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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의 책가방

신문읽기, 악의 평범성?

by 여.울.목 2015. 1. 7.

한국일보 201517일 수요일 | 세계는 왜

악이 평범했다고? 가면 쓴 나치전범에 속았을 뿐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번역자


신문기사 원문

http://www.hankookilbo.com/v/ae374fcc22ed4f94b6ee62b6d06675f8


 

처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지난해에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글을 읽었는지 들었는지...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인상을 준 단어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리고 며칠 전부터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안상헌 생각의 힘을 키우는 고전 공부법

내가 다독이나 속독하는 유형이 아니라 아직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이라 전체적으로 책이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책 이야기 part를 읽으며 평범했던 칼 아돌프 아이히만이 왜 악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글에서 사라질뻔한 지난해의 기억을 불러와 연계되어 관심을 좀 더 갖고 책을 붙들어 잡게 되었다. 때마침 오늘 신문에도 이 두 번의 간접경험(?)과 관련된 내용이 신문에 게재되어 두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세 번의 핵심 단어가  모두 ‘생각하는 힘이 아닐까? 평범한 사람 아이히만, 그는 그저 커다란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처럼 열심히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하는 그(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가 진솔하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상대방 입장에서 이 일이 올바른 것인가 '생각할 힘'이 있었다면 비극스런 악행이 주저할 것 없이 체계적이고 냉정하게 저질러지지 않았늘 거라는...

그나마 책을 통해서 몇 글자 읽었다고 신문을 마구 들추다가 다시 쳐다보게 된다.


신문의 내용은
,

아이히만

2차 세계대전 후 유대인 모두를 절멸시키려 했던 아돌프 히틀러와 제2인자 하인리히 힘러의 최종 지휘 책임 하에, 아돌프 아이히만이 가장 체계적으로 또 탁월한 방식으로 수행했다. 히틀러와 2인자는 종전 후 자살을 했고 아이히만은 숨어 지내다가 19605월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한나 아렌트
, “악마는 평범했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계로 독일출신으로 세계적인 정치철학자다. 그녀 역시 피해 당사자였으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보통의 유대인과는 다른 시각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을 썼다.

그저 평범하고 성실한 공무원의 모습이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 이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몰랐으며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묻지도 않고 맡겨진 일에만 최선을 다했다. 그의 행위 결과는 엄청난 악이었지만, 그 악의 뿌리는 오히려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에게서 우리는 악의 평범성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 사회에서는 그에게 등을 돌렸지만,저서는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응을 불러왔다고 한다.

나 또한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거든. 이 와중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몇 줄의 글을 읽었다고 그런 악행을 정당화 한다든지 그런 생각은 저혀 아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가 인상 깊게 느낀 점은 생강의 힘과 역지사지의 자세다.


스탕네트,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001년 독일에서 출간된 책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에서는 재판정에서 사형을 받지 않기 위해 아이히만이 가면을 쓰고 혼신을 다해 연기를 했다는 것이다. 비록 실패해서 사형에 처해지지만 적어도 아렌트는 그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정작 문제의 중심이어야 할 아이히만의 행태나 *홀로코스트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은 멀어졌다고 비판(아렌트가 의도한 결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지만)하면서 아렌트의 명성에 직격탄을 날렸다.

 홀로코스트(Holocaust, 그리스어 hólos(전체)+kaustós(타다)에서 유래또는 쇼아(히브리어השואה이디시어חורבן)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약 6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사건을 의미한다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9백만 명의 유태인 중 약 2/3가 죽임당했다유태인 어린이 약 백만 명이 죽었으며여자 약 2백만 명과 남자 약 3백만 명이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유태인과 기타 피해자들은 독일 전역과 독일 점령지의 약 4만 여개의 시설에 집단 수용구금되어 죽게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집시 및 장애인 대학살 또한 홀로코스트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또 일부 학자들은 홀로코스트를 일반명사화 하여 나치가 저지른 소련 전쟁포로소련과 폴란드 민간인동성애자 등의 다른 학살들을 지칭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최근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약 천만 명에서 천백만 명 정도의 민간인과 전쟁 포로가 나치 정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 위키백과 -


신문의 헤드라인 악이 평범했다고? 가면 쓴 나치전범에 속았을 뿐만 본다면 전체 주제는 스탕네트의 주장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신문이 좀 그렇지... 아렌트의 명성에 대한 반격으로 독자의 시선을 끈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전체 내용면에서는 이쪽저쪽에 흠 잡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


하지만 헤드라인과 달리
신문에 글을 올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역자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는 글 전체를 통해서 여전히 아렌트의 선구적인 통찰은 변함없다며 정리를 한다.

그러면서도 글의 맨 마지막은,  "무엇보다도 스탕네트의 연구가 가져올 아렌트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정치적 지형 변화가 궁금해진다."며 진행형 마침표를 찍는다.


일제 강점기를 보낸 우리와 비슷하게 학살을 당하고 핍박을 받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아렌트의 주장은 당연히 반발을 불러 왔을 것이다. 스스로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독일에 비한다면 일본은... 그에 비할 바도 아니지. 이런 역사적 사실 관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절대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헌데 신문의 내용 중 눈에 끌리는 부분이 있다.

1940년대에 유대인 연합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적 주권국가 건설을 시작한다. 국가 없는 민족으로의 수난을 종지부를 찍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아렌트는 반대했다고 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과 아랍인, 그리고 유대인이 공존하며 살고 있었다. 유대인은 소수였다. 결국 다수 인종을 정치적 소수자로 전락시켜 자기 민족이 당했던 일을 똑같이 당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그 지적은 이미 현실이 된지 오래다.


새로운 사실에 근거한 스탕네트의 연구로 아렌트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많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 그렇다고 선구적인 통찰은 변함없다고 한다.

미국 예일대 세일라 벤하비브 교수의 말을 빌려 스탕네트의 책 때문에 아렌트의 인간의 악행에 대한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수정될 필요는 없다.”고 전한다.

그저 사실관계의 수정이 있을 뿐 아이히만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것 말이다.


머리가 좀 아프네... 최소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그들의 주권국가를 건설하면서 유럽에서 했던 일을 똑깥이 행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에서 "왜?"로부터 시작되는 생각의 힘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계기교육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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