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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秋甲寺, 갑사로 가는 길

by 여.울.목 2023. 11. 4.

2023.11.04.(토)
동학사 주차장-천정골-큰배재-남매탑-금잔디고개-갑사-갑사주차장
7.7km
2:21
3.3km/h
제1회 중부권 계룡산 등산대회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
높고 구름 없으니 공활하겠지... 그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절이 요즘이다.
그런데 토요일 비 예보를 한다. 비 예보는 가을 단풍에 대한 기대까지 숨죽이게 한다.
아침까지 푹~ 자고 싶은데 산행 일정에 신경 쓰여서인지 새벽부터 잠이 깬다.
쌍수에서 회장님을 비롯한 5명이 ‘제1회 중부권 계룡산 등산대회’에 참여한다.
‘공주 산악연맹’ 회원들이라 그런지 버스 안 몇몇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찌푸린 하늘 걱정과 달리, 버스는 만원이다.
동학사 주차장. 공주지역 행사로만 알았는데 천안, 서산, 금산 지역 사람들도 많이 내린다.
낯선 인파 속에서 수줍게 간식을 챙겨 산행을 시작한다.
비를 뿌리고 싶은지 봉우리마다 머리에 지고 있는 안개가 묵직하다.
포근한 기온이다. 순식간에 천정골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 탐방센터 지나 오르막이 살짝 본색을 드러내자 겉옷 벗느라 정신없다.
행사와 무관한 등산객들은 긴 행렬이 탐탁치 않은지 내게 행사 일정과 코스를 묻는다.
무리는 점차 열列로 맞춰지고 간격이 벌어진다. 그래도 워낙 사람이 많아 제 속도를 내기 어렵다.
틈이 보이면 잽싸게 추월했다. 어쩌다 우리 일행과 떨어지고 말았다. 한 데 물러나 물이라도 마시며 기다려야 하나?
사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발바닥과 발목 태이핑을 하고 나섰다. 한 달 전 공룡능선을 탄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날 이후 증폭된 요통으로 톡톡히 제값을 치르고 있다.
아직 숨도 고르고 힘이 남아 있던 탓도 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면 통증이 없기 때문에 계속 걸었다.
큰배재에서 큰 숨을 돌린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숨을 고르고 있다.
아침에 갈아입을 옷을 챙긴다는 걸 전화 통화하다 깜박하고 말았다.
갈아 입을 옷이 없어 땀 좀 덜 빼려고 천천히 오르려 했는데 몸은 땀으로 범벅되고 말았다.
숨고르는 새 밑에서 잠시 스쳤던 고교동기가 고개에 이른다.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10년 동안 남매탑 상원암 스님들께 식사 공양을 하고 있단다. ‘10년’ 종교를 떠나 대단한 정성이다. 녀석 - 사업차 아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과 인사 나누는 틈에 코 앞 남매탑으로 먼저 향한다.
큰 탑 작은 탑, 남매 사이까지 가득 찬 안개지만 사람들 인증사진 찍느라 얼굴에 함박웃음 가득이다.
친구 덕에 걸으며 숨을 고를 수 있어 길게 시간을 보내지 않고 바로 삼불봉으로 오른다.
한 젊은 친구 헉헉 거친 숨 내쉬며 나를 추월한다. 상당히 가파른 돌계단 길인데 오버하는 것 같더니 금새 좁혀지더니 다시 도망간다. 익숙한 길이기에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려는 나와 거리를 좁히다 벌리며 갑사까지 젊음을 사르며 얼씬거린다. ㅎ
삼불봉... 오를 것인가 말 것인가? 여기까지 왔는데 봉우리 하나 찍지 않는 게 아쉽지만,
1.단체활동이다. 버스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일정이 지체될 수 있다. 2.게다가 여기 온 사람들 산악회 소속이다. 산 타는 사람들이라 금방 예정지로 몰려들지도 모른다.
이런 이타적인(?) 생각으로 삼불봉 고개에서 고개를 돌려 금잔디로 향한다.
‘참 잘했어요!’ 오랜만에 보는 고무도장 손등에 찍고, 운영요원들만 있는 썰렁한 고개에서 멍하니 있기 뭐해 천천히 하산을 시작한다.
천천히 가야 한다.
무겁던 안개가 낙엽에 내려 돌길이 미끄럽다. 자칫 개념 없는 발걸음 한 방에 미끄러질 것 같다.
금잔디고개까지 오르느라 못 본 걸까? 아니면 수종이 다른가?
금잔디고개 근처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하면 갑사로 가는 길 내내 가을빛이 완연하다.
어쩌나 만난 단풍은 화려한 비단이다. 내려앉은 낙엽은 고운 카펫이다.
위험한 곳이나 갈림길엔 노란 조끼를 입은 대회 운영요원들이 서 있다.
용문폭포로 향하는 갈림길, “앞에 4명 지났어요. 5등이어요! 힘내세요!”
용문폭포 근처면 거의 다 오긴 했건만... 5등? 순번을 메기는 대회가 아닌데도 ‘5등’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내 뒤쪽 하산하는 사람들 기척에 흠칫 놀라 마무리 걸음이 빨라진다. ㅋ
폭포를 지나니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과 겹친다. 미끌미끌한 길인데 운동화를 신고 호기롭게 오간다.
갑사를 들렀다. 1603주년 개산대제 행사가 한창이다. 그리 호황은 아닌데도 119구급차와 사설구급차가 대기 중이다.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
갑사 경내 단풍이 일품인데 올해 이상기온 때문에 아쉬움만 가득하다. 게다가 비를 뿌리고 싶어 안달 난 하늘까지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산행 종점 동학사 주차장. 아무도 없다. 1시간을 기다렸다.
오늘 난 뭐 했지? 삼불봉 봉우리도 찍지 않고 성실히 내려왔다. 그저 성실히. 나름 즐기기도 했는데.
오늘 대회 취지를 살려 여유로운 산행을 즐겼어야 했는데, 머릿속을 파고드는 이런저런 일을 되새기느라 결국 아쉬움이 컸다.
일행을 만났다. 이동 인원이 채 차지 않은 버스에 미련을 두지 않고 문화공간으로 단장한 옛 중장초로 걸어가 산행을 마무리한다.
반주로 즐긴 막걸리와 소주 몇 잔에 머리가 띵-하다.
노~오란 은행잎으로 가득한 길을 가르는 205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는 우리 일행 형님들 ㅎ.
교통카드 패드에 수줍게 터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처음 시내버스를 탔던 어릴 적 기분이 났을 것 같다.
버스 환승을 배웅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다.

Climbing_2023-11-04_갑사_가는_길.gpx
0.81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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