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박석무 옮김
(주)창비
1999.12.10.초판1쇄/2014.10.28.개정2판22쇄
우리 조상의 글(정약용)인데 옮긴이(박석무)가 있다는 것에 의아한 생각이 든다만, 한자로 되어 있는 선생의 글을 후대에서 조심스럽게 한글로 풀어썼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자.
1999년에 초판이 나온 이후로 2014년까지 14년 동안 조금씩 고쳐가면서 책머리에 옮긴이의 들어가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온다. 책의 내용을 읽는 것 보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역자의 이야기가 더 고역이었다고나 할까?(농담) 그만큼 책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온 것 같다.
더군다나 2010년대 이후로는 공직사회에 불어오는 청렴(淸廉)이라는 것 때문에 공직자라면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에 대한 내용을 사이버연수를 통해서라도 한번쯤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수원 화성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짧은 기간 내에 견고하게 만드셨고, 한자가 생겨난 이래로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기신 분으로 알려져 있으니 자연히 경건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 남다른 관심 때문에 이 책의 표지를 여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옮긴이가 우리교육청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한창 이러저러한 일로 도내 교육계가 꽤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모신 강사였다.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으신 호남 출신으로 국회의원까지 지내신 분이라 나름 자부심도 강하신 것 같더라. 처음부터 못난 학생을 혼 내는듯한 지위 높은 교수님 같더라.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야기며 청렴에 대한 이야기며, 다산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연세 지긋하신 분이 말씀하시는데 그 이야기는 높고 높은 곳에 있는 또 다른 무엇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점점 다산 정약용 선생의 것들이 교과서에 나오고 청렴의 대명사로 나올 정도면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할만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이질적인 감정을 넘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던 것 같다.
청렴한 대 학자의 사상이 담긴 책이라니 감히 열어볼 수나 있겠어? ㅋ
힘껏 양장본 표지를 젖혀 읽어감에 첫 느낌은 소문난 잔치에... 바람 빠진 공 같다는... 뭐 대충 그런 감이었다.
이 책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과 두 아들에게 보낸 가훈, 형님과 오고간 글, 제자들에게 보내는 스승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모아 엮은 책이다.
그렇게 총 4개의 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놓았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소제목과 내용이 그렇게 딱 맞는 것만은 아니다. 편지글 이다보니 선생이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레 풀어나갔을 터인데, 옮긴이는 그래도 주제를 잡다보니 짜임새 있거나 치밀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게다. 다만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할 일은 절대 아니다. 그냥 개인의 편지글이니까.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과 가훈이라는 글을 읽어보니 다산 선생이 귀향을 오게 되어 폐족이 된 가문을 걱정하는 마음에 오매불망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학문에 전념하기를 바라고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 담겨져 있더군.
그 마음.
세상 보통의 어느 아비와 다를 바가 없더라. 요즘은 옛사람들이 팔불출이라고 할지언정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칭찬과 긍정의 메시지를 많이 전해야한다는 것이 대세인 데 비해, 200여 년 전의 아버지라 그런지 다정다감보다는 강직한 아비로서 모자라 보이는 아이들을 꾸짖고 달래는 어찌 보면 딱딱하기 그지없는 편지다.
만약 오늘날의 아이들이 그런 편지를 받는다면, 솔직히- 성실한 아이라면 많이 스트레스 받았을 터이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체념한 아이라면 더 삐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산 선생의 높고 높은 생각을 조금이나마 본받기 위해 어렵게 책을 열었는데 평범한 아비의 훈계만 이어지니 조금은 시시하기도 하고... 김 샌 기분이 들 것이다.
-독서와 학문 독려
책 읽는 것에 대한 많은 당부를 한다. 이 책은 어쩌고 저 책은 어쩌고 아는 것이 많은 아버지로서는 독서에 미흡한 두 아들과 일족이 폐족으로 그냥 시골에서 묻혀 지낼까 무척이나 걱정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지 않음에 대한 꾸지람과 독려가 계속 이어진다.
중국의 것들 말고도 삼국사기 고려사 국조보감, 여지승람, 징비록, 연려실기술, 유득공의 16국회고시 등 우리 서적에서도 역사적인 사실을 인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중국의 것만을 숭상하는 보통의 유학자와 달리 생각하는 다산의 역사에 대한 관점
독서 말고도 시골에서 살면서 과일, 채소, 약초를 재배하라는 권고를 한다. 아마 가정경제를 걱정해서 그랬을 것이고, 무엇보다 한 치의 이익을 위해서 악을 쓰는 장사치가 되는 것을 많이 경계했는데 그것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나름 고상한 일을 권하는 것 같다.
