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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익산미륵사지

by 여.울.목 2015. 10. 9.

몇 주 전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이들과 익산 미륵사지를 다녀온 이야기.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지구 중 우리가 살고 있는 공주 외에 가보지 못한 곳이 익산인지라

익산을 향해보기로 했다.

평야지대라 그런지 길이 탁 트이게 잘 닦여져 있어 실제 도착을 해보니

실상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군.

 

미륵사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느낀 두 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째, 미륵사지의 가람배치

 

미륵사는 백제시대 가장 큰 절로 알려져 있다.

생각컨대 한성에서 공주로 쫓기듯 내려와 국력을 재정비하고 중흥을 이루자 이제 보다 넓은 곳에서 계획도시를 건설하고 더 큰 꿈을 이루려고 했다. 그렇게 사비로 천도하고 정비를 갖추었을 때 백제의 축적된 찬란한 문화와 국력이 고스란히 담아 지은 절이 미륵사라고 한다.

미륵사는 무왕이 왕비 선화와 사자사라는 절을 방문하다 용화산(현 미륵산) 아래 연못에서 솟아 난 미륵 삼존을 보게 된다.

왕비는 왕께 간청해서 연못을 메워서 절을 세운다.

아쉽게도 1600년대까지만 사찰로써의 기능을 했지만 석탑과 금당 기단 공간구조와 수 많은 공예품은 독창성이 뛰어난 백제문화의 역량이 최대 발휘된 것으로 신라와 왜의 고대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 미륵사 터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이,

미륵산이다. 미륵산 아래 평온하게 자리잡은 절터.

맨 먼저 미륵사 기념관에 들어선다. 

 

아이들이 간단하게 우리나라 국보인 미륵사지 석탑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장도 있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미륵사의 가람양식이다.

3원의 가람배치로 독특한 방식이 어쩌구 저쩌구... 미륵사지 입구에도 그런 말이 써 있는데,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그리 독특하다는 것인지 쉽게 설명좀 해주면 안 되나?

당시 미륵사를 재현한 모형 앞에서도 이게 뭐지? 양쪽에 탑이 있고... 불국사랑 비슷하기도 한데...

 

 
미륵사의 가람배치가 궁금해서 가람배치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가람배치는 절이 놓여진 모양새를 말한다.

절은 사리를 모시는 탑과 존상(불상)을 봉안하고 있는 금당의 관계에 따라

보통 일탑일금당식, 일탑삼금당식, 이탑일금당식, 무탑식으로 구분되어진다고 한다.

 

포털사이트 다음 백과사전(브리태니커)에 나오는 가람배치는 보통 아래와 같아네~

 

 

그런데 미륵사지의 가람배치는

문-탑-금당이 하나의 단위 즉, 한 세트로 세번이나 구성되어 있는 3원의 가람배치라는 것이다.

이렇게 좀 설명해주면 좋은데, 기념관 안에 그렇게 누구하나 설명조차 없더라.

내가 찍어온 사진에 가람배치를 재현해 보았다.

분홍색글씨의 문-서탑-금당, 중문-목탑-금당, 문-동탑-금당

어디서는 부처님이 세번 설법을 베풀어 중생을 구제한 모습을 형상화 했다고 하고,

미륵사지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나온 것처럼 미륵삼존(법당의 가운데 있는 미륵불과 그 왼쪽에 있는 법화림 보살, 그 오른쪽에 있는 대묘상 보살)을 나타내고자 삼원의 체계로 지었다고 한다.




둘째, 미륵사 석탑 복원을 통해 짚어보는 '문화강국'의 출발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배운 미륵사지석탑은 좀 흉물스럽기도 했다.

바로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 복원을 했다는 기괴한 모습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도저히 그 시멘트를 떼어내지 못해서 그냥 그렇데 두어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시멘트를 떼어 내다가 그나마 남은 석탑이 온저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그 시멘트를 걷어내고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보 미륵사지 석탑자리에 석탑 대신에 석탑의 부산물과 커다란 건축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의 석탑으로 복원될 석물

복원 중인 장소는 석탑이 있던 바로 그자리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규모가 대다했다.

석탑 복원을 위해서 H빔 철골로 튼튼한 보호 건물을 세웠고, 석재를 보관하는 창고와 연결이 되어있었다.

기술력과 경제력과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자부심이 없다면 이런 작업은 이루어 질 수 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문화재 복원을 위해서 계획적으로 장기적으로 체계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나니,

괜히 뿌듯한 맘이 들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양식이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국석탑의 시원으로

백제인의 독창성과 실용성, 당시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현재 복원 중인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600~641년 재위) 대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잇다. 원래 9층인데 무너져 동쪽 부분이 6층까지 남아 있다.

일본이 1915년에 시멘트로 보수 한 것을 1998년 해체해서 복원 중이다.
안내문에는 2016년에 완료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어째 몇 년 더 가야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탑의 기단은 한 변이 약 12.5m인 정사각형이며,

높이는 14.2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탑이라네~

복원장 2층 창문을 통해 동쪽을 바라보니,

목탑터를 가로질러 동탑 터에 현대의 기술로 복원한 탑의 모습이 보인다.
동원 구층석탑, 1991년 복원을 시작해서 1992년에 완료. 서탑과 같은 재질인 익산 황등에서 캔 화강암 2,000여 개와 백제시대 기단석과 탑신석 32개를 포함하여 2,700여 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 탑 뒤로 보이는 금당터

금당은 불상을 모신 건물로 사리를 모신 탑과 더불어 사찰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건물이다.

 


▼ 강당터
여러 사람이 모여 불경 공부를 하고, 불교의식을 하던 곳이다.


▼ 왼쪽이 동탑, 오른쪽이 서탑_현재 복원 중 


▼ 목탑지와 동탑 앞에는 복원에 쓰일 소중한 돌에 번호가 메겨져 보관되어져 있다.

 



복원이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지만 천 년하고도 몇 백 년을 지켜온 우리의 문화유산 아닌가!
긴 시간에 비하면이야 조금의 기다림은 애교 아니겠어?

밝에 웃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앞으로 귀한 문화적 밑천이 될 것이다.
미륵사와 석탑을 탄생시킨 창의적인 문화강국 백제만큼이나 대한민국도 힘차게 문화의 꽃을 피울 것이라 확신한다.

그 시작은 바로 우리의 것을 바로 알고 지켜내고, 더 나은 것으로 키워가는 것이겠지.

석탑 복원이 완료되면 다시 찾아서 맛나는 쌈밥 정식도 다시 먹고...

우리 가족 파이팅!

문화강국 대한민국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