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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계룡산 | 갑사-수정봉-자연선릉-문필봉-연천봉-신원사

by 여.울.목 2017. 10. 3.

9월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잔인한 달이었다.


그 와중에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상큼한 기대를 갖게 해준 것이 "칠선계곡"산행이었다.

선착순인데 사무실에서 관리공단 사이트에 접속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이 어찌나 사치였는지...

아무튼 산악회 선배의 도움으로 운 좋게 티켓은 얻었다만,

산행 전날 악천후로 탐방이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통보되고 말았다. ㅠ_ㅠ


아쉬운 마음 한 켠에는 근 한 달간 몸과 맘이 많이 상해 있는 상태라 과연 산행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속으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하는데...

남들처럼 멀리 계획을 세워 가기엔 시간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들어맞지 않는다.


언제나 포근하게 반겨주는 계룡산이 있다.


320번 갑사행 버스에 오른다.

버스 좌석은 만원이다. 추석을 며칠 앞 두고 있어서 그런지 10시 버스는 벌써 귀가하시는 부지런하신 어르신들이 가득하다. 갑사 주차장까지 내내 서서 가야만 했다. 



2017-10-02_10-34-43_계룡산.gpx






버스를 타고와서 주차료를 내면서 인상을 찌푸릴 일은 없어졌다만,

어김없이 지불해야하는 통행료 3,000원...



나 같은 사람은 사실 문화재 관람할 생각도 별로 없는데...

3,000원을 냈으니 사진이라도 찍고 넘어가야 하나? ㅎ


얼마전 이런 문화재 관람료 관련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사찰의 주된 수입이 이것이라고 한다.




금잔디고개로 올라가는 길에 새로 지어진 갑사의 건물마다 우악스럽게 발라진 단청이 왠지 그리 정감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용문폭포를 지난다.

박찬호가 1박2일에 나와서 야구 잘 할 수 있게 심신을 단련하느라 입수를 했다는 그 폭포다.

어제 칠선계곡 길을 막아섰던 비 때문인지 그나마 물줄기가 좀 힘을 내서 내려치고 있다.

지금은 이 폭포를 지나는 길은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는 대신 막아 놓아서 

금잔디고개를 넘나들려는 사람들이 일부러 이것을 보기 위해 몇 십미터 산길을 오가는 수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폭포를 지나서 계곡을 따라 꾸역꾸역 길을 잡아 올라가다보면 신흥암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용문폭포와 마찬가지로 많은 등산객들이 금잔디 고개를 목표삼기 때문에 벤치에는 걸터 앉아 땀을 식힐 지언정 암자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20년 쯤 되었나? 공주대학교 산악부 출신 입사 동기와 여기를 찾아 수정암 암봉에서 유격훈련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때는 그냥 지나쳤던 천진 보탑이 신흥암 뒤편에 위엄 있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천진보탑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쌓은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천연의 탑이라고 한다.

기도도량인지 비질을 너무나 깔끔하게 해 놓은 마당의 깔끔함에 내 터럭 하나라도 흘리고 가면 죄송스러울 것 같더군.


* 천진보탑에 대한 지난 번 글 http://yyh911.tistory.com/81




水물 수 晶밝을 정 

디지털공주문화대전에 따르면,

수정봉이란 명칭은 전국의 많은 산봉우리에 쓰이는 이름이지만, 특히 금강산 외금강의 한 봉우리의 명칭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보통 수정봉이란 이름은 봉우리가 수정처럼 곱다 해서 수정봉이라고 불리며, 계룡산 수정봉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천진보탑 바로 윗 쪽 커다란 바위에 누군가 수정봉이라는 글씨 아주 굵직하게 세겨놓았더군.

김씨 집안의 삼형제가 범인인것 같더군. ㅋ



수정봉을 이루는 여러 암봉을 오르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

험하디 험해서 그런지 사람의 발길이 그리 많지 않은가 보다.

그런데, 여기서 수양을 한다고 지어 놓은 움막이나 텐크가 2곳이나 된다. 혹시나 이 시간에 아직 잠을 자고 있지 않을까, 내 움직임에 잠이나 기도에 방해될 까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어본다.


비는 그쳤지만 아직 그 구름이 봉우리에 걸쳐 있어서 사위가 안개인지 구름인지 가득하다가도 바람이 휘~ 불면 금새 파란 하늘을 보여준다.

그러다가도 심술이 풀리지 않으면 다시 인상을 구겨대면 온통 안개로 세상을 가득 채우고만다.





아직 나뭇닢에 맺혀 있던 빗방울들이 내가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우두둑 떨어진다.

