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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1,439.5m)

by 여.울.목 2022. 8. 12.

소백산,
해발 1,439.5m 비로봉을 중심으로 국망봉(1,420.8m), 연화봉(1,383m), 도솔봉(1,314.2m) … 백두대간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봄엔 퇴계 이황도 감탄한 철쭉의 아름다움, 겨울엔 눈꽃이 가득한 곳

제철을 뒤로 하고 난 왜 이 한여름에 왜 여길 왔을까?
연휴를 앞두고 하루 휴가를 내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을 탁 트이게 하고 싶었다.
한 번은 철쭉을 또 한 번은 눈꽃 보러 왔건만 민낯조차 허락하지 않은 소백산.
수년 동안 벼르고 별렀는데, 거리에 내 일상에 날씨에... 때론 핑계로 때론 걸림돌.

기상청과 공원관리공단 누리집을 수십 번 들락날락.
기상 특보가 해제된 것만을 보고 무모하게 일단 길을 나선다.
‘일단’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다. 편도 약 200km, 무모함이 뚝뚝 묻어난다.
09시를 깃점으로 공원관리사무소에 전화한다. 부정적 답변뿐.
꾸역꾸역 천동탐방지원센터가 있는 다리안관광단지에 도착했다.
2020년 5월부터 1천 원 입장료는 사라졌지만, 대형차 6000원 소형차 3000원 주차료.
(근데 어찌 6000냥이라는 금액만 눈에 박히냐 ㅋ)
언제 통제가 해제될지 모르니... 우선 차를 돌려, 근처 길가에 차를 세운다.

또 전화질, 오늘 중으로는 해제는 힘들 것처럼 말한다.
30여 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200km를 달려왔는데, 딱히 선택할 것도 없다. 시간만 버려지고 있다.
마치 요사이 내 사는 모양새와 어찌나 판박이인지. 짜증 너머 무력감.
1번 무전기에게 요 근처 국립공원말고 괜찮은 산 없는지 톡을 친다.
“ㅠㅠ”만 오간다.
집으로 내려가는 동안 들릴만한 산...
충북의 웬만한 산은 국립공원으로 묶여 있다.
내일 일정에 그냥 집으로 가자. ㅠㅠ

단양읍내를 빠져나가기 전 도락산, 아니 옥순봉이라도 가볼 양 월악산 사무소에 전화를 건다.
“통제중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 해제될 것 같아요.”
무력감이 패배감으로 젖어 든 내 몸뚱이에 생기가 돈다.
미안하지만 혹시나 다시 소백산 사무소에 전화한다.
“대신 받았습니다~ …” 대신 받은 분, 1시쯤이면 안전요원들 점검이 끝날 것 같다고 한다.
전화 받으시는 상담원보다 재량권이 있는 자리인가 보다.
귀가 시간이 문제다. 비로봉과 가장 가까운 코스를 찾는다.
차로 10km 더 가 어의곡 코스.
새밭주차장에서 한량처럼 서성거린다. 점심시간을 아끼려 김밥부터 해치운다.
12시 반, 공단 누리집을 보니 “정상”.
배낭을 둘러맨다.

기온이 빠르게 치솟는다. 다행히 하늘이 파랗다.

-단양에서 소백산 정상에 이르는 가장 짧은 코스
-어의곡탐방지원센터에서 비로봉까지 편도 5.1Km 약 2시간 40분 소요
주차장까지의 거리까지 합치면 대략 6km
-상대적으로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원시림과 탐방로 주변 계곡이 인상적이다.
※ 입산시간 지정제: 동절기(11~3월) - 05:00~13:00, 하절기(4~10월) - 04:00~14:00

-보통 어의곡삼거리에서 국망봉, 늦은맥이재를 거쳐 을전으로 돌아내려오는 순환 코스(약 7~8시간이 소요)를 선호한다는데,
내 입산 시간상 편도 왕복 코스가 답이다.

 
Climbing_2022-08-12_소백산_어의곡_비로봉.gpx
1.17MB


보통 어의곡삼거리에서 국망봉, 늦은맥이재를 거쳐 을전으로 돌아내려오는 순환 코스(약 7~8시간이 소요)를 선호한다는데,
내 입산 시간상 편도 왕복 코스가 답이다.

