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 속리산 천왕봉~문장대

by 여.울.목 2021. 8. 22.

2021-08-20_속리산_천왕봉_문장대.gpx
2.09MB

 

법주사-경업대-천왕봉-신선대-문장대
21km
7:30
2.7km/h

어울리지 않는 워커홀릭이었나?
얼마만의 장거리 산행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코로나19와 상반기 내내 나를 짖누르던 일 때문에 미루고 미뤘나보다.
사실 장거리 두 번이나 찾았는데 내게 민낯을 보여주지 않았던 소백산을 꿈꿔왔는데,
편도 200km를 훨씬 넘기더군.
어쩌다 만든 휴가를 길 위에서 그것도 조름운전에 위태위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도책을 뒤적이다 소백산을 포기한 눈길이 머문 곳이 속리산이다.
등반자료를 얻으려 인터넷을 서성거리는데
주차료가 4,000원에 입장료가 5,000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아~ 정 떨어져. 주차료야 그렇다 치더라도 문화재 관람하는 사람만 돈을 내면 되는 건 아닌지.
아침.
다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면서도 어디를 갈지 결정을 못했다.
덕유산을 갈까? 무주구천동 계곡에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좀 꺼려진다.
그깟 돈 몇 푼... 그냥 처음 생각대로 속리산?
참말로, 별것도 아닌데 나를 흔든다. 누가 "여기로 가!"하면 두 말 않고 거기로 갈 것 같다.
요즘 내가 이렇다.
결정장애? ㅠㅠ

가던 길 멈추고 '정2품송' 앞에서. 높은 양반이네.

그래도 너무하다.
주차료 5,000원에 입장료 5,000원
기분 나빠서 회수권도 받다쥐지도 않고 매표소를 휙~ 지나친다.

근 10여년 동안 오지 않안 사이에 바뀐 것... '세조길'이라는 트레킹하기 좋은 길이 생겼다.
아스팔트 길 옆으로 조금 구불거리고 조금 오르락 내리락
저수지 둘레를 따라, 계곡길을 따라 세심정까지 이어진다.
초등학생도 아닌데 돈 만원 때문에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초록의 향연에 조금씩 풀린다.
긴 호흡으로 내 몸을 달랜다.

비로산장, 캡스가 여기까지 진출, 출동할려면 똥빠지겠다 ㅋㅋㅋ
수 년 전에도 있던 애교가 그대로다

이제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을 해야 할 때다.
세심정을 지나 오른쪽 천왕봉으로 향한다.
어쩐 일인지 그리 힘들지 않다... 싶었는데 비로산장을 지나면서 드디어 속리산이 본색을 드러낸다.
그렇게 경업대까지는 40도 정도의 경사가 계속 이어진다.
항상 그렇듯이 이런 명산은 힘듦 후에 멋진 풍경을 선물로 준다.
땀에 흠뻑 젖어 나보다 더 지쳐보이는 배낭을 잠시 내려 놓고 신선대며 임경업 장군이 완성했다는 입석대를 둘러본다.
그래, 이 맛에 산에 오른다.
무술 연마할 기분이 날 것 같다. ㅋ

경업대에서, 신선대-입석대
신선대
입석대
문장대 방향의 산줄기
신선대~입석대

신선대 갈림길에서 잠시,
아니 아예 방향 감각을 잃었다.
문장대로 가는 방향 같은데 천왕봉 가는 길이란다.
잠시 샛길을 따라 암봉에 오른다.

신선대며 입석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그냥 도시락 까먹고 문장대로 갈까?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으니.
입석대까지만 가기로 했는데...

그렇게 입석대까지만 가볼양으로 옮긴 발걸음이 한 달음에 천왕봉까지 가고 말았다.
더위에 2.6km, 근 한 시간을 걸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신선대와 천왕봉 사이의 능선길의 빼곡한 산죽과 간간히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볼 수 있는 암릉의 풍경이 쥑인다.
북한산의 암릉이 남성적이라면,
이곳 속리산의 것은 음양의 조화를 잘 이룬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르는 내내 사람들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니 능선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치운다.
어쩌다보니 하나 둘 제껴가다보니 오버페이스를 한 것 같군.

