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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가을 마곡사와의 만남

by 여.울.목 2014. 10. 26.

지난 금요일 업무 때문이지만

가을 단풍에 흠뻑 취해 돌아오고 나니

 

아이들에게 괜한 미안함에 가까운 사찰이라도 찾아 거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고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항금빛 들녘을 여유 있게 가로지르니 아이들도 기분이 한결 좋아보인다.

 

가을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으로 마곡사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에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지, 차를 다시 돌려 나오는데만도 몇 십분이나 걸렸다.

 

길가를 기웃거리며 어색한 자리를 찾느니 좀 걷자는 생각으로 마곡초등학교 교정 신세를 진다.

 

사찰을 드나들며 매 번 느끼는 것,

참 입장료 내가 아깝다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여긴 카드 결재도 않는다니... 여기저기 세입재원이 낭비되는 건 아닌지. 내가 좀 심했나? ㅋ

 

그래도 오늘은 돈 아깝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오늘부터 11월 2일까지 '군왕제'라는 행사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곡사 뜰 여기저기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색 있는 다양한 사투리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 것 같다.

 

이제 마곡사의 가을을 좀 들여다 볼까?

 

청자기와가 있는 건물 앞의 돌탑

우리 아이들도 뭔지 잘 모르지만 자기들만의 소중한 것을 이루기 위해 탑돌이를 했답니다.

 

탑 옆으로 항상 기도 중이라면서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오늘은 활짝 열렸죠.

그래서 발을 들여 놓자마자 제 키보다도 큰 황토굴뚝에 매달린 큼지막한 수세비가 빙그레 웃으며 반겨주더군요.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고생창연하고 투박한 건물

곳간 같다. 이제는 잡다한 물건만 쌓아 놓는 것 같은데, 투박한 나무기둥과 판재에 단청도 없이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 어찌나 정감있던지.

 

곳간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통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들었는데,

멀리서 보면 켜켜이 나무 조각을 쌓아 만든 것 처럼 보인다. 

 

불교미술작품 전시가 있는 건물로 신발을 벗고 올라섰다.

그림을 둘러보고 차마시는 곳으로 들어서자 동쪽 벽 한 곳에 치장도 하지 않았는데 우아함이 철철 넘치는 진열장이 들어온다.

요즘 나무를 조금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가구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하다만,

참~ 뭐랄까 예쁘다고 하기는 투박하다고 하기는... 단아함?

그냥 보기 좋다.

그래서 한 컷 찍어봤다.

 

다기 진열장을 중심으로  차마시는 공간에서 오른 쪽으로 세로로 내 키만큼이나 커다란 그림이 발길을 잡는다.

한지의 고유한 질감을 잘 살려낸 감동적인 그림이다.

뭔가 깨달은 느낌이 삐쭉 솟아 있는 동자의 머리털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냥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왼 쪽에 있는 그림이다. 벽에 붙여 놓지도 않고 피곤했으니 이제 조금이라도 쉬라는 듯이 편안하게 방바닥에 눕혀 놓은 그림이다. 머리는 처용의 뭐 그런 머리모양이고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모양이다.

뭔가 종교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거 몰라도 화가가 그림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고픈지, 무엇을 소원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아무 때나 개방되는 문이 아니기에

대웅전을 바라보는 이 각도도 아무 때나 볼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되니 자꾸 사진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몇 컷이나 찍어댔다.

왼쪽의 투박한 곳간과 오른쪽 누렁이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거처 사이로, 언제나 뒤에 숨어 있는 대웅전이 고색창연한 빛으로 내 발길을 잡아 세우고 있다.

 

마곡초등학교에서 마곡사로 올 때도 징검다리를 건너고,

마곡사 경내로 들어 올때도 징검다리를 건너고,

김구선생의 삭발바위를 가는 길에도 징검다리를 건넌다.

 

아이들이 요즘 흔치 않는 징검다리 건너는 즐거움에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한 모습을 짓는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따로 없다. 

 

 

송사리 떼가 훤히 보이는 맑은 물가 징검다리 위에서 익살스럽게 우리 가족이 파이팅을 외친다.

 

오늘,... 주차를 하느라 고생하고, 많은 인파에 짜증스럽기도 했던 일들은 그저 가을과의 멋진 만남에 너그럽게 용서를 할 수 있구나.

딴에도 한껏 단풍을 뽐내고 있는 마곡사 교정에서 큰 아이와 캐치볼을 하노라니,

작은 아이는 엄마와 쪼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땅위에 그림을 그린다.

내 어릴적 노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서는 보기 참 힘든 세상으로 바뀐 것 같다.

오랜만에 마음까지 차분하게 치유를 하고 온 날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