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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이야기

공주둘레산 - 길동이 엉아를 찾아서... 2010.06.02.

by 여.울.목 2014. 8. 29.

 6.2지방선거 투표일이다. 투표를 마치고 뭘 할까 생각하다가 아이들을 위해 금강 둔치로 나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막상 현관문을 나서며 "우리 홍길동 산성에 가볼까?"하는 말에 가족 모두가 관심을 보인다.
그냥 무성산이 아니고 '홍길동'이란 말이 들어가니까 다들 친근하게 느껴졌나 보다.

투표소는 여느 때와 달리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기표소까지 쫒아와 내 소중한 한 표를 대신하려고 떼를 쓴다.
이렇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고, 어제까지 선거운동으로 떠들썩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시내를 가로질러 홍길동산성으로 향한다.

차는 연미산 감고 있는 옛 도로를 타고 한천리로 향한다. 조용한 저수지를 지나자 아이들이 네비게이션의 애니메이션에서 눈을 떼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함께 온 이유로 차를 몰아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가기로 했다.
트랜스미션 기어를 1단으로 해야 올라갈 정도의 가파름과 거친 곳을 지나 임도 갈림길에 다다르니 벌써 3~4대의 차량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잘 닦인 아스팔트 포장길만 달리다 덜컹거리는 비포장길에 먼지를 일으기며 달리자 아이들은 이제 차창으로 나타나는 신록의 푸르름에 온 신경을 쏟으며 재밌어 한다.

임도는 차량 통제를 위해 쇠사슬로 막아 놓았다. 그곳을 지나 한 200미터를 가니 가파른 등산로가 나온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우린 가파른 등산로가 아니라, 임도를 따라 1.2킬로미터를 걸어 홍길동동굴을 거쳐 산성으로 가기로 했다.
등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산책이 어울릴 정도다. 아이들은 신났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임도라도 오르락내리락 쉽지만은 않은데도 이런 길을 별로 접해보지 않은 아이들이 마냥 신기한지 팔짝팔짝 뛰어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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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별로 본 적이 없는 빨간 발이 많이 달린 지네도 보았다. 지네의 행로를 가로막지 않으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아이들도 징그럽기보다는 신기한듯 바라본다. 책에서만 보았던 그 녀석을 여기서 본 것이다.
큰 녀석은 민들레 홀씨를 훅~ 훅~ 불어대며 자연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한다. 작은 녀석은 맘껏 뛰다가 힘들면 내 등에 업혀 에너지를 충전하고는 다시 내려와 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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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를 쌩 달려가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고요한 산책을 잠시 훼방 놓고 지나간다.

400미터. 400미터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는 아이들과 집사람.
이제 등산로다. 홍길동 산성까지 400미터. 하지만 만만치 않다. 이제 조금씩 땀이 흐르니 벌레들이 땀내를 맡고는 우리들 주변을 엥엥 거린다.
그렇게 재밌어하던 아이들이 이젠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래 집이 좋지? 하지만 숲은 여러 생물이 함께 사는 곳이다. 숲속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많은 나무와 곤충들이 함께 사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것 같다.

어렵게 오른 홍길동동굴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탁 트인 경치를 보자 이제 딴 소리를 하지 않는다. 사진 찍고 장난치며 시원한 바람이 한껏 오른 열을 식혀 주는 걸 맘껏 즐긴다.

이제부터는 그리 어려운 길은 없다. 홍길동 산성까지 올라온 만큼 능선길을 따라가면 된다. 오히려 아까 초입에 맞딱드린 그 등산로의 내리막이 걱정이지...

간식을 즐기던 등산객이 장하다며 아이들에게 빨란 방울토마토를 건네신다. 더 신이난 녀석들이 홍길동산성을 향해 진격한다. 하지만 이내 무너져 내린 산성의 돌덩이의 불규칙함에 진격보다는 발 디딜 틈을 찾느라 정신을 빼앗긴다.

산성은 생각보다 큰가보다. 성안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니 예전에 우물도 있었던 꽤 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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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원

*위치: 사곡면 대증리 ~ 우성면 한천리

  산높이: 표고 613m

  규모: 자연석 축조, 협축식 안팎

  산성높이 4m, 남북 170m, 동서 60m, 둘레 525m, 성문 폭 3m

  흔적: 성문, 건물지, 치성, 우물터 등 

성을 빙~ 돌면서 몇 명의 아저씨들이 붉은 측량용 말뚝과 스프레이를 뿌리며 성곽 주변을 돌고 있다. 다시 복원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무너진 돌덩이로 쌓은 탑이 멋있기보다는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성을 빠져 나오니 제법 위용 있어 보이는 바위가 보인다. 멋진 경치를 보여주려고 아이들은 올려 앉혔더니 조금은 겁이 나는지 온 식구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다닥다닥 붙어 앉는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큰 아이의 배꼽시계는 벌써 점심을 한참 지났는지 계속 먹을 것 타령이다. 작은 아니는 피곤했는지 잠을 청하려 칭얼댄다. 5천원짜리 피자 한 판에 녀석들과 타협을 하곤 다시 힘을 낸다.

내리막길이 어찌나 급한지, 엄지발가락이 고통을 호소한다. 작은 아이는 피곤해서 내 등에서 잡이 들었다. 내리막이다 보니 계속 업을 수 없어 안고 내려온다.
큰 아이는 이제 동생 때문에 어린양을 피울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아무 짜증 없이 제 몫의 산행을 충실하게 완수했다.

너무나 자랑스런 아들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같이 산에 가면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달라며, 둘째에게 신경을 쏟고 있는 엄마아빠의 맘을 흔들어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고 되레 혼나기까지 했는데...
다 컸구나.
어른도 힘들 산행을 거뜬히 해낸 녀석이 자랑스럽구나. 대견하다.

둘째 녀석은 힘든 산행길을 다 내려오니 번쩍 눈을 뜬다. 너도 참 고생했다.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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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 배를 피자 몇 조각으로 달래고 가족 모두가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