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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대중교통] 공주 둘레산 "가마봉-수정암-마티-국사봉-매봉-청벽산-청벽"_2009.11.21.

by 여.울.목 2014. 8. 29.

* 2009/11/21 10:00~14:45(4:30)

* 대전교육연수원-가마봉(꼬침봉)-수정암-말재(마티)-국사봉-매봉-청벽산-청벽나루

  17.5km

* 좀 추운날씨였지만 하늘이 정말 파랬다. 등산하기 딱 좋은 초겨울 날씨였다.

<지도로 보기(위) 사진으로 보기(아래)

긍정적인 스트레스

잠이 깨긴 깼다. 오랜만에 주말을 느끼고 싶다. 늦잠으로, 이불 속에서 뒹굴뒹굴.

하지만 나와 약속한 ‘산행’이 자꾸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가자고 하는 놈과 그냥 쉬자고 하는 놈이 서로 싸운다. 이런 게 바로 긍정적인 스트레스 아닌가?

9시30분 버스

꾸역꾸역 밥알을 입안에 집어넣는다. 밥알보다는 보리쌀 씹는 맛에 오랫동안 꼭꼭 씹어본다. 시계를 보니 또 9시 30분 버스를 타야겠구나. 집사람이 이미 가방에 챙겨 넣을 컵라면과 도시락, 보온병을 나란히 세워놓았다. 스틱을 챙기느라 또 시간을 허비한다.

문을 나서는 내게 집사람이 “제발 길로만 다니세요!” 한다. “알았어-”

항상 이 모양이다. 헐레벌떡 승강기도 타지 못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와 자전거 패달을 밟는다. 내리막인 것이 정말 다행이다. 그 만만치 않은 내리막에 자전거 기어를 최대한 높이고 구르다보니 손도 얼굴도 시리다.

자전거를 대충 묶어 두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5번 버스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추운 날씨라 그런지 버스 안에 등산객은 나 하나뿐이다.

마티터널을 지나자마자 내렸다. 악~ 이 악취 출근길 아침마다 역겹던 그 악취, 아~ 근데 버스가 한 5~600m를 더 가서 또 선다. LG패션 앞에서 말이다. 오늘도 또 헤매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저기 대전교육연수원 뒤로 가마봉이다.>

10:00 대전교육연수원

지난번 가마봉은 하신리 마을에서 시작했다. 그 더운 날씨에 길을 찾느라 진땀을 빼느라 온 몸에 힘이 쭉 빠진 경험이 있는 터라 이번엔 대전교육연수원길로 올라가기로 했다. 여긴 수련원이 함께 있네 그려. 수련부 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 정말 멋진 향나무가 양쪽에 늘어 서 있다.

수련원에서 길을 찾느라 좀 헸다. 왠지 좀 불안하다.

<수련원 쪽으로 가는 길이다. 참 좋다.>

10:40  2.3km ‘가마봉냐 꼬침봉이냐?’ 소주 한 잔 생각난다.

10:20 드디어 가마봉을 알리는 이정표를 찾았다. 100m 오르니 지난 초여름 산행길에서 그리도 고생하면서 올랐던 그 갈림길을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아니 반갑다고?

사람은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 웬만하면 다 긍정적으로, 자기한테 유리하게만 기억하려고 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그렇게도 힘들어 했건만 ‘추억’이라는 단어로 내 머리 속에 포장되어 새겨져 있으니 말이다.

산행길에 접어드니 밤새 눈이 살짝 내려 살포시 덥혀있다. 나뭇잎과 눈, 정말 미끄러져 다치기 안성맞춤이다. 다행히도 스틱을 챙긴 덕에 몇 번 고비를 넘긴다. 암튼 꽤나 경사도가 심한 길을 300m정도 오르니 경치 죽인다. 살맛난다. 이 맛에 산에 오르는 거 아냐? 남쪽으로 계룡산 주능선이, 동쪽으로는 갑하산 - 문정봉 - 우산봉에 이르는 능선이, 그리고 서쪽과 북쪽으로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말재(마티)-국사봉 - 매봉 - 청벽산이 어우러져 있다.

