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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비슬산

by 여.울.목 2015. 4. 12.


금요일 저녁 후배로부터의 전화...

두 번이나 울리지만 받지 않는다. 꾹 참았았다. 잘 한거다.

최소한 5:30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제대로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사이에 해가 참 많이 부지런해졌다.


버스를 기다리려니 아내가 열심히 보온병을 들고 뛰어온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챙겨준 것도 고마운데... 눈물나려고 한다.

근 몇 달 동안 몸도 안 좋고 일도 잘 안 풀리다보니 그 많은 짜증을 제일 많이 받아주는 사람이다.


시내버스 승강장 안 쪽으로 몸을 숨긴다. 자꾸 택시들이 내 앞에서 서성대니 타지도 않을 거라 괜히 미안스럽다.


우리 버스가 신호를 받으려 대기하고 있다. 한 달 전과 달리 이번엔 20여 미터를 거꾸로 올라가 잡아 탄다.


두 시간 반 정도를 고속도로를 타고 현풍IC에서 내려선다.

지나는 길마다 활짝피어난 꽃 잔치에 다를 마음이 들뜨는 것 같다.

멀리 비슬산 능선이 보인다.



유가사 - 비슬산 천왕봉 - 대견사 - 비슬산암괴류 지대 - 비슬산자연휴양림

5시간 동안 10km 정도를 걸었다.


대견사지에서 다시 유가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있지만 버스를 임차해서 왔기 때문에 휴양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30여 명이 함께 하는 산행이다 보니 시간은 항상 엿가락이다. ㅋ


능선길에 접어들기까지의 2.5km 거리는 점점 등고선이 촘촘해지는 구간으로 제대로 한 방 먹이는 코스다.



처음 유가사에서 출발해 얼마간은 임도를 가로질러 콘크리트 포장길을 만났다 헤어지며 완만한 길을 따라 산행을 한다.

그 것도 잠시 이제 해발 500m를 지나면서는 등고선과 직각으로 맞서는 길이다. 조금씩 일행의 꼬리가 점점 길어진다.

선발대로 무전기를 맨 동기녀석이 그리 힘들어하면서도 '무전기'가 주는 상징성 때문인지 열성적으로 움직이나.

해발 600m에 다다르면서부터는 이제 가파름이 제대로다.

한 달만에 산을 찾았다는 친구가 간만에 하는 산행이라 어렵다고 한다만, 친구야 능선 막바지라 가파름이 장난이 아니라 그런거란다.


한 여름을 맞이한 것처럼 땀이 한 바가지는 쏟아지는 것 같다.

한 주 내내 뒷목을 뻣뻣하게 했던 것들이 땀과 함께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자꾸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도 않고 ㅠ

장기판에서 훈수하는 사람처럼 제3자라면 뻔히 보이는 답일텐데, 남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내 입장이 무척이나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머릿속이 내내 엉켜있다.

오늘 산에라도 오지 않았다면 속병이라도 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능선에 올라서니 바로 400m 앞에 정상이 보이다.

달려라도 가고 싶은 맘이 들 정도로 눈 앞에 확~ 다가선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가지


비슬산 천황봉이다.

해발 1084m. 정상 부근의 바우 생김새가 신선이 앉아 비파를 타는 모습이라고 해서 '비슬'이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 경남 창녕군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북 팔공, 남 비슬이라고 한다네, 팔공산은 남자의 산 여기 비슬산은 여자의 산이라고 한다.

비슬산 등산코스를 따라 궤적을 그어보니 포근한 자궁같은 모양새이기도 하고,

능선을 따라 피어나는 잔달래 군락이 여성스럽게 다가오나 보다.

1997년도에 측량기술의 부족과 역사 자료 등의 검토 과정을 빠트리고 이곳에 대견봉이라는 표지석을 세운 뒤

204.3.1.에 대견사 터에 대견사가 다시 세워지면서 그동안 대견봉으로 불리던 이 봉우리의 명칭을 최고 높이라 해서 천왕봉으로 다시 명명하고, 대견사 뒤편 봉우리를 대견봉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천왕봉에서 바라보이는 조화봉 기상레이더 시설


진달래 군락지로 향하는 능선길을 시계방향으로 돌다보니 느닺없이 뒤통수에서 나를 당기는 비슬산 천왕봉의 모습이 능선 초입에서 보았던 날카롭던 인상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진달래 군락지다.

이 곳을 지나는 산행길은 많은 예산을 들여서 방부목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능선길은 방부테크목과 폐 타이어를 엮어서 길에 깔아 놓아,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일러서 그런지 꽃망울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 주말부터 축제가 시작된다고 한다.

다음 주에 비가 내린다고 하니 만개를 하려면 2주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조화봉에 세워진 기상레이더 시설

저기까지 가느라 대견교라는 견고한 시설물까지 세워놓았다. 차량은 통제되고 있지만 걸어서 접근이 가능하며 6층 전망대를 개방하고 있다.


조화봉 가는 길에 만난 기암괴석. 자연 풍화작용으로 이렇게 변한 것이라고 한다.


대견사 터에 대견사가 지난해 그러니까 2014.3.1.에 다시 지어졌고, 오늘은 기념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차가 포장된 임도를 따라 여기까지 올라온다.


아~ 사람구경, 경치구경하느라 대견사를 지나 대견봉까지 가다 이런저런 기암괴석을 만난다.

기바위. 기 좀 받아서 잘 이겨내자! 파이팅!!!




자동차로 접근이 쉽다보니,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행사까지 겹쳐서 사람들이 버글버글...

인파에 휩싸여 이런저런 기암괴석 능선길을 구경하다보니 대견봉까지 오고 말았다.


친구와 둘이 경치 구경에 하산해야 할 이정표를 그냥 지나치고 만 것이다.

하산길에 느낌이 하도 이상해서 이곳 분들께 다시 묻고나니 방향을 반대로 잡은 것이다. 스마트폰 Oruxmaps어플을 구동 중이었는데 폰을 잘못 만졌는지 GPS가 꺼져 있고, 그걸 기준으로 잡은 방향이니... ㅠㅠ


다시 근 1km를 되돌아 대견사로 내려가 자연휴양림 쪽으로 길을 잡는다.

어쩌다 산 잘탄고 난척 하는 우리 둘이 낙오자 신세가 될뻔 했다. 겸손... 했는데. ㅎ



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쪽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내려가는 길에 대견사 바로 밑부터 시작되는 '비슬산 암괴류'를 만난다. 장관이다.

암괴류란,

큰 자갈 또는 바위크기의 둥글거나 각진 암석덩어리들이 집단적으로 산 비탈이나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 내리면서 쌓인 것이라고 한다.


비슬산 암괴류는 천연기념물 435호로 지정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원형이 잘 보존된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은 학습자료가 될 것 같다.


100여미터를 내려왔는데도 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암괴류다.


이곳은 백악기 중생대 화강암의 거석들로 특이한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해발 1,000m에서 시작해서 서로 다른 비탈을 따라 내려오다가 750m 지점에서 합류해서 450m까지 이어진다.

450m지점에는 진달래와 여러 꽃이 함께 어우러져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정말로 우리가 꼴지로 주차장에 도착했다.

죄송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흘린 땀은 씼어내야 하기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려는데,

출발한다고 빨랑 오라고 전화가 울려댄다. ㅋ


길을 잘못들었지만 좋은 경치 바라보면서 힐링 맘껏한 산행이었다.

와우식당에서 오리초벌구이를 숯불에 구워먹었는데 참 이색적이었다.

아직 피어나지못한 진달래를 대신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점점 술에 흥에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