땀이며 빗방울이며, 안개며 온통 범벅이 되어 수정봉에 다다른다.


잠시 개었던 하늘이 금새 심술을 부려 온통 뿌연 안개로 수정봉을 포위한다.

음침한 기운 때문에 빨리 금잔디고개로 내려서고 싶은 맘이 앞선다.



금잔디 고개에서 도시락을 까목고는 삼불봉으로 향한다.

끼니를 치르고 나면 발걸음이 더 무뎌진다.

삼불봉이 보여주는 탁트인 풍광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인석들이 심술을 부려 쿨하게 맘을 접어야 했다.



계룡산의 자연선릉을 걸으면서 뿌연 구름과 안개에 홀린듯 걸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군데군데 성질급한 단풍나무가 시간을 제촉하고 있다.


매 번 자연선릉에서 즐기던 천황봉, 황적봉, 치개봉의 모습도 오늘은 하늘의 심술 덕에 참 귀하게 느껴진다.


관음봉으로 오르는 철계단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저길 그냥 기어 올랐는데, 계단이 가득 들어차서 요즘에는 병목현상이 그리 심하지는 않다.






지루한 철계단을 지나 거친 숨을 가다듬고는 이제 숨을 돌릴만도 한데,...



문필봉과 연천봉이 내 피를 끌어오르게 한다.




사실 오늘은 날이 변덕스러워서 문필봉을 비껴가려고 했다.

그런데 자꾸만 끌린다.

산 허리를 돌아가는 탐방로가 자연스럽게 능선을 향해 올라서는 것이 보인다.

어찌할까?

---

관음봉에서 꾹 참았던 맘이 금새 해제되고 만다.


능선은 누가 일부러 산성이라도 쌓은 것처럼 돌부더기가 길게 늘어서 있다.

이문열의 소설 '황제를 위하여'의 배경이 연천봉 그 언저리라는데,

소설의 모티브가 된 비슷한 일들이 여기서 일어났던 것은 아닐까? ㅎ


붓의 끝처럼 뾰족한 문필봉

오랜만의 산행으로 지친 몸인데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반가운 마음만이 앞선다.

문필봉은 그냥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 다가서려면 몇 개의 연봉을 지나야 한다. 물론 힘껏 기운을 써야 한다.



암릉을 내려서며 바라본 문필봉 연봉이 다른 각도에서 보니 더 세련되 보인다.




시간적이 여유가 있었던지,

아님 변덕스런 날씨만 아니었으면 자리를 깔고 때 이른 단풍과 어우러지는 비구름의 춤사위를 감상하면 좋았으련만.

멀리 구름에 가려 뿌연곳이 천황봉이다.



문필봉 가는 길에 만난 터.

거대한 바위에서 조각조각 떨어진 돌덩이들이 제법 규칙적으로 모아져 있다. 아무래도 단순한 건물 같은 구조물이 있다가 무너져 내린 것 같다.



문필봉의 구절초



문필봉 정상에 누군가 돌로 정성스럽게 석총을 쌓아 놓았다.

함부로 하기에는 그 정성의 정도가 대단하다.



그리고 연천봉이다.


연천봉 바위에 세겨진 문구에 대한 안내판이 새로인 생겼더만.


계룡산은 이 지역의 풍수지리적 특징으로 인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1393년(태조2년) 신도건설 공사 이후부터 풍수설과 어우러진 계룡산은 각종 예언과 연결괴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연천봉 석각은 계룡산이갖는 이러한 도참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자원이다.


<연천봉 석각의 의미>

방백마각 方百馬角 구혹화생 口或禾生

방方은 4방, 글자도 4획이라 4를 뜻한다. 마馬는 오午인데 오라는 글자는 80을 의미한다. 각角은 뿔이다. 모든 짐승이 두 개의 뿔이 있으므로 2가 된다. 이를 모두 더하면 482라는 숫자가 된다. 口와 혹或은 국國자가 디고, 화禾와 생生을 합치면 이移의 옛글자가 된다. 전체를 다시 조합하면 '四百八十二國移'라는 구절이 되어서 조선은 개국 482년 만에 망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연천봉에 다다르니 이제 하늘이 갠다.

내가 내려갈 때쯤 되니 멀리서 천황봉이 환하게 웃음짓는다.



집으로 가는 길은 310번 버스를 타야 한다.

4시 하고도 10분...

조금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인다.

화장실에서 세수도 해야 하고 ㅎ


신원사 경내도 들러보고 싶지만 돌담 너머로 5층 석탑과 중악단만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갈길을 다잡는다.



이런...

짖굳은 날씨하고는...

화창하게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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