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9
서울편1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2017/08/21
유홍준
㈜창비
서문을 보면 작가는 자신의 고향 서울로 입성한 것을 가슴 벅차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서울에 대한 시리즈 번호를 상, 하도 아니고 1, 2로 메겨 놓은 것을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공주를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마음이 이 분에게도 그러하겠고, 더군다나 쓸거리와 참고할 문헌과 실물이 무진장 널려있다는 것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상업적인 냄새도 조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9권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라면, 책 세부적인 내용을 떠나 1권 언저리에서 느껴졌던 -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 그런 매력적인 글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 소재가 많아서 그럴지 모르지만 써야할 것을 옮겨 적어야 할 것을 아직도 다 못 실은 듯한 느낌? 여백의 미가 없다고나 할까? 지식 위주의 전달? 뭐 대충 그렇다.
책이 나왔다고 하는 소식에 냉큼 9, 10권을 주문했다.
자꾸 일이 겹치는 바람에 책장 한두 장 넘기는 것조차 맘의 여유가 없더군.
몇 장 읽고 나면 뭔 일이 생겨 한참 만에 다시 열고 마는데 처음 보는 것 같은 글이다. ㅎㅎ
조금 더 세밀한 감정을 말하자면, 읽을 시간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뭔가에 쫓기는 것 같은 기분에 눈동자를 안정시킬 수 없었지. 조금의 시간이라도 휴식을 위해 써야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과민하게 반응한 이유가 궁금하다.
바쁜 일정에 그러한 고통을 내가 살아가는데 무엇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 기본적인 것에 비교하면서 막막한 마음을 더 키워나갔던 것 같다.
책은 제1부 종묘, 제2부 창덕궁, 제3부 창덕궁 후원, 제4부 창경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종묘
솔직히 9권은 먼저 읽기 싫었다. 죽은 사람들의 공간을 이야기 하는 종묘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좀 우울한 내게 더 독이 되지 않을까해서이다. 이야기의 소재나 구성도 10권이 더 동적이다. 하지만 순서대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뭐 그런 원칙? 그래야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 앞 뒤 이야기가 맞아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에 9권을 집어 든다.
끈기(?)를 가지고 몇 장을 넘겨들자 이야기의 매력에 빠지고 만다. 기분 안 좋게만 생각했던 종묘 건축물에 이런 면이 있었다니.
저자는 신전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렇게 받아들이니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학문적인 근거로 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불규칙하지만 정돈된 박석은 마치 땅에 새긴 신의 지문처럼 보인다’라는 건축가의 평을 옮겨 놓기도 한다. 프랑크 게리의 의견을 옮겨와 장엄함을 이야기 한다. 굳이 비교한다면 파르테논 신정 정도와 같다고.
월대 위와 아래의 구분된 구조가 주는 엄청난 느낌, 단순하지만 장엄함을 한껏 자랑하는 정전. 조상들이 간결하면서도 그 안에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함축해서 표현했다고나 할까? <종묘 건축의 미학: 100미터가 넘는 맞배지붕이 19개의 둥근 기둥에 의지하여 대지에 낮게 내려 앉아 불가사의할 정도로 침묵이 감도는 공간을 보여준다는 점에 정전 건축미의 핵심이 있다.46쪽>
종묘제례 쪽으로 옮겨가면서 정말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것을 전공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만 지나도 다 잊어버리고 말 것 같은 많은 것을 읽어간다는 것 자체가 ‘힘듦’이다. 아무튼 저자의 말은 빌린다면, 세계의 많은 신전이 있지만 신전 건축과 거기서 행하는 의식 모두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은 아주 드문 예라고 한다. 그만큼 자랑할 만 한 것이라는데 최 상위층만을 위한 것이라 그런지 내겐 너무나 낯설다.(너무 솔직한가?)
종묘 답사는 늦가을 토요일 오후나 눈 내린 겨울 아침에 자유관람을 권하더군. 그래야 길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네.