비로봉 근처 기암괴석
암봉 위로 천왕봉
통천문을 지나야 천왕봉


몸뚱아리에서 조금씩 땀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체내에 젖산이 가득한 것 같다.
예전 그대로 천왕봉(1,058m)은 속리산 최고봉이지만 그닥 그런 위엄은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도 나를 비롯한 사람들 모두 열심히 공을 들여 사진을 찍어댄다.

천왕봉에서
천왕봉에서, 문장대 - 멀리 막대기 하나 꽂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장대'
줌으로 조금 당겨 보면 막대기가 문장대처럼 보인다.

천왕봉을 오르면 힐끗힐끗 바라보면 찍어 놓았던 점심 포인트는 내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미 선점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비로봉을 살짝 지나 달팽이 닮은 바위 앞에서 점심 전을 편다.
도시락 냄새를 맡았는지 호박벌 한 마리가 웅~웅~ 거리며 한가로운 식사시간을 방해한다.
녀석이 내 주위를 서성거릴 땐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참이다.
한 손에 밥통을 들고 요리조리 피해다닌다.

가볍게 먹으려했는데 마물님께서 싸주신 것이라 아금박스럽게 먹다보니
시간도 많이 지났다.
다시 터벅터벅... 스틱의 추진력에 몸을 맞겨본다.
신선대 갈림길.
다시 원점이다.
온 몸은 땀으로 피곤으로 흠뻑하다.

속리산 곳곳에 있던 매점이 대부분 철거되었는데,
신선대 휴게소만이 아직 영업중이다.
딱 쉴만한 자리에 터를 잡고 있더만.

마눌님과 1번무전기 친구의 카톡이 울려댄다.
물 한모금 마시며 답장으로 풍경사진을 날린다.
원래 앉아서 쉬는 법이 없는 나다.
간만에 힘들어 바위에 걸터 앉아 있으려니
아까 그놈인가? 5km를 쫓아 온 것도 아니고 또 그 호박벌이다.
피곤에 쩔었어도 몸을 움직여 피하지 않을 수 없었지.

신선대 후게소를 지나, 쭈글이 ㅋ '청법대'인가?
문수봉
이제 문장대가 바로 코 앞이다


아~ 드디어 문장대.

천왕봉에서 멀리 막대기 같이 보였던 문장대에 오고 말았다.
사실 신선대에서 문장대까지는 30분 거리로
맘만 먹으면 한 달음에 올 거리인데
몸이 천근만근 내 몸과 맘을 달래고 달래 왔다.

바람이 참 시원하다.
오랫 동안 머물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집에 가야지...

문장대에서...
문장대에서, 지나온 능선을 바라본다. 오른 쪽 저 멀리, 천왕봉

내려오는 길.
고통스럽더군.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이잖아.
무릎 통증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초반에 무리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은 것이 관건이다.

지친 몸을 끌고
법주사로 들어선다.
ㅋㅋㅋ
5,000원 아까워서 그랬나? ㅎ

그늘 따라 난 '세조길'을 걷고 법주사 경내를 여유롭게 둘러보니 가족이 생각난다.
사무실 일 때문에 아이들과 휴가시간을 맞추지 못해 오늘 혼자인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느림의 미학을 함께 즐기고 싶더군.

 


발에 물집이 잡혔다.
왼쪽 발 뒤꿈치, 그리 크지는 않지만.

오던 길에 참 소박한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생각했던 성당
가는 길에 들러본다.
마을 인구 감소로 신자수도 감소할수 밖에...
같은 종교시설인에 두 곳이 대비된다. 
'보은천주교회 하개공소' 또 다른 위로를 받는다.

원 없이 걸었다.
혹이나 근육통 같은 걸로 일상에 방해나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만,
아쉬움이 없어 다행이다.

집으로 간다.

보은천주교회 하개공소 (공소=평상시 신부님이 안 계신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