에선 그에게 총을 줄 수 없다. 그는 탄광 노동자로 전락한다.
신분 상승 기대를 품고 새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려 한다. 우연히 이 체제의 진심을 알고 – 포기하고 - 수용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가끔 나오는 외출.
그 인생 전반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심인 사랑 – 루치에를 만난다.
순수한 둘의 사랑은 깊어진다. 외출 통제로 보고픔이 극에 달해 수용소를 몰래 빠져나와 여느 연인처럼 농익은 사랑을 육체적으로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루치에, 마음과 달리 몸은 저항한다.
탈영죄로 형벌을 받고 몇 년을 더 수용소에서 지낸다. 그 사이 홀어머니도 돌아가신다.
루드비크. 철저하게 배신감을 감추고 어렵게 신분을 회복한다. 그러다 그녀는 과거가 된고 만다.
시간이 흘러 다시 성공한 주인공 앞에 헬레나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그를 배신한 사람들 중 대표자 – 대학 학생 위원장 파벨-의 배우자다. 루비드크는 그녀를 유혹해 고작 ‘농담’ 때문에 그를 파멸로 이끈 파벨에게 복수하려 한다.
복수(?)를 위한 불륜의 장소 - 다시 오고 싶지 않던 고향에서 펼쳐진다.
고향 이발소에서 면도사로 일하는 루치에를 우연히 만난다. 그토록 사랑했고 사랑하는 그녀다.
헤레나를 능멸했다고 파벨을 아니 제마네크에게 복수했다고 생각한 그. 하지만 이미 파경에 이른 파벨의 모습 – 대학교수인 그의 제자 여학생을 새 애인으로 소개한다. - 은 그를 혼란스럽게 한다. 파벨은 세상이 변했다고 그에게 충고한다.
헬레나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죽음을 선택한 그녀 - 진통제 아닌 변비약 과다복용으로 웃지 못할 고통을 겪어야 한다. 웃프다.

헬레나의 시각에서 루드비크의 혼란에 대한 복선을 깐다. 헌데 남편을 파벨(이름)이라고 소개한다. 姓인지 이름인지... 헷갈린다. 소설의 후반부부터는 제마네크(姓)로 표현한다. 그러니까 姓/이름을 나누어 불러 독자를 재밌는 혼란에 빠트린다. 
그녀는 루드비크를 진심으로 사랑하려 했는데 복수에 이용당한 셈인가?
 
야로슬라프의 시각에서, 그는 루드비크의 고향친구다. 루드비크의 시각에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성장 과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보충? 보충에 그치지 않고 체코 남부지방 민속예술가로 가업을 이어가려는 - 헛된 노력 - 과정에서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변해버린 친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향과 가족을 지키며...
그리고 체코 남부지방 전통문화를 정교하게 소개하는 역할도 한다.
배신당한 친구를 측은해하던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없던 그, 가족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고 인생을 포기할 즈음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한 루드비크를 만나 화해 한다.
 
코스트카의 시각에서, 신을 믿는 그. 새로운 관점의 종교를 주장한 그. 공산당(무신론)이 권력을 잡자 종교를 가진 그를 내치려 한다. 루드비크가 그를 도와 비교적 온건한 탄압을 받고 의학자로 루드비크의 고향에서 일하고 있다. 배신당해 복수를 꿈꾸는 자와 달리 도망(?)을 선택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시골 농장에 쫓겨와 일하다 떠돌던 루치에를 만난다. 그는 그녀의 영혼을 치료한다. 치유 과정에서 성장하며 겪은 성폭력과 학대 이력을 알게 된다.
루드비크의 열망과 달리 그녀는 코스트카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연다. 그런데 그는 공산당의 박해를 핑계로 - 그녀를 피해 - 도망(?)한다. 도피한 곳이 루드비크의 고향 모라비아다.
그녀는 루드비크가 아닌 코스트카를 연모해 모라비아에 온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만 영혼의 안식처는 그다. 그러다 그가 소개한 손님을 이발소에서 만난다. 루드비크.
그는 루드비크에게 그녀 이야기를 해준다. 모두. 이제 저항의 이유를 알겠다.
하느님께 속한 것은 동시에 악마에게도 속할 수 있다. 어쩜 루드비크 너도 그녀에게 악마였을 수 있다.
영혼과 육체 간의 어떤 은밀하고 집요한 전쟁 417

 
구드비크를 두고 보는 다른 관점,
각각의 시각이 신선하다.