제2부 창덕궁
저자는 대한민국 수도 서물의 문화유산이 가진 매력을 설득력 있게 이방인들에게 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대안으로, 서울은 ‘궁궐의 도시’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 조선왕조 5대 궁궐을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어야 한다고 한다. 똑똑하시네요~
사람들이 왜 정통성이 있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선호하는지 잘 몰랐다. 달빛기행 행사라도 참여하려면 – 어차피 경복궁이나 창덕궁이나 금새 매진되지만 - 그 속도를 보면 창덕궁은 도저히 인간이 예매하기 불가능하다. 저자는 조선시대 왕들도 창덕궁을 선호했다고 한다. 경복궁은 법궁으로 일정한 격식을 따라 지어진 반듯한 인공미 넘치는 곳이었다면, 창덕궁은 자연의 생김새에 맞게 정감 있게 지은 궁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저자는 법궁과 또 하나의 정궁이 되어 양궐 시스템이 갖춰진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여 5대 궁궐이 가진 의미를 부각시켜준다.
1830년 무렵에 그린 ‘동둴도’를 보면 구중궁궐이 장대하게 펼쳐진다.(106쪽) 이런저런 난과 화재로 소실된 것도 있고 일인들이 강제로 철거한 것도 무진장 있구...
이번 책에서 ‘월대’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월대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한다. 단 아래와 위의 차이를 굳이 뭐라 하지 않고 대 하나로 구분을 해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저자는 건물에 말할 수 없는 품위와 권위를 부여해준다고 표현해주고 있다.
돈화문을 넘어 이런저런 건물을 지나 궁의 하이라이트 인정전. 이렇게 저자는 걸어서 천천히 창덕궁 건물을 지나치면서 건물에 쌓인 묻혀 있는 이야기를 꺼내 풀어낸다.
儉而不陋 華而不侈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 백제의 미학이자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라고 표현을 한다.
경복궁에는 중국식 의례적 긴장감이 있다면 창덕궁은 편안한 한국식 공간으로 인간적 체취가 풍긴다. 땅을 생긴 그대로 두어 우리 정서에 맞는 좋은 건축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내전과 빈청 청기와 선정전, 희정당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1917년 창덕궁 대화재와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당시 매일신보와 실록을 내용을 빌어와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과 복원 당시 그려진 벽화에 대한 풍부한 소재를 풀어내고 있는데 그닥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제 대조전으로 접어든다.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대조전에 임금이 곧 용이라 두 용이 부딪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고 하네.
다시 이런저런 건물과 화계(花階), 꽃 계단 이야기. 산과 함께 했기에 비탈을 돌로 계단식으로 쌓고 그 사이에 꽃과 나무를 심은 것이다. 사태도 막고 꽃밭도 가꾸어 자연을 잘 이용한 한 예 같다.
건물이 참 많다. 그 건물 하나하나 그냥 지나지 않고 그 구조와 건물에 엮인 이야기를 해 주는데 하나씩 끊어서 본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꺼번에 보니 시험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와 중에 좋은 글이 있어 체킹!
글쓰기의 어려움은 문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바름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조, 홍재전서-희우루지를 읽고 난 저자의 감회>
낙선재로 넘어가지 전에 우선 조선 왕가의 계보를 간지에 그려 넣었다. 그래야 쉽더군.
19숙종┌ 20경종
└ 21영조-사도세자┌ 22정조 - 23순조 - 문조(효명세자) - 24헌종
├ 은연군 - 전계대원군- 25철종
└ 은신군 - 남연군 - 흥선대원군 - 26고종 - 27순종
낙선재의 주인공은 헌종이라고 한다. 나도 그냥 그런 임금으로 아록 있었는데 교양이 넘치는 군주였더군. 헌종 때 천주교도 탄압도 있었다네...(1846 김대건 신부 처형) 헌종은 23세의 나이로 후사를 얻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낙선재 창살이 하나하나 다 다르다고 한다. 다음번에 가서 꼭 비교해봐야겠다. 그냥 지나친 게 후회된다.
