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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의 책가방

파이 이야기

by 여.울.목 2016. 11. 5.

파이 이야기

2004.11.15.

2015.11.25.

얀 마텔

공경희

작가정신

 

 

집사람이 파이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싶다고 해서 내 책을 사면서 함께 구매를 한 책이다. 파이... ‘π초코파이? 그 제목 속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겠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내 손에 들려진 책.

이 책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뭔가 심오한 철학적 가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그냥 이야기다. 그렇게 접근했어야 했다. 아니 그냥 그렇게 아무런 편견 없이 말이다.

처음부터 뭔가 얻어내려고 밑줄을 그으려 내 손과 눈빛이 긴장을 한다.

~ 그냥 그렇게 재미나게 읽으면 될 것을...

대부분의 내 책이 그렇듯이 짬을 내서 읽다보니 거의 한 달 동안 읽고 만 것 같다. 덕유산을 종주하고 음주에 헤롱거리고 육체적 고통에 잠시 책은 접어두기로 했었지.

그러다 우연히 특별휴가를 내고 몇 시간 동안에 반 정도의 양을 후다닥 읽어 버렸다. 아마 뭔가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렸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첫 장에서 작가의 관점과 파이의 관점이 섞이다 보니 대체 이게 뭔 이야기인지 좀 헷갈리기도 했다. 그리고 번역자의 방식에 익숙해질 때까지 좀이 쑤실 정도로 적응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지.

피신 몰리토 파텔의 이야기. 피신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파이 π라고 소개한다.

파이는 인도 폰디체리라는 곳의 사업가 집안의 둘째 아이이다. 아버지가 동물원을 운영한다. 파이는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있는 집안의 아이답게 카톨릭계 학교를 다닌다. 그리고 카톨릭과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모두 마음을 열게 된다. 난 이런 대목을 걸치면서 정말 이 책이 뭔가 철학적인 메시지를 줄랑가보다 라는 생각을 계속 품지 않을 수 없었지.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철학적인 것보다는 동물 세계의 서열에 대한 원리를 알아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파이의 여행이 동물과 함께 하는 여행이니까.

파이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에 동물원을 정리해서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로 한다.

 

정리하다 남은 동물 얼마와 이런저런 짐과 희망을 함께 싣고 일본인 소유의 파나마 깃발을 단 화물선에 올라탄다.

무슨 일인지 아마도 폭발이 발생했나보다 배가 침몰하게 된다. 태평양 한 가운데서.

파이가 구명보트에 올라타게 된 것은 선원들의 친절함이 아니라 불량한 그들이 보트 안에 있는 동물들을 보고는 그를 거기에 집어 던진 것이다. 화물선은 가라앉는다.

구명보트 남은 포유류는 파이와 하이에나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오랑우탄, 그리고 벵골 호랑이다.

호랑이가 배멀미로 적응을 하고 있는 동안 하이에나는 다친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해치운다. 아니 먹어치운다. 그리고 적응을 마친 호랑이가 하이에나를...

파이는 동물들이 먹이를 먹는 것을 적나라하게 눈앞에서 바라본다. 이제 파이도 저 호랑이에게서 죽임을 당하겠지. 뜯어 먹히겠지.

하지만 책 표지에는 해피엔딩이라고 자랑질을 이미 해놓고 있다. 그래서 좀 안심을 하고 계속 읽어간다.

파이는 동물원에서 배운 것처럼 호랑이의 구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호랑이가 자기를 먹기 전에 바다거북이며 이런저런 물고기를 낚아 녀석에게 식량을 제공해주고 귀한 물을 제공해준다. 이제 둘은 그런 관계이다. 그러다 파이는 녀석보다 서열이 위에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시작한다. 녀석을 일정부분 길들인다. 그렇게 파이와 호랑이의 긴장된 일상으로 227일을 보낸다.

이제 파이는 녀석처럼 먹이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짐승처럼 말이다. 이야기 말미에서 거의 죽음을 기다리는 와중에 이기적인 인간을 만나고, 호랑이는 자기의 구역을 침범한 파이 말고 다른 그 인간을 먹어치운다. 파이도 인육의 맛을 보기도 하고 인육으로 낚시를 해서 먹이를 구하기도 한다.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그런 섬에 잠시 내리기도 한다. 이 부분은 어케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그냥 재미로 읽고 넘어가자. 충분히 일본 공무원들이 푸념을 늘어놓으니깐 말이다.

아무튼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한 배를 탄 공동체가 되어 기나긴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트는 맥시코의 어느 해안에 다다른다.

파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캐나다로 가서 입양되어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파이에게 호랑이가 없었다면...

책의 이야기 시작부분(18)의 말,

어떻게 그렇게 불숙 날 버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작별인사도 없이,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훌쩍 가버렸을까? 도끼로 쪼개는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

 

이야기 시작의 리처드 파커는 이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 입장에서는 아마도 캐나다 양부모나 그를 이끌어준 은인 정도 아닐까 생각되었거든.

 

이야기는 내내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와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해피엔딩이라는 결과를 알고 있지만 긴장감이라는 끈을 느슨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내가 파이였다면 어땠을까? 계속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다보니 내가 잠시도 녀석에 대한 감시에 늑장을 피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녀석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도끼로 쪼개는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냐.

 

파이는 맥시코 해안에 다다르자 홀연히 사라져버린 리처드 파커를 향해 눈물을 흘린다. 리처드 파커가 아무 인사도 없이 그를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일의 순서에 맞춰 형식을 차려야 한다고 믿는 파이에게 그렇게 서투른 작별을 하는 것이 끔찍한 일이었다고 한다.(354)

 

내내 동물 세계에서의 서열이라든지 영역이라든지, 짐승같이 먹이를 찾아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든지,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어야 한다든지... 뭐 그런 것들을 떠나서~

파이는 파이에게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불어 넣어준 녀석에게 고마워하는 것 같다.

파이의 말처럼 아마 파이가 구명보트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면 아마 무기력으로 그냥 죽고 말았을 것이다. 파이에게는 227일 동안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금의 나?

십수년 간의 공무원 생활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피곤함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 몸뚱아리와 자꾸만 여기저기 비교되는 이런저런 사람들과 사물들을 생각하면 그 동안 내가 무얼 이루고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 회한이 든다.

그저 적당한 돈과 시간만이 주어져 편안하게 신경 안 쓰고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요즘 딱 그런 생각이다.

그런 지금의 나에게,

이 파이의 책은 파이가 했던 것처럼 그 끈을 너무 느슨하게 하지 말라고 잘 타이르는 것 같다.

뭐라뭐라 글로 끄적거릴 수는 없지만 뭐라뭐라 생각이 정리된다.

 

자꾸 푸념만하지 말고 이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 같은 세상에서 포기하지 말고 파이처럼 희망을 키우자. 만물이 오직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잖아? 만물은 다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산다.

그래 다시 생각을 다잡고 부지런을 떨어보자. 불나방 같은 부지런 말고 파이처럼 말이다.

 

결국 난 재미로 읽어야 할 파이 이야기를 어렵게 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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