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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대중교통]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_2010.04.24.

by 여.울.목 2014. 8. 29.

20100424
금강대학-향적산 헬기장-멘재-국사봉-서문다리-천황봉 근처-신원사


금강대 행 버스
술이 웬수라고 느껴진 게 한 두 번은 아니지만 이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힘들게 하는구나
그래도 오늘을 위해 어제 맥주를 마시러 가는 길에 몰래 도망을 나왔건만, 그리 많이 마시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앉아 있던 사람들한테 한잔씩 돌리다 보니 자연스레 술이 나를 잡은 것 같다. 머리가 띵한 게 영 술이 안 깬다. 술기운이 온 몸을 지배하고 있는데 산은 가야 하겠고, 꾸역꾸역 일어나 배낭을 꾸린다. 8시 5분 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야 금강대학교까지 갈 수 있다. 다행히 집사람이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고이 모셔다 준다.


무모함
금강대학교. 논산에 공주 쪽으로 붙어 위치한 학교다. 토요일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학교는 마치 사찰 경내처럼 고요하다. 학교 뒤에 병풍처럼 길게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계룡산 줄기(멘재)에 가볍게 걸쳐 있는 안개 때문에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냥 차에서 내려서 금강대 주변에 가면 바로 등산로를 찾을 것 같은 나의 자신감은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만다. 길게 늘어선 교내 도로를 걷다 보니 등산로를 찾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에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지도에서 본 곳은 용국사다. 지도에는 금강대와 아예 붙어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실제 와 보니 딴판이다. 겨우 기숙사 쪽으로 나오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처음 생각했던 길과 다르지만 그래도 찾은 것 같다.
저수지를 지나니 지효암 푯말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산제당(장군수 약수터)라는 표지판이 있다. 다행이다. 노란 리본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논산시에서 세워놓은 이정표가 있다. 향적산으로 가는 등산로라고 알려준다. 다행이다. 다시 한 번 나의 무모함에 혀를 찬다. 쯧쯧.


술이 웬수다
정말 웬수다. 술이 깨기 시작할 틈도 없이 내 몸뚱이가 본격적인 등산에 얹혀지고 만다. 미치겠다. 땀이 쏟아진다. 내가 왜 등산을 시작했을까?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이다. 더군다나 나를 은근히 협박하는 “물”. 어제 마신 술 때문에, 가파른 등산로 때문에, 자꾸 목이 마른다. 벌써 반을 마셨다. 갈 길이 먼데 물이 벌써부터 부족할 것 같다. 몰 좀 실컷 마셨으면 좋겠다. 물을 하나 더 챙겨오지 못한 것이 후회 막심하다.


에고~ 무학대사가 이 산 너머에 도읍을 정하려던 이유를 알겠다. 누구든 이 가파른 벽을을 함부로 오르기 어려울 거다. 지천에 흔한 돌덩이로 산성을 쌓는다면 천혜의 요새로 딱이다.

어렵게 능선에 다다랐다. 앗! 그런데, 그 헬기장이다. 향적산을 오를 때 만났던 그 헬기장. 예상보다 2km 뒤로 온 셈이다. 속도 안 좋고 물만 마시고 싶다.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봄은 생뚱맞은 것도 어울리게 한다
이길(향적산->국사봉 방향)을 벌써 세 번째 지난다. 지난 산행과는 달리 산행길 곳곳마다 철쭉이 피어 있다.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이렇게 잘 어울려 보일까? 곳곳이 아직도 겨울색이다. 그런 삭막한 색상 위에 활짝 분홍빛, 그것도 촌티 나는 짙은 분홍빛... 언듯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데 자연이기에 자연스럽다.



