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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설악산, 공룡능선

by 여.울.목 2023. 10. 8.

 설악산 공룡능선

 
소공원 – 비선대 – 천불동계곡 – 무너미고개 – 공룡능선 – 마등령 – 비선대 – 소공원
2023.10.07.(토) 03:00~

21.24km
2.1km/H, 10시간
내리막 8.52km, 오르막 10.64km
최고 1,289m

단풍 - 볼만하다. 몇 주 후 절정일 거 같은데 사람이 많을 듯
가능하면, 금강굴 → 마등령 방향이 좋을 것 같다. 화끈하게 오르고 전반적으로 내리막을 즐기는 게 좋다.

Climbing_2023-10-07_설악산_공룡능선.gpx
2.20MB



 
‘딩딩-디리링~ ♬’ 새벽 2시, 양쪽 방 휴대전화 알람이 동시에 울린다.
훈련병처럼 벌떡 일어나 대충 씻고 정성스레 테이핑 후 배낭을 메고 리조트 문을 나선다.
 
연초부터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볼 셈이었다. 추위와 산불통제 핑계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산악회 밴드에 속속 올라오는 공룡 조우 소식에 맘이 급해진다. 혼자라도 움직여야 한다.
지긋지긋한 요통에 장거리 운전을 피해 서울~속초 고속버스와 쏘카를 이용하기로 계획한다.
교통혼잡까지 예상해 타임테이블 완성했다.
나이 들어 그런지 설렘보다 불안이 크다.
연습이랍시고 공주대간과 봉화대를 찾은 덕(?)에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려 더 불안하다.
이틀 전 폭음에 컨디션은 대체로 꼬임 ㅠㅠ.
다행이다. 공룡 이력(10년 전) 있는 ‘1번무전기’ 같이 가자고 한다.
차량을 운행한댄다. 땡큐다.

 
수치상으론 3시간인데, 잘해야 1시간 잔 것 같다. 5시간 가까이 운전한 1번무전기 끄떡없어 보인다.
소공원 입구부터 정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차장은 거의 차 있다.
새벽 3시 산행 시작. 생각보다 춥지 않다.
가로등과 이별하니 총총한 별이 더욱 초롱초롱하다.
맑은 공기와 진한 검정 바탕에 반짝이는 별빛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이 새벽 비선대까지 3.5km 이상 줄지어 걷는 많은 인파, 20km 이상 걸을 건 아는지 초입에 씩씩하기만 하다.
이런~ ㅠㅠ 비선대에서 무심코 천불동계곡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화살표   섞인 금강굴 이정표 가리키는 곳은 돌 축대였다.
철책 사이 활짝 젖혀진 문으로 더 가면 금강굴 길이 나올 것 같더라. 1번무전기에게 확인차 물었는데 덩달아 직진하자고 한다. ㅋ
그래야 천불동-금강굴 양방향 모두 한 곳에서 통제되는 거 아닌가?
너무 논리적으로 생각했나? 게다가 우리 주변 사람들 모두 철책을 통과하는 거야...
-헤드렌턴 좁은 시야 탓에 석축만 보여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으로 보였다.
-비선대에서는 좀 쉬어가며 길을 잘 살피시길...
 
어느덧 우리 앞뒤로 있던 사람들 사라지고 둘만 덩그러니.
돌이킬 수 없는 지점, 1번무전기 曰 “길이 왜 이리 좋아졌지?” 설마... Locus Maps에서 위치 확인.
남들처럼 반시계 방향으로 완만한 하산을 계획했건만 ㅠㅠ.
실망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걸음에 집중한다.
하산길 무릎 통증 예방으로 걸음마다 엉덩근육을 쓰려 애쓴다. 스틱이 어둠 속 균형에 많은 도움을 준다.
새벽길 어둠으로 계곡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쉽다만,
그 많은 인간에 치이지 않고 계곡과 별빛 달빛을 제대로 느끼며 한땀 한땀 전진한다.
그동안 많은 비로 능선 코 앞 계곡까지 활기차다. 랜턴만큼 보이는 시야지만 깎아지른 비경 틈의 웅장한 폭포와 별빛 아래 봉우리 - 청각만으로도 행복하더라.
아직 숙면 중인 양폭대피소에서 숨을 고르고 눈앞에 보이는 능선을 향한다.(지도 보니 맞은편에 음폭포가 있더라)
천당폭포 아찔한 데크길 칼 진 바람의 여운도 잠시, 걸죽한 오르막 잔치다.
회운각 바로 밑 ‘부내고개(무너미고개)’까지 어찌나 가파름이 쉼 없던지. 발걸음이 무겁다.
 
