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2014.6.18. 성판악-백록담-관음사 17.08km (8:03)
제주도 4박 5일 여행.
이런저런 일로 제주도 여행 일정잡기도 혼란스러웠던 우리 일행의 전체 일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버거운 여행을 시작했다.
무겁고 우울했던 마음이 상쾌하고 더욱 가벼워지고 상쾌해진 계기가 된 산행이었다.
첫날 오후부터 한 두 방울 내리던 것이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근심을 하게 내린다.
현지인 버스기사는 비가 금방 그칠 것이라고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 대신 한라산 편으로 줄을 선다.
판쵸우의 형태의 좀 두꺼운 비닐 비옷을 뒤집어쓰고 산으로 향한다.
오르막길, 걸으면 걸을수록 뿜어져 나오는 몸의 열기로 요놈의 비닐 우의를 벗어야할지 말야야 하는지 여러 번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엔 땀이나 비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우의를 벗어던진다.
비 때문에 제대로 걸을지 많은 걱정을 했는데 다들 씩씩하게 잘 오르네. 속밭대피소에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꼬리가 그리 길지 않다.
사라오름을 지나고부터 1시간 정도는 지금까지의 완만함을 벗어나게 되어 제법 숨이 차오르고 근육에 힘이 가야 했다. 그래도 난 지난해 3월 이후 두 번째 가는 길이라 그런지 낯설지만은 않다. 가파름이 심해져서 그런지 진달래밭대피소에서 기다리는 일행의 꼬리가 많이 길어졌다. 1,500고지라 그런지 추위와 안개가 그친 비를 대신한다. 몸은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돼 심기가 불편한데다 소모된 열량을 채워야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간식을 먹어댄다. 다행히 대피소 매점에서 판매하는 사발면 국물로 몸을 덥혀가며 허기를 달랜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다시 체온이 돌아온다만, 아직도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된 몸뚱이의 불쾌함은 여전하다.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고부터는 작년 3월에 꽁꽁 얼은 눈덩이로 보지 못했던 탐방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빗물이 아직 스며들지 못한 채 개울을 이루고 있는 탐방로 곳곳은 새로운 볼거리다. 누가 일부러 이렇게 멋진 정원을 만들어 놓은것이 분명하다.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초록 끝으로 새로 돋은 연두 빛의 주목잎사귀 모양새가 마치 꽃이라도 피운 것 같다. 부지런히 오를수록 나무가 거친 바람과 추위에 견딜 수 없는 환경이라 그런지 키 작은 나무와 고사목과 풀만이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안개 사이로 감질라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야생화와 풀밭이 주는 멋진 풍경이 제대로 산을 찾은 사람들과 밀당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
백록담 주변은 산에 대한 어정쩡한 맘을 가진 사람들을 경계하듯
거친 바람이 맹렬하게 지키고 있다.
오전 내내 내린 비가 만든 무겁고 짙은 안개 때문인지 거센 바람에도 백록담의 분화구 모습은 잠시라도 코빼기를 내밀지 않는다. 맑은 날 멀리 바다와 제주의 사람 사는 터전까지 죄다 보여주었던 넉넉함은 어디에 숨었는지... ㅋ
정상에서 일행을 기다리느라 땀과 함께 체온이 급격히 덜어지는 것 같다. 변덕스런 날씨와 오랜 산행으로 힘들지만 웃음기 어린 얼굴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니 정말 산을 좋아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상은 그리 오래 사람을 잡아두려 하지 않는다. 칼바람에 빼앗긴 체온 때문에 내려오는 길이 매끄럽지만은 않다. 다행히 일행 중 한 분이 건네준 빨간색 손가락장갑 덕에 그나마 양 손을 밖으로 꺼내놓고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 장갑 고맙습니다! 빨간색에 헬로키티 그림이 입혀진 예쁜 장갑이라 그런지 집에 돌아와 배낭 푸는 사이에 딸 아이가 바로 접수해버렸다.
관음사로 내려오는 길은 거리야 오름보다 짧은 편이지만, 줄어든 거리만큼이나 당연히 가파름이 심할 수밖에 없다.
장기간의 산행 때문에 내려오는 길의 꼬리는 점점 더 길어지는 것 같아 용진각 대피소터에서 다시 달아오른 체온 덕에 여유를 가지고 일행을 기다린다. 꽤 긴 시간에도 소식이 없기에 다시 오르막길을 되짚어가니 다리와 무릎 쪽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2~3명 정도 된다. 갑작스런 기온하강과 체력저하로 근육이 이상 징후를 보이는 것 같다. 배낭에서 접착압박붕대를 꺼내 임시방편으로 응급처치를 해준다.
다행히 개미목을 지나면서는 탐라계곡대피소까지 능선과 함께하는 길도 나오고 날씨가 한결 나아져 선두와 후미의 간격 없이 함께 어우러져 하산을 하게 되었다. 어느덧 여유가 찾아왔는지 웃음소리도 어우러진다.
대피소를 지나자 이젠 내려가는 것도 질리나 보다. 사람들마다 체력의 정도에 따라 쉬는 시간에 차이가 있다 보니 하나 둘씩 대오를 이탈한다. 그래도 이제는 거의 평지와 같은 산책로가 펼쳐지니 올레길 일행을 만나 전체 일정을 이끌기 위해 빠르게 앞으로 나서야 한다.
고르지 못한 날씨 때문에 참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는데,
일행 모두 오히려 해가 안 떠서 오히려 수월한 산행을 했다고 한다.
그렇군...
허긴, 날씨야 인솔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잖아.
그래도 서로 마음을 위해주니 참 좋구나.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마웠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흑돼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걸치니 흥이 절로 나더군~
정겨운 사람들과의 진솔한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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