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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대중교통] 금정산 산행이야기_2013.04.11.

by 여.울.목 2014. 9. 3.

*산을 오르는 이유?

한 시간만 더 자고 싶은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어젯밤에 꾸려놓은 배낭에 마지막으로 보온병을 챙겨 집을 나선다. 춥다. 차 위에는 하얀 눈이 쌓였다. 현충원역, 아무도 없다. 문득 벽에 붙어 있는 글귀에 눈이 간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 방황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자는 뜻이려니. 어쩜 바람직한 방황을 통해서 안식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가고픈 맘이 솟는지도 모를 것이다.

언젠가 병진이가 sanjoa홈피에 산에 오르는 이유는?”라는 화두를 던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입장에서 그 합리적인 이유를 대야만 할 것 같았다. 구구절절 벅벅 긁어 올린 이유들... 졸작이구나. 아마 맘에 와 닿는 답이 없었기에 홀연히 sanjoa를 떠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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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액자에 걸린 괴테의 말을 보면서 문득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방황하기 위해서다 - 떠오른 생각. 난 언제나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상처를 입기도 하고, 그 상처를 때우는 방법이야 사람마다 어떤 일탈을 통해서 해소하려고 하겠지. 아마도 난 그 일탈을 산에서 한 것 같다. 그래 난 방황을 한 거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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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7현충원역 06:32대전역(KTX) 08:17부산역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범어사역, 90번 버스 환승, “산행”, 온천장역 부산역

15:15부산역(무궁화) 18:41대전역 30현충원역

KTX 31,400| 무궁화 17,000| 90번 버스 환승(무료) | 부산, 대전 도시철도 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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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는 무작정 빠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4월의 설경 때문에 뻑뻑한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수 없더라. 내 눈은 호사하는데 꽃을 피운 식물에겐 곤욕일거다. 밖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덧 금정산 제일봉 고당봉이 보인다. 순식간에 기차는 땅 속으로 숨어든다. 터널은 계명산 근처부터 시작해서 금정산 산줄기 밑을 기어 단숨에 부산역에 들이닥친다. 뭔가 아쉽다. 귀향길엔 무궁화를 타 그 아쉬움을 달래보자꾸나.

*목돈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은 타 도시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 동래역부터 노포동 종점까지는 온천천을 따라 철길과 역사가 지상에 올라와 있다. 종점 바로 전 범어사역에서 내려 걸어서 한 5분을 올라가니 범어사행 90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3km의 구간만 왕복하는 것 같은데, 그냥 걸어갔다간 한참 힘 뺐을 것 같다. 범어사는 진입 차량에 대해서만 3,000원을 받는다. 단지 문화재관람료를 따로 받지 않는데 목돈 아낀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성곽 따라가기

범어사에서 시작된 산행 길은 널따랗게 잘 닦여 있다. 생태 복원과 상수도 복원을 위해 곳곳에 입산통제를 위한 금줄을 쳐 놓았다. 그래도 아무리 잘 닦여 있어도 산길은 산길이다. 범어사부터 고당봉까지는 육산이고 상수원이기에 물 또한 풍부하다. 오르막이 헐떡거리는 품세가 이제 능선이 시작될 것 같더니 바로 앞에 골격 좋은 고당봉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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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봉-원효봉-의상봉-대륙봉-금정봉, 금정산 전체는 육산이 분명하다. 하지만 봉우리는 대부분 그 암릉으로 흙이 침식되어 골격만 남은 모습이다. 그 봉우리 사이를 뼈대처럼 이어 놓은 것이 금정산성 성곽이다. 임란과 호란을 겪고 난 뒤 금정산의 봉우리들을 볍씨모양으로 둘러쌓은 것이 우리나라 현존 산성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

가장 가슴 벅찬 감동을 준 부분은 범어사에서 고당봉을 올랐을 때이다. 부산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부산 시가지는 금정산줄기를 따라 회동지라는 호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바닷가를 향해 자리를 넓혀 잡고 있으니 분명 이 산이 풍수상 진산(鎭山)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불쑥불쑥 튀어 나온 암석은 겸연쩍을 것 같지만 봄꽃과 주변 나무와 어우러져 잘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요놈의 바람은 오늘만 그런 거냐 원래 그런 거냐? 세차게 불어 내 쑥스런 머리를 헝클고 만다.

 

  

*코스를 잘 선택했다

고당봉까지 오르는데 땀을 좀 뺐지만 이제 성곽을 따라 걷기 알맞은 오르락내리락 이다. 성곽은 보통 1.5~3m의 높이라는데 대부분 1.5m를 넘지 못한다. 공주산성에 비해 규모는 크지만 관리는 잘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한창 성문과 망루를 중심으로 복원사업을 하는데 억지로 옛 성곽흉내를 내려고 하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북문을 지나자 성곽 보호를 위해 성곽 주변을 따라 걸을 수 없게 대부분의 지역에 금줄을 쳐 놓았다. 원효봉을 지나 제4망루까지는 주변에 커다란 나무가 없다. 거센 바닷바람 때문인지 누군가 산에 불을 내서 그런 건지 억새만이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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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을 지나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은 대륙봉으로 이어져 금정봉까지 이어지는 데 난 남문 근처에서 금강공원 쪽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거친 오르막 내내 산성이 끊어질 듯 계속 이어지는데, 땀을 뚝뚝 흘리며 으름에 절벽 위 몇 무더기로 남아 있는 성곽잔해를 보자니 여기까지 올라와 돌을 쌓았을 민초들의 고통은 어땠을까? 고생한 내 몸뚱이를 위해 케이블카로 호강시켜 주려했는데, 사고 난 후로 아직도 보수공사 중이다. ~ 이리도 내리막이 고단하냐? 정말 코스를 잘 선택했다. 거꾸로 잡았다면 내내 힘들기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당봉801-원효봉687-535고지-2망루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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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은 부산 시내를 보고픈 마음에 무궁화를 타기로 했다
. 헌데 KORAILKTX우선 정책으로 다른 기차편은 드문드문 있다. 얼결에 휴대전화로 15:15무궁화호 발권까지 하고나니 맘이 급해진다. 점심을 생략하니 시간은 꽤 줄어든다. 지친 근육을 위해 빵으로 탄수화물을 보충, 맥주로 고단함을 달래고 창밖을 본다. 분홍과 연두색의 향연이 한창이다. 기차간에선 내리 쬐는 햇살 때문에 시원한 바람이 그리웠는데, 대전역에 내리니 사람들 옷차림이 겨울이네, 부산과 대조적이다. 하루 잘 놀고 왔다. 그래도 내 집이 최고다. 출퇴근할 때 등산차림으로 나서면 되게 남들이 부러워할 줄 알았는데... 나만 이상한 놈이 된 것 같아 되레 당하고 만 것 같다. 내일은 출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