소주 한 잔 생각난다. 캬~

<삼각대를 놓고 와서 혼자 원맨쇼 했다.>

소주 대신 맹물 한 잔 마셨다. 요 몇 주 정말 몸이 약해져서 그런지 술 때문인지 컨디션이 정말 꽝이었다. 배낭에 술을 챙기기 좀 그랬는데, 정말 후회된다. 이런 경치를 보면서 맹물만 들이키다니...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실제 가 보면 더 멋진데 내 솜씨가 없다.>

11:20 4km 그 갈림길

가마봉 정산을 지나 한 100m정도 능선 아닌 능선을 타고 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이다. 나뭇잎 위에 살짝 내린 눈 때문에 정말 위험했다. 다행히도 스틱을 앞발 삼아 네 발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빼곡한 나무 때문에 한 여름에 습하게 느껴졌던 곳들도 이제 낙엽을 다 떨어내고 나니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따듯한 햇살이 가득 밀려온다.

그 갈림길이다. 반바지를 입었기에 아니 솔직히 길 잃고 너무 헤맨 나머지 힘이 빠져 더 이상 앞으로 가기 힘들어 발길을 오른쪽으로 돌린 곳이다.

힘차게 발길을 내디뎠다.

11:40 5km 상신리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한 1km를 숨차게 오르니 아래로 상신리가 보인다. 계룡산 관음봉-삼불봉을 거친 그것이 상신리를 감아 돌아 마티를 타고 국사봉과 청벽산을 지나 금강에 발을 담근다.

11:50 6.2km 암자

너무 조용한 암자다. 너무 부지런한 것 같다. 아침부터 비질을 열심히 했는지 암자로 들어서는 길부터 경내까지 낙엽 한 잎 보이지 않는다.

사실 암자를 들리지 않고 그냥 직진했다면 훨 빨리 지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오늘도 헤매는 날인가 보다.

수정암 경내를 빙 돌아 내 육감대로 산길을 따라가니 잘 써 놓은 세 개의 무덤이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길은 사라져 버렸다. 다시 되돌아가는 수밖에...

12:20 8.5km 말도 쉬어간다는 고개

다시 찾은 길은 사륜구동 자동차가 거뜬히 지날 길이다. 암자를 오가기 위해 닦아 놓은 길 같다. 널찍이도 잘 뚫어 놓았다. 이곳에 암자가 세 곳이나 되나보다. 아까 그 수정암 말고도 두 곳이 더 있다고, 표지판이 아니라 ‘광고판’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확실히 내가 느끼는 방향감각과 실제는 분명히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길을 잃나보다.

한참을 내려 온 것 같다. 내려오기만 30분이다. 엄지발가락이 아프다.

휴~ 마티 구도로 옆의 노란색 콘크리트 블록에 걸터앉았다. 한 2~3분 쉬면서 땀을 식힌다.

국사봉.., 계속 전진이냐 아니면 오늘 목적은 이뤘으니 이쯤에서 돌아갈까?

앉아 있는 동안 몇 번이나 이랬다저랬다 갈등을 겪는다.

<마티에서 바라본 가마봉>

배고프다. 국사봉 근처 봉우리에서 점심먹자.

12:45 10km 산불감시 카메라

지난 초여름에 들렀던 국사봉을 향하여, 또 오르막길이다. 이제 지쳤나? 오름에 근육이 피곤함을 호소한다. 내가 괜한 욕심을 피우는 걸까? 잠시 뒤돌아 내려갈까 생각해 본다.

정말 터덕터덕 지친 다리를 끌고 올랐다. 이제 저쪽 계룡산 쪽보다는 금강이 보이는 쪽이 훤하게 잘 보인다. 무인산불감시 카메라 아래에 전을 펴 놓고 점심을 먹기로 한다.

<이제 금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밥은 한 대접인데 반찬은 없다. ... 컵라면 면발이 반찬이다.

점심을 먹고 쉴 만큼 푹 쉬었다. 좀 힘이 난다.

13:10 다시 출발한다, 그 뱀은 잠을 자고 있겠지

100m나 왔을까? 국사봉이다. 정상이지만 정상답지 않다. 경치는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는 곳이 훨씬 낫다. 그러니까 감시 카메라가 거기 있지.