제3부 창덕궁 후원
어렵게 인터넷 예약을 해서 가긴 갔는데 한겨울이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인솔자로 갔었는데 이리 추운 날 데려왔다고 나한테 푸념을 했던 사람들... 미안하기도 했지만 내겐 개인적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그나마 그 추운 날 기억이 있었기에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 그렇게 제한적으로까지 조심스런 관람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어보니 나름 그 깊은 의미가 있더군.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 골짜기를 그대로 정원으로 삼고 계곡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 자연을 경영하는 - 한국의 정원 미학을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도 동감이 간다.
궁의 정원을 조성하면서 민가 73채를 이주시켰는데 한성부에서 빈 땅을 내주어 그들이 살게 했다고 한다. 세조 때의 일인데 그 때에도 토지에 대한 보상은 생각보다 철저했던 것 같다.
후원 안의 건물과 연못, 그리고 거기에 담긴 역사와 선조들의 숨결을 풀어 놓는다.
그 중에서 정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천재적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후원 조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주된 건물 중심으로 전개되다 다시 불로문부터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중첩된 기분도 들 정도로 소재가 풍부하다.
건물의 특징을 이야기하다 한 달 전 쯤 건물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자가 좀 더 자세하게 풀어놓고 있다.
건물의 형태, 성격, 지위에 따라 대체로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홍순민교수가 정리한 것을 보면,
전(殿) 왕과 왕비의 건물
당(堂) 왕이 정무를 보는 집과 와세자의 정전인 중희당 등
합(閤) 신하들이 드나드는 공간 <합/각의 순서를 바꿔 보는 학자도 있음>
각(閣) 신하들이 드나드는 공간, 왕세자가 서연을 여는 성정각, 학사들의 규장각
재(齋) 낙선재처럼 서재 내지 사랑채 성격
헌(軒) 마루가 넓은 건물
루(樓) 주합루처럼 이층 건물
정(亭) 정자, 사다리나 계단으로 오르는 구조
수 많은 건물이 나오는데 건물의 지위구조를 대충 알아보니 어느 정도 쓰임새 등에 대한 윤곽이 잡힌다.
숙종과 효명세자 이야기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존덕정에 정조가 지은 장문의 글이 남겨져 있다고 한다. 저자가 책 제목의 부제로 삼았다.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란다. 저자가 옮겨 놓은 정조의 글(298~303쪽)을 읽어보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더군. 정조의 철학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천하의 명문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머리에 쏙 들어오지는 않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존덕정에 온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가 나온다.(306쪽~307쪽)
혁신과 개혁과 관련하여~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은 깍두기를 씻어 동치미를 담그는 도중 임기가 끝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세상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조가 그러했듯이.”
내가 다녀갔던 건물이며 연못이 나온다.
다시 가보고 싶다. 이제 그 의미를 조금씩 더 담아 맘속에 넣어 올 수 있을 것 같다.
제4부 창경궁
창경궁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5대 궁궐의 조망처를 알려준다.
덕수궁 – 서울시청(별관)
경복궁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종묘 – 세운상가 옥상
창덕궁 - ‘공간’신사옥 4층 카페에서 측면관 조망
창경궁 – 서울대병원 암센터 6층 옥상, 행복정원
참 애매한 위상의 궁궐이라고 한다. 경복궁, 창덕궁처럼 법궁도 아니고 덕수궁처럼 별격도 없고, 경희궁처럼 새로 복원된 것도 아니고 1909년 일제에 의해 식물원‧동물원으로 바뀐... 하지만 명정전은 임란 후 광해8년(1616) 그 모습 그대로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주로 왕비와 왕대비를 위한 궁궐로 크게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죽음과 장희빈 사건이 창경궁에서 일어났고, 왕비와 왕대비의 공간이라 많은 왕손들이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한 장소라고 한다.
전국의 태봉산 – 태실이 있던 곳(400쪽)
그리고 그 격이 애매해서 그런지 정문과 널따란 터에서는 백성과의 만남과 과거시험 등이 많이 치러지는 백성친화적인 곳이기도 했다네.
저자는 창경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9권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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