새밭주차장에서 600여 미터를 걸어 올라가면 (구)어의곡 탐방지원센터다.
톤제가 해제되면서 지키던 직원 어디론가 사라졌나 보다.
전체적으로 산행은 보통 수준으로 전문 등산장비가 필요하진 않지만,
탐방로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주로 돌길이고,
더군다나 많은 비로  돌길은 군데군데 계곡물로  넘실댄다.
미끄러짐에 조심해야 했다. 내려올 땐 더.
원시림 같은 분위기를 주는 계곡 물소리가 내 고막을 다독거려준다.
기온은 빠르게 상상하는데 물은 차가워서 그런지 계곡 주변은 차분한 수증기로 가득하다.
덕분에 땀은 많이 나는데 한증막 같은 기분은 아니다.
에어컨 틀어 놓고 운동하는 기분?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은 이런저런 고민 덩어리들이 충돌 중이다.

한참을 올라섰는데도 계곡은 다이나믹하다.
2~3㎞ 지점을 전후로 그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며 이제 능선을 찾아 들어간다.
바로 돌계단과 방부목 테크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경사도도 매우 급하다.
나 말고 아무도 없던 이 길, 첫 데크계단에서 그 안전요원 3명과 지나쳤다.
해발 1049, 정상까지 2.1km 남았다.
그 후로 3~4명이 하산을 하더만, 이 사람들은 뭐지? 영주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인가?
한국인1 외국인3명이 정상 바로 밑 부분에서 야영하면서 탐방로 공사를 하고 있더라.
그 폭우에 어떻게 견뎠을까?
캠프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는 전기를 생산하는 작은 발전기도 있더군.

이제 완연한 능선길이다.
돌은 없고 육(肉)산 느낌이다.
사람이 인공 조림을 했는지 빽빽한 전나무, 햇볕 보기 경쟁에 빼빼로처럼 길게길게 하늘로 향해 있다.
그 밑은 계곡인지 엄청난 물소리가 천 미터가 훨씬 넘은 고지에서 울려퍼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4.2km 이후에는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목재 데크로 된 탐방로가 비로봉까지 이어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국적이다.
비로봉까지 데크길 주변은 큰 나무가 자랄 수 없는 환경인지 마치 목장같다.
바위 위에서 백두대간의 기운을 느껴본다.
저기 비로봉이 보인다.

비로봉. 정상.
한참 동안 뭔가 느낄 것 같았는데,
벅찬 감동으로 어쩔 줄 몰라할 줄 알았는데.
비로봉을 한 바퀴 돌고는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보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참~ 이상하다.
답답해서 떠나온 여행인데.
모순덩어리 가득한 곳으로... 늦지 않으려 하산을 서두른다.
비로소 나에게 잠시나마 허락한 풍경에 감사한다.
다행히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란 걸 비교적 빨리 깨달았다.
산 정상 그 느낌과 풍광의 소유보다는 잠시 함께했다는 인정받음이다.

 

오랜만의 장시간 산행
내려서는 동안 왼쪽 무릎이 아우성댔지만 그리 험한 코스가 아니라 무사히 넘겼다.
그래, 오랜만이네.
코로나 때문인지 바쁨 때문인지 올해 들어 긴 산행이 참 낯설다.
안 쓰던 엉덩이 부근에 느낌이 온다.
녀석 근육이 줄어 삶에도 맥아리가 없었나 보다. ㅎ

하산길
들머리서 만났던 사람들이 어찌나 반갑게 인사하던지.
지난 6월 지겹던 의회 심사 끝나는 날 빵구난 양말 갈아치러 나왔다 교차로에서 멈춰선 어린이집 버스 - 아이가 환화게 웃으면 내게 인사했었다.
나도 웃으며 “안녕~”, 어쩔 수 없이(?) 내 입가에 웃음이 번졌었지.
이 세상이 그렇다. 이런 건 모순이라는 것에서 빼야 한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남는 모순은 몇 개 안 될지도 몰라.

진천부터 길이 막힌다.
그래도 걱정했던 세종시는 잘 빠져나온다.
치킨 한 마리를 사샀다.

예전 우리 어머니 자수 놓은 식탁보가 떠오른다.
거기에 수놓아진 글귀 “SWEET HOME“

그래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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