사람이 쌓아 놓은 건지 원래 그렇게 돌무지가 있는지 암튼 돌무지 위 “국사봉”이라는 작은 아크릴판 이 놓여있다. 초라하다.

지난 산행 때 만났던 그 뱀은 땅 속에 굴을 파고 잠을 자고 있겠지? 국사봉 돌무지 위에서 경치를 감상하다 마주친 뱀, 일광욕을 즐기는 녀석을 보고 정신없이 뒷걸음쳐 도망 나왔다.

정말로 생각만 해도 몸이 움츠려 든다. 내가 너무 솔직한가? 솔직히 뱀이 무섭다.

<그 뱀은 잘 자고 있겠지?>


뱀 하니까 갑자기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와 함께 약수터를 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 길에 아주 작은 물길이 있었다. 길 가운데에 그 물이 모여 아주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그 물길을 따라 뱀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이다. 난 무서워 울음을 터트렸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뒤에 숨기시고는 뱀이 지나갈 때까지 나를 지켜주셨다. 당신께서도 무서우셨을 터인데 끝까지 자리를 비켜나지 않으셨다.
지금 그 길은 여전히 있지만 물이 말라 뱀은 산에서 사라진 것 같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고 내 가족을 위해 이를 악물고 힘든 때를 견뎌 낼 때, 그렇게 그런 지켜줌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지켜줌을 나눠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나를 생각하면서 내가 잘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이런 감정을 느끼고 베풀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13:40 13km 여기가 ‘매봉’이구나

근육이 좀 쉬어가자고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앞으로 전진이다.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에 산행안내도를 보며 좀 쉬기로 했다. 세 번째 지나는 길인데 저 표지판은 왜 못 봤지? “매봉”을 가리키는 표지판이다. 고사목으로 막아 놓아 가면 안 되는 길로 알았는데 멀쩡한 등산로가 동쪽으로 나 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그리도 궁금해 하던 매봉을 만났다. 나무에 가려 풍경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지도에 있던 매봉을 찾으니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내 머릿속의 산행 개념도가 짜 맞춰지는 것 같다. 정상 위에 여기저기로 난 이정표를 보니 산림박물관 쪽에서 닦아 놓은 등산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근 방 이정표 형식이 일관성 있는 걸보니 등산로도 산림박물관에서 많이 신경을 쓰는 것 같구나.

<매봉, 숲에 가려 경치는 별로였다.>

14:00 15km 그 길이다. 또 갈등 생긴다.

매봉을 찾았다는 즐거움은 잠시 임도를 만났다. 임도 왼쪽(서)으로 가면 과학고등학교, 오른쪽(동)으로 가면 산림박물관, 앞으로 직진하면 청벽산이다.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어쩌지 그냥 내려갈까 말까?

오늘은 갈등하는 날?

혼자 하는 산행이 이래서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 비슷한 수준의 동행자가 있었으면 담소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앞으로 직진했을 텐데...

14:15 15.7km 산불감시초소

또 오르막길이다. 그래도 금새 봉우리에 오른다. 산불감시초소가 어인 일인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물론 떨어진 문짝은 그대로고...

뾰족 솟아 오른 바위 위에서 한창 토목공사로 벌거벗겨진 세종시 예정지를 바라본다. 경치감상하기엔 그놈의 주제가 무거운 곳이다.

14:30 17km 청벽산을 지나 뷰포인트에 서다. 165m

낙엽더미를 헤치고 15분을 내려가니 탁 트인 뷰포인트다. 오늘따라 강물이 참 깊고 푸르게 보인다. 이 강줄기를 왜 가만 놔두지 않고 어쩌려는 걸까?

<역쉬~ 오늘의 백미,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

한 모금 남은 온수를 따라 현미녹차 한 잔을 즐겼다.

또 술한잔 생각났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을 생각하면 술은 금물이다.

너무 가파르기 때문이다.

14:45 산행을 정리한다.

갑자기 아스팔트길을 만나니 내 발바닥, 무릎, 허벅지가 놀란 것 같다.

고녁은 정말이지 자전거를 다시 타고 집까지 가는 오르막길이다. 낑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