그 신선한 전개는 독립적이지만 루드비크의 삶을 충실하게 보충 설명하고 있다.
배신, 복수, 혼란, 깨달음. 사실 깨달음에 대한 답은 없다.
무언가 더 설명했으면 좋겠는데, 그 시점에서 친구 야로슬라프가 쓰러진다.
함께 연주하는 자리에서 심정지로 쓰러진다. 그 급박한 현실을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맺는다.
이제 이 이야기의 해석은 나의 몫이다.
농담으로 시작한 그의 비극은 복수로 이어지지만, 촌극으로 그려지고 만다.
이념으로 치자면 우리나라와 상반된 상황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으로 치자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다.
소설은 이념논쟁을 하려는데 흔한 애정행각으로,
외설스러울 것 같은데
변하는 세상과 변치 않는 무엇 간의 사이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야 다시 채울 수 있는 노자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잘 모르겠지만 재밌게 잘 읽었다.
잘 읽은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는데 한 주 내내 내 현실도 녹록히 않아 줄거리 위주로 늘어놓고 만다.
 
...그대로의 나 자신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벌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53
시간이 가면서 안개는 천처히 걷혔 갔고, 그와 함께 그런 비인격화의 어스름 속에서도 사람들의 인간적인 요소가 조금씩 눈에 띄게 되었다.  85
정원 한 모퉁이 수양버들은 이 풍경 속에서 길을 잃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래서 이 나무의 자리가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110
...잃어버린 운명에 대해 내가 속으로 흘리는 눈무은 마를 수가 없었다.  122
그 이해는 많은 경험이나 지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어떤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능력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다만 그녀가 내 말을 귀기울여 들으며 그대로 다 받아들여 주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125
그들을 그 시대 그 강당에 옮겨 놓고 그들이 손을 들것인가 자문해 보게 된다.  131
나는 내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상에 가까웠으며, ...  201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은 적이라니라 친구이므로.  268
점점 양피지에 쓰인 어떤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이 되어 조그만 그속 상자에 숨겨져 내 인생의 저 깊은 곳에 높였다.  275
회의적합리주의  371
하느님께 속한 모든 것은 동시에 악마에게도 속할 수 있다.  389
그 어떤 해위도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오로지 어떤 행위가 어떤 질서 속에서 놓여 있는냐 하는 것만이 그 행위를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든다. ... 질서와 조화를 이룰 때 ...  390
고스트카의 독백~  400쪽 언저리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음성을 가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렇게 포착한 목소리가 실은 나 자신의 비겁함에서 나온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407
그 공허의 무거운 가벼움을 느꼈다.  415
나의 패배를 알리는 전보가 십오 년 동안이나 나를 쫓아다닌 끝에 내게 도착한 것이다.  416
가슴 저미는 초람함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질 않았다.  429
옛 전설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전설일 뿐이었던 것이다.  441
화해한다면 나의 내적 균형이 일시에 깨져 버리리라는 것을 ... 나는 그를 반드시 증오해야만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452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467
이 사건 전체를, 이 고약한 농담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  470
내 인생의 전부가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생겨났던 것인데?
나는 실수로 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478
아주 오랜 메시지와 새로운 메시지들이 서로 겹겹이 겹치고 쌓여가면서 무슨 내용인지 파악조차...  487
그 고독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최후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분부시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517
우리 둘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를 비껴갈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삶은 둘 다 모두 유린의 역사라는 점에서,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나 결혼한 부부와 같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아무 죄도 없는 결백한 것들이었다.  519

'후니의 책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코의 진자 상/중/하  (3) 2024.03.16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4) 2024.02.25
등산이 내 몸을 망친다 X2  (1) 2023.11.26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  (2) 2023.11.01
3설국(雪國)  (1) 202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