오르며 땀 흠뻑 쏟고 부내고개서 속까지 비우고 나니 날이 훤히 밝았다. 나무 사이로 비구름 걸친 대청봉 치마폭에 물든 단풍이 보인다.
이제 공룡 시작이다.
10km 거의 쉼 없이 오르고 올랐건만 또 오르막 - 미치겠다. 포기할 수도 없다.
힘들게 했던 요 녀석 ‘신선대’, 피곤이 싹~ 사라진다.
공룡능선, 동해바다, 대청과 용아장성, 멀리 울산바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들 포토 타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쥑~이는 공룡능선. 보임에 가장 높이 봉긋한 봉우리 1275봉과 그 무리, 우측으로 나무 없이 따로 떨어진 범봉, 뒷줄에 마등령까지.
그런데 문제(?)가 있다. 보통 등산로는 저런 봉우리를 비켜 가는데 여기 공룡능선은 최정상 빼고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오른다.
때마다 웬만한 산 하나씩 너머야 한다.
 
그래도 우뚝한 1275봉 근처까지는 갈만하더라.
아침 식사도 하며 지나는 절경에 감탄만 하면 된다.
하지만 오르막.., 젖산으로 가득한 몸뚱이가 오르막마다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대단하다.
아스피린(500mg) 한 알씩 털어 넣는다.
1275봉 근처에 다다르니 역방향? 아니 순방향으로 도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몰려든다. 난코스엔 줄 서서 기다릴 정도다.
단풍 성수기를 피하길 잘했다.
 
1275봉을 지나면서 등 뒤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던 봉우리들이 새롭게 등장하며 또 다른 멋을 풍긴다.
‘전우치전’이나 ‘머털도사’ 영화 속 신선 살던 콧대 높은 막대 봉우리~ 힘든 거 빼고는 절경이 일품이다.
이 구간 최고봉 나한봉(1,297.4m) 무렵엔 인파도 최고조다. 곳곳에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역방향 진행 덕분(?)에 우리보다 1시간 반가량 늦게 출발한 산악회 회장님 일행(父子)과 - 필연적으로 - 만났다.
전날부터 안산-즐산 파이팅을 공유했다.
차량에서 짧은 수면 후 산행하는 일정으로 1시간 텀을 둔 순환 버스처럼 산에서 만나기 불가능했는,
금강굴을 그냥 지나치는 우연이 필연을 만들었다.
반가움에 거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까지 벌었다.
 
나한봉 지나 마등령에 다다른다. 14km, 7시간 넘게 왔다.
이제 마무리다.
내리막만 남았는데, 둘 다 혹여나 있을 무릎 통증 걱정에 한숨이다.
無통증을 목표로 여유 있게 쉬엄쉬엄 내려서기로 한다.
내리막도 가파름에 길다. 금강굴 근처에 다다르는데 아직도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쩌려구...' 이젠 남들 걱정까지 하는 여유? ㅎ
비선대 지나자 관광 모드의 사람으로 가득이다. 가족과 연인들.
 
1번무전기 고맙다. 덕분에 편케 다녀왔어.
가는 길엔 직장 이야기로, 등산길엔 산행 이야기로, 오는 길엔 군생활 이야기로 무료함을 달래주고...
뒤풀이, 동태탕에 캬~ 소주로 통증도 달래주고...
 
1번무전기말처럼 10년쯤 지나면 육체적 통증은 까맣게 잊고 멋진 풍경만 남으리라, 그때 다시 오자구.
중간이라도 맘 변하면 또 오면 되고.
공룡능선에 60대 연령도 많더라. 산악 구보하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 웃고 떠들며 지나더라.
우린 너무 ‘속도’에만 집착했나 보다. 천불동~부내고개까지 오르막 10km, 경쟁하는 사람도 없던 여유로운 길인데 왜 그리 달려 본 게임(공룡능선)에서 인상 팍팍 썼을까? ㅎ
한편으론 걱정을 과하게 한 것 같다.  때문에 페이스 조절 잘 해서 아프지 않게 내려왔지만, 준비한만큼은 날 믿고 즐길줄도 알아야겠어.

힘들었지만 멋진 풍경과 함께 많이 느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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