이제 시작이다
여기부터다. 지난 두 번의 산행에서 아쉽게도 오른쪽 아래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이다. 내 앞으로 출발했던 두 부부가 멘재로 가는 길목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미안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해서, 길을 외면하고 완만한 바위 쪽으로 돌아 내려갔다.
길은 참 편했다. 오르락 내리락도 심하지도 않고, 전반적으로 논산 대명리에서 헬기장까지 오르는 길 빼고는 봄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멘재에서 국사봉까지 가는 길에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철쭉 숲이 호리호리한 내 몸집조차 발걸음질하기 어렵게 만들 정도인데, 다음 봉우리에서 그 모습을 보니 정말 볼만하다. 나무에 가려 그 꽃으로 불타오르는 산을 제대로 사진기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점심
이 봉우리가 어딘지 모르겠다. 이 봉우리로 오는 길에 갈림길이 있었는데 지도 읽기에 서툴러 30여분을 헤맸다. 이 길이 아닌가보다 해서 다시 되돌아 오고, 결국 오르막 길로 다시 접어들어 경치 좋은 바위 봉우리에 걸터 앉아 점심을 먹는다.
속 쓰리고 배고프고 이런 경험도 드물다. 우선 양말까지 벗어 맨발로 봉우리를 돌아 다닌다. 싸 온 밥을 사발면에 말아 다 해치웠는데도 속이 불편하다.
아~ 그런데 정말 경치 좋다. 그냥 여기서 되돌아 가고 싶다. 잠이나 한 숨 때리고 싶은 맘이 굴뚝 같다. 하지만 바로 앞에 머리봉과 천황봉이 보인다. 다른 시각에서 보니 더 멋지다.




숲속마을
예전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것 같다. 돌로 1미터 남짓의 축대를 쌓아 평지를 만든 곳이 꽤 많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어느새 나무들이 들어서서 원래 주인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젠 길을 잃는게 취미?
지도는 용화사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 천황봉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리 했다. 그리고 만난 계곡물줄기, 이제 여기서 계속 계곡을 따라 가면 된다. 하지만 길이 없다. 천황봉 꼭대기에 있던 군인들이 깔아 놓은 삐삐선을 따라 간신히 길을 찾아 올라갔지만 도저히 두텁게 쌓인 낙엽에 숨어든 길을 찾을 수 없다.
많이 올라왔는데 능선 부근에 집터가 보인다. 옛 지도에도 건물이 표시되어 있을 정도다. 여기가 큰서문재다.
너른 바위가 있어 올라가 보면 지형이 잘 보일 것 같아 열심히 올라보니, 예전 그 바위다. 이젠 길 잃는 것도 취미가 되어버린걸까?
얼마남지 않은 물로 갈증을 달래고 열심히 지도에 난 길을 찾아 보지만 어림 없다. 참나무가 떨어뜨린 나뭇닢은 질기기도 하거니와 수북히 쌓여 길을 숨겨 놓는다. 어찌하다 고인돌 같은 묘한 반지하 형태의 고인돌을 발견했다. 정말 예전에 뭔가 있었나보다. 그나저나 길 정말 못찿겠다.

때론 포기도 해야 한다
다시 그 너른 바위에서 지난번 산행로를 거꾸로 되 짚어간다. 하지만 그나마 겨울날 그 길도 도저히 못찾겠다. 진퇴양난.
결국 50%가량 경사진 꽤 큰 벼랑비슷한 곳을 오른다. 오르면 능선이 나올것 같다. 그 동안 몸으로 배운건 이 것 하나다. 오를 땐 능선을 찾으면 대게 길을 찾을 수 있다. 내려올 땐 계곡을 찾아 내려오면 되고...
길을 찾았다. 하지만 너무 힘들다. 멀리 연천봉 암자가 보인다. 보온병과 물병의 모든 물을 다 따라서 실컷 배를 채운다. 좀 살것 같다. 아까부터 큰 볼일도 보고 싶었다. 빨리 내려가서 볼일도 보고 싶다. 화장지라도 챙겨왔으면 아무데서나 볼일을 봤을 거다. 정말 속이 지랄 같다.
그렇게 한 2~300미터를 남겨두고 되돌아 온다. 내려오면서 지난 산행과 이번 산행을 통해 헷갈렸던 길을 차분히 헤아려 본다. 정말 길 잃기 딱 알맞은 곳이다. 리본을 달오 놓으신 산행 선배님들도 자신 있는 곳에만 리본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다.

쉬운 일이 없다
내려가는 길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피곤함이 내 발목과 발바닥에 제발 몸 생각하라고 살살 꼬득인다. 점점 꼬임에 넘어가는 내 몸... 베낭을 짊어진 어깨도 통증을 호소한다.
시내버스가 오기까지 한 20여분의 여유... 스포츠 음료로 수분을 보충하고 반나절 내내 종종거렸던 산행을 차분하게 정리해본다.
컨디션을 생각지 않은 무리한 산행으로 자칫 몸이 상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내려온 것만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도 저 자연은 내 무모함을 조용히 타일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