-술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량만 아비를 훨씬 넘어서는 거냐?’라는 말이 나온다.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고,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흉패한 행동은 술 때문이라고 경고한다.
-주변 나라에 대한 식견
귀향을 와 있으면서도 국제 정세에도 민감하게 생각을 한다. 특히나 예로부터 무지했던 일본의 학문이 조선보다 능가하게 되어 부끄럽다는 글이 나온다. 좋은 것을 받아들여 변화해야 하는 이유를 간접적으로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리학에 대한 태도
옮긴이의 주석에는_ 주자는 인•의•예•지를 모두 ‘이’로 해석하여 주자학 즉 성리학을 수립하였으며, 다산의 경학 사상은 바로 이점을 반대하고 비판함으로써 시작되는데, 담談리 설說리를 비판하여 인•의•예•지란 실천에서 오는 것으로 본 것이다._ 과거 전통적인 유학사상을 떠나서 시학사상의 요체를 이루는 것이다.
사대부의 기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신분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느껴진다.
하지만 선생의 넓고 깊은 생각은,
형님과의 편지글에서 은연중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때로는 풀어서 옮긴 내용인데도 어려운 한자말을 구절구절 이어 놓은 것을 앞과 뒤 문맥으로 대충 이어 이러하겠지 하며 얼버무리는 식으로 책장을 넘기는 부분이 많았다. 실제 책을 읽으면서 포털사이트의 사전에서 낱말을 찾아가면서 읽었는데 나오지 않는 단어도 많더라.
다산의 생각과 업적이 중심이 된 책이 아니지만 책의 세 번째 묶음인 형님과의 편지글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만으로도 그의 넓고 깊은 학문의 세계를 대충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조선이라는 성리학이라는 틀 안에서 뭔가를 가두어 두려고 한 점은 분명하다. 아마 그런 면에서 1,2부에서 갑갑하게 여겼던 것이 계속 이어지니 요즘 세대의 사람들이 다산 정약용의 개혁적인 이미지에 비해 헷갈려 할 부분일 것이다.
옮기신 분이 이런 난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도 해설 차원에서 실어 주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금씩 다산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을 여는 말과 각 부를 시작하는 속지의 후면에 간략하게 써 놓기는 했지만, 옮기신 분의 시각 말고 읽는 한글세대의 눈높이로 이야기해주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 내용에 자주 소개되는 예(禮)에 대한 선생이 사고가 진보적인 것인지 옛 것 즉, ‘주자학이 맞다’는 것인지 문장을 되짚어 읽어보아도 그 말이 그 말 같아 그냥 책장을 넘기 부분이 여럿이다.
-요순시대에 대하여
요즘 사람들이 순임금께서는 옷소매를 드리우고 팔짱을 낀 채... 근엄하게 앉아 계시기만 했는데 온천하가 저절로 태평스럽게 다스려졌다고 여기는 것이야 말로 꿈속을 헤매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_ 관리들이 직접 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고하는 ‘고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의 통치와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무얼 얼마나 하고 있는지 두루 살핀 이야기 같다. 뭐든 그냥 이루어지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야한다는 뜻으로 와 닿았다.
-밥 파는 노인에게서 배웁니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어쩌구 했다가. 노파의 말에 공감하는 대목이 있다. “선생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풀이나 나무를 예로 들어, 아버지는 나무나 풀의 종자입니다. 어머니는 나무나 풀로 보면 토양입니다. ...” 선생이 노파의 말에서 천지간 지극히 정밀하고 오묘한 진리를 밥 파는 노파에게서 나왔다고 놀람을 금치 않는다.
그리고 중국에서나 들어오는 고운 빛깔의 염색이 평범한 풀이나 나무에서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귀향살이를 하면서 몸소 깨닫는 면에서,
지극히 근본적인 것이 책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군.
-시골장터의 술에 대한 비판, 나아가 상업도 경시하는 것 같더라. 아무래도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사상을 지니고 계셨던 것 같다.
-지구가 둥글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지도를 제작할 때 그 구면에 대한 이치를 모르면 커다란 오차가 생긴다고 과학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지구가 움직여서 그렇다는 형의 의견에 별이 움직여서 그런 것이라고 과학적으로 설명을 한다. 지구가 움직이기는 하지만, 오랜 관찰을 통해서 별 역시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더불어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것은 명백히 궤도상 일어나는 현상을 재앙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 시절에 그런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니 대단하다.
-과학적인 태도와 달리 예(禮)에 대해서는...
