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기원을 담아 ~ 머리봉

by 여.울.목 2022. 12. 24.

휴가 실시 일수를 채워야 한다~해서 억지 휴가를 냈다.
하루 온전하게 방해받지 않고 남은 일을 처리했으면 좋겠는데,
막상 출근하면 이런저런 일에 시달리다 끝난다.
사람 사는 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추운 날씨에, 영화라도 볼 것이지, 제 버릇 못 버리고 산을 찾았다.

눈과 추위에 산은 겨울 같았다.
근래 아무도 찾지 않은 길을 걷는다.
분에 맞지 않지만,
'눈 길을 걸을 때 어지럽게 걷지 마라, 훗날 다른사람의 이정표가 되리...'
뭐 이런 뜻의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이 생각나더라. ㅎ

조용한 사위를 뚫고 딱따구리 소리만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날아든다.
어찌나 맘 놓고 쫗아대는지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네.

능선 타고 봉우리 근처에 다다르자 바람이 칼이다.
잠시 장갑이라도 벗으면 칼이 내 손등을 에리고 간다.
정상은 좀 더 남았는데 이미 손가락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얼하다.
해가 구름에라도 가릴지라면 몇 배로 앙칼지게 내 몸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괜히 이 고생... 춥다. 집에 가고 싶다.
스패츠를 착용하기에 애매하기에 게을리 했더니, 칼바람 말고도 눈덩이가 조금씩 등산화를 파고든다.

아이들 방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지 않고 봉우리 하얀 정상에 올려 놓는다.
종교도 없는 나인데.
지닌 먹을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내어 놓고 기원을 담아 본다.

한바탕 추위의 뭇매를 맞고 나니 산허리의 고요함 자체로 따스함이 느낀다.

며칠전 인사발령으로 차갑게 식은 내 폰이 울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