-주역에 대하여, 무릇 하늘을 섬기는 사람만이 점을 쳐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깊이 있는 말과 오묘한 뜻에 대해 단서만 살짝 드러내어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게 하였는데, 지금은 너무 자세하게 밝혀놓았으니 깊이 후회한다고 했다. -숨겨진 것 없이 모두 훤히 드러나 볼 수 있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의 본성이 원래 약하기 때문
다산은 하느님께서 이곳 다산을 제가 죽어서 묻힐 땅으로 정해주셨으며... 그러나 한편으로는 돌아가고픈 심정도 사라진 적이 없으니 사람의 본성이 원래 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라고 한다.
분명코 간음이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아내나 첩을 도적질하려 하고, 생계가 파탄남을 알면서도 마작을 하는 수가 있듯이, 저에게 돌아가고픈 마음도 이런 유의 심정이지 어찌 본심이겠습니까? 다산 선생의 이성적인 면과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엿보인다.
-하늘의 도는 넓고 넓어 결코 베푸는 일에서만 보답 받지는 않는다.
그런 이유로 옳은 사람들은 보답 받을 수 없는 일에 은혜를 베푸는 일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동쪽에다 베풀어도 보담은 서쪽에서 나오기도 한다.
몸소 행하는 일이 공손하고 예의가 바르면 훌륭하다는 칭찬이 나오고, 훌륭하다는 치안이 나오면 하늘의 복록이 이르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공자는 『논어』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라고 말했다. 知者利仁
4부에 들어서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이 책의 의도를 대략 이해했기 때문이다.
4부에서 비로서 청렴(淸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부를 위해 삶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 시린 가슴으로 말도 해준다. 과거제도와 같이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서 푸념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솔직히 전하기도 한다. 품은 생각은 있지만 아무래도 선생은 성리학이나 충효와 조선이라는 나라와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그 무엇까지는 거북스럽게 헐어내고 싶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을을 다스리는 방법 廉
재물에 廉, 여색에 廉, 직위에 廉을 실천. 廉은 밝음을 낳아 사물이 情을 숨기지 않을 것이요. 廉은 위엄을 낳으니 백성들이 모두 명령을 따를 것이요. 廉은 곧 강직함이니 상관이 감히 가벼이 보지 못할 것이네. -소현령이 부구옹(옛 선인)에게 고을을 다스리는 방법을 물으니 어렵게 답한 내용-
-봉록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겨라
봉록과 지위 보전 때문에 상관이 엄한 말로 나를 위협한다고, 간리가 비장하여 나를 겁주는 것이요...
-사사로운 일에는 형벌이 없어야 한다.
-나에게 있는 것을 주기보다는 빼앗지 않는 것이 낫다.
-공부하는 방법
옛날 서적이 많지 않을 때는 독서하여 외우는 데만 힘써도 → 지금은 많으니 마땅히 숙독 해야 → 뜻을 강구하고 고찰하여 깨달았으면 수시로 기록해야 실제 소득을 얻는다.
-문장이란?
학식이 속에 쌓여 그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네. ... 어찌 기괴한 문구의 탐색만으로 이른바 문장이라는 것을 찾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겠는가? 323P
-문장을 이루는 법
사람에게 있어서 문장은 풀이나 나무로 보면 아름다운 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나무를 심을 때 그 뿌리를 북돋아주어 나무의 줄기가 안정되게만 해줄 뿐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나무에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면 그때에야 꽃도 피어난다. 꽃을 급히 피어나게 할 수는 없다. 정성스러운 뜻과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를 북돋아주고, 독실하게 행하고 몸을 잘 닦듯이 줄기를 안정되게 해주어야 한다.
... 그 깨달은 것을 유추하여 쌓아두고 그 쌓아둔 것을 펼쳐내면 글이 이루어진다. 그것을 q는 사람이 문장이 되었다고 인정하게 되니, 이것이 문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쉽게 넘겨진 페이지. 처음엔 실망스런 맘도 있었지만 책의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는 그 시대에 내 생각의 눈높이를 맞추어 읽어가니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구나. 귀향이라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한시도 가족에 대한 마음을 놓지 않고, 주변 사람과 백성과 나라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학문에 대한 탐구를 놓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의 정약용을 다시 생각해본다. 다산 정약용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후니의 책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으로 숨쉬지 마라 (1) | 2015.07.16 |
---|---|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0) | 2015.06.29 |
매력적인 장 여행 (1) | 2015.05.11 |
그때 장자를 만났다 (0) | 2015.04.10 |
생각의 힘을 키우는 고전 공부법 (0) | 2015.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